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하이에크 연주>
  • 孔柄淏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경제학박사) ()
  • 승인 1995.07.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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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순 외 9인의 학자가 쓴 <하이에크 연구>
20세기의 가장 걸출한 경제학자를 한 사람만 들라면, 서슴지 않고 F.A. 하이에크(1899~1992) 교수를 들고 싶다. 그는 경제학에서부터 법학·심리학·정치학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지식과 통합된 세계관을 갖춘 탁월한 인물이었다.

1940년대 온 인류가 사회주의로 줄달음치던 시절, 그는 <예종의 길>이라는 한 권의 책으로 미국을 비롯한 자유주의 진영에 정신적인 승리를 가져다 주었다. 중앙집권적인 계획 경제가 인류에게 얼마나 엄청난 해악을 가져다 줄 것인가를 예리하게 파헤친 책이었다.

지식인이 일반 대중과 다른 점은 무엇인가. 대중은 고정 관념의 틀을 벗어나지 못한 채 과거의 연장선상에서만 미래를 바라본다. 진정한 지식인은 과거와 현재로부터 얻어진 통찰력을 가지고 미래를 새로운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는 사람들이다. 이런 면에서 보면 하이에크는 진정한 지식인이었다. 대다수 지식인이 사회주의에 흠뻑 빠져 있을 때 그는 사회주의 몰락을 예견하고 자유주의자의 길을 걸어 왔다. 이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다수와 다른 길을 걷는 외로운 지식인의 길은 가시밭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무척 운이 좋은 사람 중의 하나였는지도 모른다. 그가 평생을 통해 확신에 차서 외쳤던 사회주의의 몰락을 직접 목격하고 눈을 감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헌신적인 자유주의자였다. 그와 지적인 동지 관계를 유지했던 사람으로는 <열린 사회와 그 적들>로 유명한 칼 포퍼, <암묵적 지>로 널리 알려진 마이클 폴라니 같은 이가 있다. 이들은 모두 자유의 고결함과 이를 수호하는 길이 인류가 살아 남을 수 있는 길임을 확신한 사람들이다.

자본주의라 불리는 시장경제는 사회주의처럼 사람들에게 매력적인 것이 아니다. 때로는 지나치게 차게 느껴지고 냉혹하게 보이는 것이 시장경제이다. 그러나 그동안 시장경제는 인류에게 번영을 가져다 주었고, 앞으로도 번영의 지름길이 될 것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시장경제는 그 토대가 무척 약하다. 왜냐하면 시장경제를 위협하는 요소들이 곳곳에 산재해 있기 때문이다.

어떤 체제나 이념이 튼튼히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우기 위해서는 그 사상적인 토대가 튼튼해야 한다. 사상적인 토대는 그냥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역사를 통해서 여과된 고전과 인물 들에 대한 집중적인 연구와 토론이 활발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지나치게 수학과 통계 분석에 의존하고 있는 오늘날 한국의 학문 풍토를 생각하면, 이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번에 조 순씨를 비롯한 학자 10명이 책으로 묶어낸 <하이에크 연구>(민음사)는 여러 명의 연구자가 집필한 하이에크에 관한 몇 안되는 연구서 가운데 하나이다. 하이에크의 광대한 학문 세계를 한권의 책으로 압축하여 소개하는 것은 애당초 불가능한 일인지 모른다. 그러나 이같은 연구가 밀알이 되어 이 땅에 하이에크 연구가 더욱 활발히 진행되리라 믿는다.

9편의 논문, 중복된 분야 많아 아쉬움

이 책은 하이에크의 학문 세계를 경제 질서, 정부 정책, 법과 경제, 화폐이론으로 나누어 각각의 연구자가 맡아 집필하였다. 논문 9편이 각기 다른 분야에서 접근하는 모양새를 갖추기는 했으나 지나치게 중복되는 분야가 많다. 아울러 내용 면에서도 보완해야 할 부분이 만만치 않다. 특히 공동 연구에 참여한 학자들 가운데는 하이에크의 학문 세계를 정확히 이해하는 데 실패한 이도 있다. 예를 들어, 시장 질서처럼 자발적으로 이루어지는 질서에 대한 개념을 무질서로 오해하고 있다.

그러나 척박한 학문 풍토에도 불구하고 하이에크의 자유주의 사상을 이 땅에 소개하는 것만으로도 이 책의 가치는 높게 살 만하다. 하이에크의 저작들을 대할 때마다 진정한 고전을 생각하게 된다. 오랜 세월을 거쳐 여과되고 살아 남은 것이 고전이다. 언제 어디에서나 우리에게 새로운 의미와 교훈을 제공하는 것이 고전이다. 이런 면에서 보면 하이에크의 저서들이야말로 진정한 고전의 반열에 드는 인류의 지적 유산이다. 하지만 하이에크의 저작들은 지나치게 난해한 문장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이 흠이다.

이같은 연구서를 시작으로 하이에크 저서에 대한 번역과 보다 쉬운 해설서가 출간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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