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피에르 부르디와의 ‘문화 자본론’
  • 파리·高宗錫 편집위원 ()
  • 승인 1997.01.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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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사회학자 부르디외 주장…“지식·취향·교양·감성, 신분 재생산에 큰 영향”
<구별짓기>의 저자 피에르 부르디외는 프랑스 사회학계에서 가장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하는 학자다. 30년 프랑스 남서부 베아른의 대갱에서 태어나, 파리 고등사범학교를 졸업하고 철학 교수 자격 시험에 합격한 뒤 85년부터 교직에 종사해 왔다.

그는 알제리 문과대학·릴 대학·사회과학 고등연구학교 등지에서 가르쳤고, 85년부터는 콜레주 드 프랑스의 사회학 담당 교수로 있다. 일종의 개방 대학인 콜레주 드 프랑스의 교수가 된다는 것은 프랑스에서 지적 이력의 정점에 이른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50년대 말부터 60년대 초까지의 알제리 체류는 그를 철학에서 사회학으로 넘어가게 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알제리 사회학>(61년)·<알제리의 노동과 노동자들>(63년) 같은 책들이 알제리 체류의 산물인데, 이 책들에서 이미 뒷날 부르디외 사회학의 상표가 되는 ‘아비튀스’ ‘장(場)’ 같은 개념들이 거친 대로나마 축조되고 있다.

뒤르켐의 ‘사회화’ 개념을 손질한 것으로 보이는 아비튀스란 사회적 행위 주체의 행동 원칙이나 표상 원칙 들을 결정하는 일련의 획득된 기질, 성향 들이다. 아비튀스는 그 주체에게 의식되기도 하고 의식되지 않기도 한다. 그것은 사회적인 것이 한 개인에게 각인된 것이다.

말을 바꾸어 아비튀스는 특정한 시간과 공간에서 사회적 콘텍스트가 개인에게 가르친 성향·기질로서, 그것이 과거의 모든 경험들을 통합하면서 어떤 상황에서의 개인의 행동, 대상에 대한 개인의 인지와 평가를 매순간마다 틀짓는다. 개인의 역사 속에서 개인에게 획득되고 내면화한 성향의 체계로서 아비튀스는, 부르디외에 따르면 실천의 생산자이다.

“문화와 교육 수준도 유전된다”

장이란 서로 투쟁하는 입장들로 이루어진, 구조화한 공간이다. 그것은 다른 말로 하면 분석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어떤 사회적 관계의 덩어리, 행위자들의 위치들의 체계다.

이 개념들이 더 정교해진 것은 비슷한 시기에 장 클로드 파스롱과 함께 쓴 <상속자들>(64년)에서다. 그는 이 책에서 회사 간부 자녀들의 58%가 대학에 진학하는 반면 농민의 자녀 가운데는 1.4%만이 대학에 진학한다는 통계에서 출발해, 학업적 성취의 불평등에서 문화적 요인이 지니는 중요성을 분석한 바 있다.

학교 제도 속에서의 음험한 선택과 배제에 의해서 문화와 교육도 ‘유전’(재생산)되고 상속된다는 주장을 담은 이 책은, 부르디외의 이름을 프랑스 학계에 널리 알리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을 뿐만 아니라, 문화적 장에서의 계급 투쟁 분석이라는, 부르디외 사회학을 일관하는 관심사가 최초로 체계적 집적을 이룬 성과이기도 하다. 그 뒤에 출간된 <평범한 예술> <사회학자라는 직업> <재생산> <실천 이론 초고> <구별짓기> 같은 책들은 <상속자들>에서 확립된 이론적 틀을 다듬으면서 그것을 사회와 문화의 다양한 분야로 확대해 적용하고 있다.

미학·역사학·인류학 등으로 확산되고 있는 부르디외 사회학이 취하는 태도는, 개인을 단지 사회 구조에 딸린 현상으로만 보는 객관주의적 결정론도 아니고 개인만이 사회적인 것에 의미와 목적을 부여한다는 극단적 주관론도 아닌, 그 사이 제3의 길을 걷는다. 그 제3의 길을 부르디외와 부르디외 연구자들은 발생론적 구조주의라고 부른다.

행위자와 구조, 개인과 사회, 주체와 객체를 대립시키는 것이 현실을 온전히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을 부르디외는 보여준다. 왜냐하면 행위 주체의 심성 구조들은 소통과 상호 작용의 관계에서 객관적 사회 구조들과 대응하기 때문이다. 부르디외에 따르면, 사회학자의 임무는 ‘설명의 터부’를 위반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이 구조들 속에서 은폐되어 있는 것, 숨겨진 것을 드러내 보이는 것이다. 즉 사람들이 믿는 것처럼 사회가 결코 투명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교육·문화 자본 이용해 ‘갈등’ 분석

부르디외 사회학의 참신성은 그 개념들의 새로움에도 부분적으로 빚지고 있다. 아비튀스나 장도 그렇지만 학교 졸업장으로 이루어지는 교육 자본, 거기에다가 가족에 의해 전달되고 상속된 문화 자본을 더한 넓은 의미의 문화 자본, 개인들 사이의 지속적인 관계망을 뜻하는 사회 관계 자본 등, 부르디외 사회학이 사용하는 다양한 상징재(상징적 재화)의 개념들은 문화적 갈등, 상징적 갈등을 분석하는 데 효과적인 수단이 되고 있다.

부르디외는 계급의 재생산 과정을 분석하면서 문화적 요인을 강조하고, 경제적 자본이 아닌 지식·취향·감성·교양·권위 따위의 상징재에 기초한 상징적 지배를 중시한다는 점에서 마르크스보다는 베버의 전통 속에 있다.

오늘날 부르디외의 명성은 프랑스 국경을 넘어서 유럽의 이웃 나라들과 아메리카·아시아의 각 대학으로 파고들고 있다. 93년에 그는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소가 수여하는 황금 메달을 받았다. 국립과학연구소의 황금 메달은 프랑스에서 학자들이 받을 수 있는 가장 커다란 영예인데, 대체로 자연과학 분야에서 수여되어 왔다. 부르디외는 사회학자로서는 처음으로 이 메달을 받았다. 미국 예술과학아카데미 회원이기도 하고 괴테상을 수상하기도 한 데서 짐작되듯, 부르디외는 미국과 독일의 대학에 나들이가 잦다.

게다가 부르디외는 프랑스적 의미의 지식인이기도 하다. 그에게는 지식인이라는 말이 ‘참여’ ‘좌파’와 동일한 의미다. 부르디외에 따르면, 사회학적 분석은 단순히 사회의 구조와 개인 들이 그 구조들에 대해 지니는 표상을 드러내는 데 만족해서는 안되고, 그 표상들에 작용해서 세계를 변화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부르디외는 그간 자신의 저작 활동과 실천을 통해서 그런 입장을 명백히했다.

<알제리의 노동과 노동자들>에서 보여준 알제리인에 대한 관심, <세계의 비참>에서 보여준 가난한 이들에 대한 관심, 폴란드 연대 노조에 대한 지지, 동성애 운동 지지, 86년 교육 개혁을 위한 학생 시위 지지, 88년 뉴칼레도니아 평화협정 지지, 지난해 겨울 노동자 대투쟁에 대한 지지가 그 예들이다. 그러나 그는 정당 가입이 지적 자립을 해친다고 생각해 공산당을 포함해 어떤 정당에도 가입한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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