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송대방 장편소설 <헤르메스의 기둥>
  • 장은수 (문학 평론가) ()
  • 승인 1997.02.06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결국 과거가 다시 우리에게 되돌아왔다. 미래보다 더 풍요하고, 현재보다 더 활기있게 움직이는 시간의 비밀들이 한 젊은 작가의 상상운동을 타고 우리 마음의 촉수들을 건드리고 있다. 작품을 읽어가는 동안 당신은 연금의 구리 항아리 속에서 타오르던 불사의 신화들이 당신의 꿈 속을 파고드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기독교의 역사 속에 자신의 신비를 감추어온 연금술의 신 헤르메스가 펼치는 거대한 모험들, 불멸을 향해 맹목적으로 줄달음치는 인간의 끈질긴 욕망들, 인간을 불사의 신으로 변화시키는 현자의 돌을 둘러싼 누대의 암투들이 파르미지아니노의 그림 <긴 목의 성모>에 압축되어 우리의 눈을 기울어지게 하고 있다.’ 신인 작가 송대방의 소설 <헤르메스의 기둥>을 읽고 나는 단숨에 이렇게 써 내려갔다.

무엇이 마음의 소리굽쇠를 이토록 크게 울리게 했던가. 르네상스 이후의 서양 회화사에 대한 해박한 지식도, 여러 화자를 등장시켜 반복해서 확인시키고 있는 연금술에 대한 풍요한 정보도, ‘하나이면서 동시에 여럿인 것’이라는 형이상학적 질문에 대한 복잡한 논변도, 한 실마리가 다른 실마리의 꼬리를 잡고 계속해서 이어지는 추리의 힘도 아닐 것이다. 그러한 것들이 서로 어울려 소설의 육체를 풍요하게 하면서 마음을 끌어들이고 있다는 것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멀리서 되돌아오는 역사의 발자국 소리

하지만 이 소설을 읽어가는 동안 내 마음에서 계속 울린 것은 멀리서 되돌아오고 있는 역사의 발자국 소리였다. 그것이 내가 첫 문장을 ‘결국’이라는 부사로 시작한 이유이다. 나는 그만큼 역사의 귀환에 목말라했고, 비를 기다리는 사슴처럼 폭풍의 예감에 몸을 떨었던 것이다.

한때 소설의 등뼈를 긴장케 하던 역사의 피는 이미 더럽혀졌다. 마음의 솜털을 곤두서게 하면서 서로를 밀고 당기던 역사와 소설의 치열한 경쟁은 어디에도 흔적이 없다. <토지>와 <영웅 시대>와 <태백산맥>에서 찬연하게 빛을 발하던 역사의 진실은 이제 소설적 허구에 밀려 망각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물론 우리는 역사 없이 살아갈 수도 있을 것이다. 90년대 벽두를 장식했던 하일지의 <경마장 가는 길> 이후에 나타난 젊은 작가들, 그러니까 김영하·송경아·배수아 등은 우리에게 역사 없이 사는 법을 현실로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그들은 허구의 힘에 자신의 상상력을 의탁하여 일상의 지루함에서 멋진 신세계를 퍼올리고 있다. 역사의 거짓이 아니라 거짓(허구)의 진실에 서사를 기울어지게 하는 것, 그것은 더럽혀진 역사의 피를 정화해 소설의 새로운 역사를 앞당기기 위해서는 피할 수 없는 길이었다.

사실 지난 세대 작가들이 소설의 혈관 속에 역사의 피를 흘려넣은 것은 역사의 진실이 담지하고 있는 현실 부정의 의지 때문이었다. 그때 역사는 지금 이 자리의 삶을 미래를 향해 끌어올리는 비판의 지렛대였던 것이다. 그러니 역사가 소설의 등골을 당기지 못하고 있다면, 그것은 역사의 진실이 사라졌기 때문이 아니라 역사가 그 사이 어딘가에서 비역질을 당한 후 암살되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누가 역사의 머리털을 깎아 그 힘을 빼앗았는가. 현재에 대한 비판적 성찰 없이 역사의 강에 혓바닥을 담은 자들이다. <동의보감>에서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에 이르는 대중 소설의 비단길이 그 혓바닥 위에 놓여 있다. 그러나 <동의보감>과 <무궁화꽃…>을 두고 ‘민중성과 대중성의 절묘한 조화’니 ‘온 국민이 읽어야 할 교양서’니 하면서 입에 침을 튀기던 자들은 다 어디로 갔는가.

그러니 지금 우리 앞에 놓인 역사는 지난 세대의 역사와 같을 수 없다. 이미 과거의 역사는 깨어진 그릇처럼 진실을 담기 어려워진 것이다. <헤르메스의 기둥>은 이 깨어진 역사에 새로운 숨결을 불어넣었다.

작가 송대방은 이 소설에서 상상력의 바느질을 통해 기독교의 역사에 연금술의 신 헤르메스의 신비를 꿰매어 넣음으로써 소설과 역사를 재접합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이는 이문열의 <사람의 아들>을 연상케 하는, 신인 작가로서는 보기 드물게 야심찬 시도라고 할 수 있다. 이 시도가 정보 양에 비해 허술해 보이는 구성력을 극복해 낸다면, 우리 소설은 또다시 역사와 길항하면서 상상력의 영토를 넓혀갈 수 있을 것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