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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마구잡이 복원’이 고건축 죽인다

화려·장대하게 치장해 외관·의미 훼손… 전문가들 “자신 없으면 손대지 말라”

박성준 기자 ㅣ snype00@sisapress.com | 승인 1999.09.09(Thu)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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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창덕궁·창경궁·덕수궁과 함께 조선조 5대 궁궐의 하나인데도, 그에 걸맞는 대접을 받지 못한 채 잊혀 가고 있는 궁궐이 있다. 일제에 의해 완전 멸실되어 터만 남은 자리에, 현재 서울시가 박물관을 짓고 있는 경희궁이 바로 그곳이다.

경희궁은 조선조 광해군 9년(1617년)에 역사(役事)를 시작해 3년 만에 완공을 보았다. ‘서궐(西闕)’이라는 별칭이 붙었던 이 궁은, 대원군이 경복궁을 중건하기 전까지만 해도 창덕궁·창경궁을 아우르는‘동궐(東闕)’과 함께 조선 후기 왕도(王都)를 대표했다. 이 궁궐은 일제가 1908년 일본인 자녀를 위해 통감부 중학교를 설치하면서 수난을 당하기 시작했다.

경희궁 정문인 홍화문은 2개가 있다. 그중 진짜배기는 현재 신라호텔의 정문으로 사용되고 있다. 15년에 도로 공사로 제자리를 잃고 전전하다가, 우여곡절 끝에 신라호텔이 있는 서울 장충동으로 옮겨졌다. 경희궁의 정전인 숭정전은 26년 조계사로 옮겨졌다. 23년 일제는 이 궁의 전각 중 하나인 황학정도 민간에 매각했다. 한때 건물 수 백여 동에 이르는 규모를 자랑했던 경희궁은 이같은 과정을 거쳐 이미 30년대에 ‘완전 해체’되었다.

경복궁·경희궁 복원 사업에 다른 잣대

광복 후 민간의 소유이던 경희궁이 5대 궁궐의 옛 영화를 되살릴 절호의 기회가 딱 한번 있었다. 현대그룹으로부터 땅을 사들인 서울시가 경희궁지 복원 및 시민 사적 공원 조성 계획을 수립하면서 85·87년 2차에 걸쳐 궁터에 대한 사전 발굴 조사에 나섰던 것이다. 이 일을 맡았던 단국대 박물관측은 차후 정밀 발굴의 필요성을 강조한 보고서를 제출했다. 그러나 서울시는 엉뚱한 결론을 내렸다. ‘추가 발굴 조사’ 의견을 묵살하고 경희궁 터에 시립 박물관을 세우기로 결정했다. 이후 터파기 공사가 진행되는 동안 궁터 지하에서 엄청난 유물·유적이 쏟아져 나왔지만 서울시는 이를 무시하고 공사를 밀어붙였다. 지상의 전각들이 일제에 의해 파괴된 데 이어, 이번에는 우리 손으로 지하의 유구(遺溝)마저 마구 파헤쳐져 경희궁은 이름만 궁궐로 남는 비운을 맞게 된 것이다.

경희궁 사례는 최근 ‘흥례문 복원 과정’에 대한 감사원 감사 결과로 논란을 빚고 있는 경복궁 복원 사업(85쪽 딸린 기사 참조)과 대비할 때 더 큰 혼란을 빚는다. 경복궁 복원 사업은 ‘민족 정기를 회복하기 위해’ 옛 조선총독부 건물을 헐어버리면서 동시에 시작한 국가 사업이다. 창덕궁 복원 사업과 함께 해마다 백억원이 넘는 재원이 투입되는 이 사업은 알려진 대로, 90년부터 2007년까지 단계별 복원 과정을 통해 옛 조선총독부 건물을 비롯해 국립민속박물관·문화재연구소 등 일제 이후 들어선 각종 이질적인 건물들을 모두 헐어내고‘정궁’으로서의 경복궁 면모를 완전 복원하는 차원으로 진행되고 있다.

문제는 본질적으로 동일한 성격을 지닌 복원 사업에 제각각 다른 잣대가 적용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즉 한쪽에서는 지나치게 ‘원형 그대로’(경복궁)의 논리가 적용되는 반면, 다른 한쪽에서는 지나치게 ‘원형과는 상관없이’(경희궁) 복원되고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같은 일관성 없는 복원 양태가 고건축물과 같은 건조 문화재 복원의 참된 의미를 훼손하고 있다고 지적한다.수덕사 불사, 대표적인 실패 사례

문화재 복원은 넓게 보아 ‘보존’의 한 형태이다. 보존은 다시 △문화재를 쓰면서 보존하는 활용 보존 △유물 형태로 보존하는 유물 보존 △복원으로 나뉜다. 이 중 활용 보존은 문화재 보존의 가장 바람직한 방법으로 통한다. 그 다음이 불가피한 경우에 한하여 유물 보존 방식을 택하는 것이며, 이도 불가능할 경우 비로소 복원 방식을 활용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복원을 문화재 보존의 우선 순위에서 가장 뒤로 놓는다. 특히 건축물의 경우에는‘완벽하게 과거를 재현할 자신이 없으면 아예 손대지 않는 것이 상책’이라는 주장이 공공연히 제기될 정도이다.

문화재로서의 건축물이 이처럼 ‘특별 대우’를 받는 데에는 건축물 자체가 갖는 몇가지 속성이 자리잡고 있다. 미술 작품으로서의 입체성과 장소성, 역사 유물로서의 현장성은 이 가운데에서도 전문가들이 제일로 치는 건축물‘특별 대우’의 근거가 된다. 기본적으로 ‘땅의 예술’인 건축에서는 같은 건축이 다른 장소에 존재할 수 없다. 더 나아가 건축(문화재)은 근본적으로 복원(복제)할 수도 없다. 그래서 김봉렬 교수(한국예술종합학교)는 “역사적 건축이란 모두가 어느 정도 폐허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폐허 속에서 현재의 건축을 창조하는 행위, 바로 그것이 역사의 진정한 현재화 작업일 것이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현재 진행 중인 건축 문화재 복원은 이같은 역사 현재화 방향과 동떨어지게 이루어지고 있다. 국가 사업으로 이루어지는 경복궁·경희궁 복원 작업이 그렇고, 각급 지방자치단체와 사찰·민가에서 이루어지는 고건축물 복원이 그렇다. 특히 문화재보호법·전통건축물보존법이라는 법적 강제 장치가 있는데도 ‘재산권 행사’라는 명분으로 방치되고 있는 전통 사찰의 마구잡이식 중창(重創) 불사(佛事)는 문제로 지적된다. 충남 예산의 전통 사찰 수덕사의 불사는 전문가들 사이에서 대표적인 실패 사례로 지적되고 있다.건축물 둘러싼 전체 공간 보수·유지해야

고려 충렬왕 때(1308년) 세워진 수덕사는 국보로 지정된 빼어난 목조 건축물 ‘수덕사 대웅전’이 있는 사찰로 유명하다. 수덕사가 지닌 또 하나의 미덕은, 대개의 오래된 절들이 그렇듯이 그 유서 깊고 한적한 공간미를 통해 답사자들에게 역사의 향기와 숨결을 느끼게 해주었던 것이다. 그러나 최근 몇년 새 이곳을 찾은 문화재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아까운 문화재 하나가 사라졌다’는 한탄이 새어나온다. 돌길을 내고 돌계단을 쌓는 등 몇년간 내리 계속된 엄청난 규모의 중창 불사로 이 절이 ‘전통 사찰’이 아닌 ‘현대식 사찰’로 완전 탈바꿈했기 때문이다.

문제의 심각성은 이같은 무분별·무원칙한 복원 작업이 수덕사 한곳에만 그치지 않고, 전국의 사찰·서원·사당 등에서 행해진다는 데 있다. 김성우 교수(연세대·건축학)는 “건축 공간 전체를 사적으로 지정해 국가 차원에서 관리하는 궁궐은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다. 보존·관리권이 지방자치단체에 있거나 개인에게 있는 경우, 건축 문화재가 훼손될 우려는 더 커질 수밖에 없다. 대개 이같은 문화재 복원 공사는 전문성도 떨어지고 문화재에 대한 애착도 덜한 지방 업체나 민간 업자가 시행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문화재 복원의 어려움은 국내 고건축물이 지닌 특수성에도 일부 기인하는 것이 사실이다. 문화재로 지정된 건축물이 목조로 되어 있어 그만큼 유지·관리가 어렵고, 건축물의 본 모습을 알려줄 설계도 같은 자료가 남아 있지 않아 복원이 더더욱 어렵다는 것이다. 현재 국가·지방을 통틀어 문화재로 지정된 건축물은 3천건 가까이 된다. 이 중 목조 건조물 또는 그 무리는 전체의 3분의 2에 이르는 2천60여 건이다. 반면 조선조 건축 시공은 목수가 ‘감’에 의존하여 건물을 올리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따라서 설계도는 말할 것도 없고, 건물의 배치도도 매우 예외적인 경우가 아니면 남아 있지 않다.

물론 이같은 ‘특수 상황’이 건축 문화재에 대한 마구잡이 복원 또는 막무가내식 방치를 정당화해 주지는 못한다. 오히려 전문가들은 이같은 특수 상황 때문에라도 건축물 복원이나 보존에 더 세심한 검토와 판단이 따라야 한다고 주장한다.

현재 국내 전문가 사이에서 논의되는 가장 설득력 있는 복원 대안은 문화재 보존 방식 자체를 바꾸자는 것이다. 즉 한 건축물을 국보 또는 보물 따위 문화재로 지정해 그것만 유지·보수하는 ‘점적(點的) 보존’으로부터, 건축물을 둘러싼 전체 공간을 유지·보수하는 ‘면적(面的) 보존’으로 보존 방향을 근본적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개별 건축물 하나하나가 독립 가치를 갖는 서양 건축 논리와 달리, 개별 건축물이 한데 모여 하나의 건축 가치를 갖는 국내 고건축의 ‘집합적 성격’에 따른 대안이기도 하다.

당국 ‘문화재 인식 부족’도 문제

김봉렬 교수는 “예컨대 수덕사의 경우, 대웅전 하나만 문화재로 인식된 결과 그 앞의 건축 공간이 엄청나게 변형되어도 이를 막을 수단이 없었다. 중창 불사의 일환으로 그 자체로 건축적 존재 가치가 있던 승방을 모두 헐어버린 선암사(전남 순천)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 모두가 점적 보존 방식의 폐해에 속한다”라고 설명한다.건축물의 기능과 성격에 따라 복원 및 보존 방식을 적절히 선택·적용하는 것도 앞으로의 과제로 지적되고 있다. 국내 건축 문화재는 대부분이 목조여서 사용하지 않으면 오히려 수명이 짧아지는 약점이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바로 이같은 연유로 〈나의 문화 유산 답사기〉의 저자 유홍준 교수(영남대) 같은 이는, 답사객들과 정자나 누각과 같은 문화재를 찾을 경우 반드시 한번씩은 마루에 올라가 앉았다 나오라고 권유하기도 한다. 잠깐이라도 사람 때를 묻혀 건물이 오래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이다. 전문가들은 서원·향교·정자 등 원래부터 공공성이 있는 일부 고건축물은 단순히 문화재 지정만 할 것이 아니라, ‘건축물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적절한 용도로 재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무어니 무어니 해도 국내 고건축물 복원 관행의 문제점은, 문화재의 진정한 의미·내용에 대한 당국의 인식 부족에서 찾을 수 있다. 문화재 이름값에 맞춘답시고 건축물에 함축된 엄격한 ‘유교적 절제미’를 외면한 채 토담을 허물고 석담을 쌓아 무조건 화려·장대하게만 치장한 경북 안동의 도산서원, 건축적인 관점에서는‘국보급’이라고 평가되지만 획일적인 판정 기준에 의해 고작 지방민속자료에 머무르고 있는 남흥재사(경북 안동) 등은 바로 이같은 인식 부족의 희생양이라는 것이다.

한국보다 짧게는 수십 년, 길게는 수백 년 복원 역사가 앞선 유럽에서조차 건축물 복원 제1 원칙은 ‘자신 없으면 손 대지 않는다’이다. 전문가들은 지금이라도 이 원칙을 국내 문화 유산의 보존에 도입해야 할 때라고 입을 모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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