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비엔날레]미술사가 프랑크 호프만의 관람평
  • 번역·김희진(큐레이터) ()
  • 승인 2000.04.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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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사가 프랑크 호프만의 관람기/“젊은 한국 작가 작품은 신선”
한국에서 열리는 가장 큰 문화 이벤트인 광주 비엔날레가 3월29일 개막했다. 올해로 3회째를 맞이한 광주 비엔날레가 국제적으로 어떻게 평가되는가를 외국 전문가의 시각을 통해 들여다본다. 필자인 프랑크 호프만 씨는 독일 태생으로 미국 하버드 대학원 박사 과정(한국미술사 전공) 졸업을 앞두고 있으며, 세계 최고 미술 전문지 가운데 하나인 <아트 인 아메리카>에 제3회 광주 비엔날레 기사를 실으려고 한국에 왔다.

지난 2월 홍성담·김태곤 씨를 비롯한 몇몇 한국 작가가 출품작에 대한 재정 지원 부족과 경직되고 비효율적이며 지극히 관료적인 비엔날레 행정 지원 부서에 항의하는 뜻에서 집단 보이콧을 선언한 적이 있다. 이 사건에 대해 한국의 한 언론은 ‘광주 비엔날레는 말썽 비엔날레’라는 제목으로 기사를 쓰기도 했다.

2000년 광주 비엔날레는 ‘인(人)+간(間)’ 이라는 주제로 세계 46개국 작가 2백47명을 초청해 개막했다. 2월에 보이콧을 선언했던 그 작가들은 개인 차원에서 조성된 소정의 추가 자금 지원을 받으며 전시에 복귀했다고 한다. 그러나 비엔날레에 대한 궁극적인 질문 한 가지는 계속 남아 있다. ‘과연 그 말썽 비엔날레는 정말 말썽 많은 비엔날레인가. 아니면 모든 이가 바라던 성공적 전시인가?’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베니스 비엔날레에서부터 남아공에서 열리는 신생 요하네스버그 비엔날레에 이르기까지, 어느 비엔날레든 예술 애호가·작가·기자·소장가·일반 관광객을 망라한 외국인 관객을 끌어모으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이번에 3회를 맞이한 광주 비엔날레의 경우에는 해당되지 않는 얘기다. 물론 지방 도시에서 열린다는 지리적 제약과 수도 서울에 비해 언어 문제가 더 심각하다는 데 그 원인이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큰 이유는, 이 비엔날레가 세계인을 상대로 하는 국제 축전이 아니라 한국인이 한국 관객을 위해 만든 국제 축전이라는 점에 있다. 3월29일 개막식 연설에서도 이 점이 은근히 나타났다.

현대 미술에서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지역의 정체성이 심각하게 결여되었다고 혹독하게 비판받은 1997 비엔날레를 의식해, 2000 비엔날레 총감독 오광수씨는 한국과 아시아 작가에게 축전의 중앙 무대를 내줄 정도로 각별하게 신경을 썼다. 결과적으로 이번 비엔날레에는 다수의, 어쩌면 너무 많은 한국 중견 작가가 포함되어 버렸다.

심지어 한국의 대표적인 민중 화가 가운데 한 사람인 홍성담씨는 두 군데 겹치기 출품하기도 했지만, 그의 존재는 이제 한물 간 운동만큼이나 약해 보였다. 하리우 이치로가 기획한 특별전 <예술과 인권>에 출품한 그의 그다지 강렬하지 못한 비디오 설치 작업에는 심지어 자신의 과거 작업을 인용함으로써 작위적인 작품이라는 느낌만 남겼다. 홍성담씨의 작품은 본전시장의 3층 벽에 설치된 정사각형 회화 작품들로 이어지고 있었는데, 이 작업 또한 난데없이 1960~1970년대 분위기에나 더 어울릴 듯 싶은 장자의 시 <나비의 꿈>에 연관된 작품이었다.
윤진섭씨가 기획한 특별전 <한·일 현대 미술의 단면>에 들어서면 대뜸 김창렬씨의 너무나도 잘 알려진 거대한 물방울 그림이 한자와 나란히 걸려 있다. 물론 언제 보아도 멋진 작품이지만, 이 작품은 이 곳보다는 다른 곳에서 열리는 한국 미니멀 회화전에 등장하는 것이 더 어울릴 듯 싶었다. 김창렬 작품이 느닷없이 등장한 것은 올해 비엔날레 전시의 대부분이 얼마나 촌스럽고 구태의연한가 하는 점만 분명하게 드러내고 말았다.

이 대작들이 아무리 멋지다 해도, 나에게는 몇몇 젊은 한국 작가의 작품이 훨씬 더 신선하고 재미있는 기운과 생명력으로 관객을 쉽게 끌어들이는 것으로 보였다. 특히 시각적으로 깊이 자극하면서도 호소력이 있었던 작업은 마리 로르 베르나닥과 서정걸씨가 기획한 특별전 <인간과 성>에 나온 김정선씨의 사진 시리즈와, 본전시의 북미 섹션에 소개된 뉴욕 거주 한국 작가 니키 S. 리의 작업이었다.

북미 대륙 섹션을 기획한 토머스 핀켈펄은 자화상이라는 형식적 주제에 초점을 맞추었다. 한국과 한국 문화에 매료된 사람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이 기획자는 나에게 ‘광주 비엔날레의 민속 축전 같은 느낌은 오히려 여타 국제 비엔날레들과 차별 요인이 된다. 그렇기에 예상 관람객 99%는 예술계의 허풍선이들이 아닌 평범한 한국 사람이 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일찍이 이 점을 누구보다 잘 인지한 핀켈펄은 북미 대륙 섹션을 실제로 전시에 찾아올 관객 수준에 맞추어 기획하느라 애를 쓴 흔적이 역력했다. 그래서 잡아낸 개념이 예컨대 ‘미국’ 하면 ‘개인주의’ 하는 식으로 떠오르는, 국가 별로 정형화한 이미지를 오히려 역이용해 초상화라는 형식과 맞물리게 기획하는 전략이다.

이 전시장 벽면의 텍스트들은 미국에서 제작된 한국 관광 안내 책자에서 따온 문구들로서, 한국의 집단적 성향과 충돌하는 미국의 개인주의를 다룬 글이었다. 전시장에 놓인 대형 거울은 관객이 자기 모습을 바라보도록 하겠다는 의도도 있었지만, 미처 다가서지 않은 코너 너머의 다음 작품을 볼 수 있도록 하는 이중 효과도 거두고 있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핀켈펄은 한국인과 미국인이 자신들에 대해 혹은 서로에 대해 지니고 있는 선입견을 강화시키는 결과를 낳았을 뿐 아니라, 너무나도 단순한 그의 개념 처리는 유머 감각마저 결여해 더 깊은 방향으로 발전될 기회를 스스로 놓치고 말았다. 다행히 구미 관객에게 낯선 좋은 작업이 간혹 눈에 띄었다.

르네 블록의 기획력 돋보인 유라프리카 섹션

‘유라프리카’라는 생소한 커플로 묶여버린 본전시의 유럽·아프리카 섹션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르네 블록의 명성에 걸맞게 훌륭한 기획이 돋보이는 전시였다. 이 전시에서도 다른 섹션에서처럼 진짜 거물급 스타는 보이지 않았다. 그렇지만 블록은 유망한 신예 작가와 주요 작품 경향을 잡아내는 눈을 지니고 있는 데다, 이 경향을 개념화해 아주 재미있고 극적으로 연출·제시하는 능력도 탁월하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블록의 전시는 핀켈펄이 그토록 연출하고 싶어하다 결국 교육적인 지루함으로 끝나버린 효과를 대신 거두고 있어 더욱 대조적이었다. 덕분에 나는 연로한 관객이나 어린이도 에이자 리자 아틸라의 과 같은 비디오 설치 작업을 쉽게 감상하며, 각 전시실마다 발견되는 색다른 경험을 즐기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예외가 몇 작품 있었지만 블록의 기획전만이 지난 2~3년간에 나온 최근 작품을 소개한 전시였다고 기억한다.
특별전 <북한 미술전>은 한국에서 북한 미술이 공식으로 전시된 첫 번째 전시회이다. 이 전시는 독립된 개별 도록을 지닌 다섯 가지 특별전 중 하나였는데, 이 특별전 도록의 영어 부분은 편집을 거치지 않고 번역 기계가 뱉어낸 글 같다는 인상을 주었다. 기획자 유재길·김창동 씨는 이 전시를 만드는 데 가히 오디세이 여정과 같은 험난한 과정을 거쳤다. 한국 정부의 지나치게 민감한 반응에 시달리면서 이루어낸 전시는 전체적으로 매우 인상 깊었다. 출품작은 194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회화와 판화 작품뿐 아니라 조각·수예(북한판 <모나리자>까지)를 총망라하며 북한 미술의 주요 전개 과정을 소개한 성공적 전시였다.

문제가 있었다면 도록에든 전시장에든 작가·작품에 대해 전기적인 소개조차 하지 않아 미술에 문외한인 대부분의 관객이 거의 암호를 해독하듯 작품을 바라보게 했다는 점이다. 전시된 북한 작가들이 한국에서조차 쉽게 구할 수 있는 몇몇 북한 출판물에는 말할 것도 없고 독일이나 러시아 미술 도록에도 소개된 1급 작가인 것을 감안하면 전시장에서의 절대적인 정보 부족은 하나의 사회적 아이러니가 표출된 것이라 할 것이다. 더구나 기획 당사자들은 이 정보를 모두 준비해 놓았으나 광주 비엔날레 조직위원회가 이것을 모두 검열해 삭제했다고 한다.

이러한 조처는 한국 관객이나 외국 관객으로 하여금 ‘북한이 개인 역사 기록을 금지하거나 혹은 여기에 나온 이들이 기록할 만한 가치도 없는 수준’이라고 오해할 여지를 갖게 했다.

중남미 섹션·특별전 <인간과 성> 성공적

유라프리카 섹션 외에 광주 비엔날레에서 성공적이었던 곳은 본전시의 중남미 섹션과 위에 언급한 특별전 <인간과 성>이었다. 중남미 전시는 뉴욕에 거주하는 큐레이터 김유연씨가 기획한 전시로, 한국에 최초로 이 두 지역 작품을 소개하는 자리가 되었다. 차라리 <성(Sex)과 성(Sexuality)>이라는 제목이 더 잘 어울렸을 법한 <인간과 성>도 매우 자극적인 전시였다. 간단히 표현해 보자면, 비록 패트리셔 피치니니가 제아무리 <인간과 성> 전시의 신체 부위만큼이나 야한 <트럭 베이비스> 작업을 한국·오세아니아 섹션(기획 김홍희)에 설치했다 해도, 그 지루한 본전시장의 수많은 작품을 보며 거의 파김치가 된 관객의 눈을 번쩍 뜨이게 해준 효과에서는 <인간과 성>을 따라갈 수 없었다. <인간과 성>은 고르게 엄선한 작품을 지적으로 차분하게 공간에 앉혔기 때문이다.

몇몇 골동 작품까지 포함했다는 점을 빼고, 이번 비엔날레가 한국과 아시아 미술에 주안점을 두었다는 점은 전체 비엔날레에 성공 요소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광주 비엔날레의 근시안적이고 졸속적인 행정 오류는 이 비엔날레가 국제 행사가 되는 데 치명적인 해를 입혔으며, 더구나 이 행사가 막대한 예산을 투자한 국가 축전이었다는 점에서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오류였다는 데 변명할 여지가 없을 것이다. 이 점에서 쿠바 출신 참여 작가 타니아 브루게라가 남긴 말은 가장 극명한 비엔날레 비판이 될 것이다. “한국에 와서 이 전시에 참여하게 되어 참 즐거웠다. 그러나 나는 어디에서도 미술 행정 관계자들이 이처럼 융통성 없고 뻣뻣한 예는 일찍이 본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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