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포먼스]뇌졸중 백남준, 뉴욕에서 재기
  • 뉴욕·신성희 (자유 기고가) ()
  • 승인 1997.12.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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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 <코요테3> 뉴욕 공연…뇌졸중 딛고 재기 성공
1년4개월 전 뇌졸중으로 쓰러졌던 백남준씨가 50년 동안 가슴 속에 묻어온 노래를 부르기 위해 휠체어에 의지해 뉴욕 무대에 다시 올랐다. 지난 11월14일부터 29일까지 펼쳐진 멀티 미디어 아트 페스티벌 행사 첫날 백남준씨는 그 이튿날 공연할 <코요테 3>을 필자에게 이렇게 설명했다. “내 청춘 고백이야. 열다섯 살 사춘기 때 소월의 시에 붙여 작곡한 노래를 부를 거야.”

11월15일 오후 7시30분 뉴욕 앤솔로지필름아카이브는 백남준씨의 비디오 오페라 <코요테 3>을 보러온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서울과 뉴욕 예술가들이 한데 어울려 퍼포먼스·비디오 아트·사이버 아트·무용·영화를 동시에 펼쳐놓은 이 축전은 많은 사람의 관심을 모았고, 이는 백남준씨의 퍼포먼스에서 절정을 이루었다.

“김소월 시에 붙인 노래로 50년 회한 풀었다”

“50년 동안 이 곡들을 비밀로 간직해 왔다. 지난 세월 동안 질식할 것만 같았다. 이제야 비로소 큰 해방감과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라고 백씨는 말했다. 자주색 벨벳 드레스를 곱게 차려 입고 나와 느닷없이 자동차 경보 장치 소리를 낸 디나 에머슨의 <연주>를 시작으로 <코요테 3>의 막이 올랐다. 저 세상으로 먼저 간 친구 조셉 보이스의 84년 공연 <코요테 2>가 펼쳐진 대형 스크린을 배경으로 하여 휠체어를 탄 백남준씨가 무대에 올라 조용히 피아노를 연주했다.

어린 시절에 본 고국의 강물과 어느 나무를 노래하듯 곡은 서정적이고 아련하리만치 고요했다.‘끄윽끄윽’ 토악질하듯 울부짓는 조셉 보이스를 위로하듯, 젊은 시절의 객기를 추억하듯 연주는 조용히 흘러갔다. 60년대 뉴욕 무용계의 스타였던 시몬 포르티 또한 조셉 보이스의 <코요테>를 재현하는 긴 진혼의 춤을 추었다. 그리고 나직히 속삭였다. “그만, 충분해. 그걸로 충분해.”

먼저 간 예술 동지에 대한 진혼 의식은 피아노를 밀쳐 넘어뜨리는 백남준씨의 느닷없는 일대 소동에 의해 극적인 전환을 맞았다. 무대 위에는 먼지가 자욱이 피어 올랐고, 스태프들이 뛰어올라 재빨리 세워놓은 피아노를 또다시 넘어뜨리는 긴장감 넘치는 한판 대결이 시작된 것이다. 피아노 건반 조각이 튕겨나오고, 스프링이 날아올랐다. 그 부서진 조각으로 또다시‘띵동 띵동’ 건반을 두드리던 백씨는 “돈 워리”(걱정 마)를 연발했다. 피아노를 밀쳐내는 소동을 스무 번쯤 반복하자 피아노는 거덜이 났다. 너덜너덜해진 피아노 위에 앉아 백남준씨와 시몬 포르티는 담소를 나누었다.

백남준·김홍희(미술 평론가) 씨와 데이비드 고(공연 기획자)가 기획하고 뉴욕 한국문화원과 코리아소사이어티가 주최한 은 한국 문화를 국제 무대에 소개하고 젊은 예술가들에게 활동 공간을 제공하기 위해 마련된 행사로, 94년에 이어 두 번째로 열렸다. 올해에는 백남준씨의 퍼포먼스와 비디오를 비롯해 김영순·안은미 씨의 무용, 김대환씨의 타악기 연주와 사물놀이, 박철수 감독의 영화 <학생부군신위> <301·302>, 배용균 감독의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 등 다양한 장르들로 채워졌다.

이번 행사에서는 60년대에 절정을 이룬 탈국적·탈장르 예술운동인 플럭서스 초기 작품들이 유난히 많이 소개되었다. 특히 백남준씨와 함께 30년 전 뉴욕에서 예술 표현의 자유를 옹호한 비디오 첼리스트 샤롯 무어맨을 기념하는 전시 작품을 비롯해 그의 연주를 담은 비디오와 필름 들이 5시간에 걸쳐 상영되었다.

젊은 시절 생활비가 비싸기로 유명한 뉴욕에서 끼니 걱정 없이 예술 활동하는 것이 유일한 꿈이었다는 백남준씨는 어느덧 환갑을 훨씬 넘었다. 이번 퍼포먼스에서 특별히 새로운 것은 없었다. 그러나 병고를 딛고, 재도약을 위해 매일 3백m씩 걷기 연습을 했다는 그가 재기한 것을 축하하러 온 친구와 후학 들은 공연을 감명 깊게 지켜보았다.

한국의 팬들에게 한 말씀 해달라는 부탁에 백남준씨는 이렇게 답했다. “난 아직 안죽어. 내 인생의 절정기가 오고 있다구. 지금 계획하고 있는 게 몇 가지 있는데, 그건 비밀이야.” 어느 광고에서‘미래가 있는 한 우린 청년이다’라고 한 그의 말이 실감 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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