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연극계, 신작은 없고 재탕만 ‘흥건’
  • 이영미 (연극 평론가) ()
  • 승인 2004.06.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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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 위의 ‘춘래불사춘’
봄이 다 지나가고 완연한 초여름이건만, 대학로 연극계는 여전히 실속 없이 어수선하다. 특별히 관객이 없는 극한적 불황 상태인 것도 아닌데 말이다. 늘 가난한 것이 연극계이기는 하지만(연극계에서 불황이니 관객 기근이니 하는 말은 마치 수십 년 동안 한국 경제를 늘 ‘최대 위기’라고 말해오던 것과 비슷한 느낌을 준다), 그래도 자세히 뜯어보면 약간 불황과 호황의 곡선이 느껴진다. 1991년부터 1995, 1996년 사이가 유례 없이 아주 긴 호황기였다면, 1997년 이후부터는 계속 하강 곡선을 이어오다가 2000, 2001년 사이에 거의 최악의 상태에 도달했다. 그러던 것이 지난해에는 웬일인지 극장에 관객이 눈에 띄게 늘었고(소극장에 주는 지원금 덕분이기도 하겠지만), 소극장 숫자도 다시 늘기 시작했다. 올해가 지난해보다는 못하지만 그래도 재작년만큼 관객 없이 썰렁한 신세는 아니다. 그런데 도대체 왜 이렇게 올 연극계는 실속 없이 어수선하기만 한 걸까?

연극계에서 봄과 가을은 신작들이 선보이는 계절이다. 더운 여름과 연말연시가 있는 겨울이 대개 안정된 재공연·연장 공연이나 연말연시용 대중적 작품들이 배치되는 것에 비해, 봄과 가을은 그 해 연극계의 의욕적인 신작들이 올려져 두각을 드러내게 된다.

그런데 올 봄은 희한하게도 이런 ‘화제의 신작’이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작품이 없어서라기보다는 ‘눈에 띄질 않는다’는 표현이 더 옳다. 우선 ‘명작 재공연 바람’이 올 봄 연극계를 압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동숭아트센터에서 1년 내내 이루어지는 의욕적인 기획인 ‘연극열전’은, 1960, 1970년대 이후 우리 연극의 ‘다시 보고 싶은 화제작’ 반열에 드는 작품들을 모아 재공연하는 대형 기획이었다. 실험극장의 <에쿠우스>과 연우무대의 <한씨연대기>로 시작한 이 기획은, ‘그 시절 그 배우’ 혹은 ‘그 시절 그 연출’을 과감히 캐스팅하겠다고 공연한 점에서 더더욱 화제를 모았다. 예컨대 이번 기획에 등장하는 <에쿠우스>의 조재현이나 <남자충동>의 안석환, <청춘예찬>의 박해일 등은 바로 이 연극으로 ‘떴고’, 스크린 나들이가 많아진 지금은 연극계에서 모시기 힘든 배우들이 되어 있다. 이들을 다시 추억의 그 작품 속에서 본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구미가 당기는 일 아닌가.

그런데 우연의 일치인지, 이 시기 국립극단은 50년 전 명작들을 다시 꺼내 올리고 있다. 새로 국립극단을 이끌게 된 이윤택 예술감독은, 공무원 배우로 이루어진 국립극단과 게릴라라고 자처하는 이윤택의 충돌을 우려하는 세간의 시선과는 달리 아주 조심스러운 행보를 하고 있는데, 첫 시즌의 기획이 바로 국립극단 초창기의 명공연으로 기록되어 있는 <뇌우>와 <인생차압> 재공연이었다. 원로 단원인 백성희·장민호 선생을 자문과 주연 등으로 배려하면서 게다가 국립극단의 유구한 전통과 자긍심에 존경을 표하고 있는 중이다. 더구나 야외 하늘극장 역시 셰익스피어 다시 만들기인 ‘셰익스피어 난장’이니, 신작에 대한 기대감은 아무래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대학로와 국립극장의 기류가 이러하다 보니, 올 봄 신작들은 뒷전으로 밀려 있다. 어느 평론가의 독설에 의하면 ‘떨이 세일’ 때문에 올 봄은 망했다는 것이다. 7, 8년 전부터 봄·가을 관객의 상당수를 차지하는, 각 대학 교양과목 ‘연극의 이해’ 학생들의 단체 관람이 주로 안정된 ‘연극열전’ 쪽으로 몰릴 수밖에 없고, 굵직한 연극 기획사들도 여기에 치중할 수밖에 없으니, 이런 말도 무리가 아니다.

서울연극제 ‘헷갈리는 운영’도 한몫

상황을 설상가상으로 만든 것은 서울연극제이다. 올해 서울연극제는, 조금만 한눈을 팔고 나면 도대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파악할 수 없을 정도로 어지럽다. 수십 년 동안 가을에 올려졌던 서울연극제를, 연전에 ‘서울공연예술제’라는 이름의 무용·음악·연극을 결합한 페스티벌로 바꾸어 봄 시즌으로 옮긴 데까지는 그럭저럭 상황을 이해할 만했다. 그런데 올해 서울공연예술제와 분리되어 다시 서울연극제가 생겨나고, 행사 주체를 놓고 서울시·한국연극협회 본부·한국연극협회 서울지부 사이에서 복잡하게 오락가락했다고들 하는데, 바깥에 있는 사람으로서는 알 수가 없다. 하여튼 이런 문제들에 매달려 있느라 올 봄 서울연극제는 작품 선정이나 홍보 등 정작 핵심인 운영 사항이 제대로 챙겨지지 않은 느낌이다. 연극제가 시작되었는지도 확실히 감지되지 않고, 화제의 신작들이 연극제로 모이지도 않아 행사의 응집력이 생기지 않는다. 평론가인 나도 잡지를 뒤적거려 보지 않으면, 5월 말까지 문예진흥원 예술극장 소극장에서 올려진 <자객열전>(극단 파티, 박상현 작, 이성열 연출)이 연극제 공식 참가작인지 아닌지, 연극제가 언제 끝나는지 헷갈리는 지경이다.

어수선한 봄을 맞고 보니 안정된 계절 감각으로 한 해가 굴러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다시금 깨닫는다. 주목할 만한 신작과 새로운 창작자에게 시선을 모아주면서 어렵사리 회복되어 가는 관객의 열기를 붙잡는 일에 연극계 모두가 고민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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