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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 20세기 가로지른 위대한 근본주의

스콧 · 헬렌 니어링 부부 관련 서적, 서점가 열풍 ··· 서양 문명의 바깥에서 새로운 삶의 방식 실천

李文宰 편집위원 ㅣ 승인 2000.06.29(Thu)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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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워드는 ‘자발적인 빈곤’이다. 스콧 니어링과 헬렌 니어링 부부의 근본주의는 물론이고, 이들이 원전으로 삼았던 <월든>의 헨리 데이빗 소로도 그러했으며, <산에는 꽃이 피네>의 법정 스님도 마찬가지였다. 스스로 선택한 가난한 삶, 다시 말해 적게 가질수록 많이 존재할 수 있다는 역설의 메시지. 자발적 빈곤, 혹은 니어링 부부가 강조한 ‘의도적 공동체’는 경쟁과 효율, 속도와 욕망에 의해 작동되는 자본주의적 삶의 방식에 대한 투철한 거부였다.

최근 서점가에 일고 있는 스콧·헬렌 니어링 열풍은 법정 스님과 소로 그리고 생태전문 격월간지 <녹색평론>이 미리 닦아놓은 길에서 멀리 벗어나 있지 않다. 무소유(아무 것도 갖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버리라는 뜻이다)로 대표되는 법정 스님의 책들과 소로가 <월든>에서 거듭 주창한 자발적 빈곤은 <녹색평론>이 주도해온 생태주의와 연결된다.

198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독자 대중을 사로잡았던 명상 서적이 ‘나는 누구인가’에 집중되었다면, 최근 일고 있는 스콧·헬렌 니어링 붐은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구체적인 답변을 제시한다. 니어링 부부에 대한 관심은 명상 서적과 생태주의 사이에서 증폭되고 있다. 그것은 독자들이 앎[知]에서 함[行]으로 이행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욕망(탐욕)이 건설한 풍요한 감옥에 대한 독자 대중의 비판적 인식은 날로 확산되고 있다. 그리하여 독자들은 앎이 아니라 함의 모델을 찾고 있다. 다름 아닌 내가 주어로서 살아가는 건강한 삶을 모색하고 있는 것이다.

<월든>도 그렇지만 <산에는 꽃이 피네>가 감동을 주는 까닭 가운데 하나는 법정 스님의 ‘행함’에 있다. 문패도 번지도 없는 강원도 산골 두메에서 스님이 몸소 얼음을 깨고 물을 긷는 모습이 수백 마디 ‘말씀’보다 강한 메시지를 준다. 웬만한 수도자들도 범접하기 어려운 니어링 부부의 삶은 앎이 아니라 함 그 자체이다. 스콧은, 진리는 그 자체로서 말한다고 쓴 바 있다.

니어링 부부는 ‘이것은 아니다’라고 말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이렇게 살아야 한다’라며 앞서갔다. 대안적 삶의 방식, 지속 가능한 삶의 방식을 실제로 구현했다. 그것은 20세기 서양 문명을 부정하고 비판하고 고발하고 경고하는 ‘바깥의 삶’이었지만, 21세기의 입구에서 니어링 부부의 원칙들은 ‘미래의 삶’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니어링 부부를 국내 독자에게 소개한 매체는 생태 전문 격월간지 <녹색평론>이다. 이 잡지 1995년 3·4월호에 <아흔 살의 관점-헬렌 니어링과의 대담>이 실리기 전까지 니어링 부부의 삶과 사상을 아는 국내 독자는 거의 없었다. 이 지면은 1997년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이석태 옮김, 보리)로 확대되었고, 이 책은 단숨에 열성 독자를 확보했다. 이 책은 <출판저널>이 기획한 ‘환경운동가들이 뽑은 우리 시대 최고의 생태도서’(아래 상자 기사 참조)에서 <오래된 미래>(헬레나 노르베리-호지, 녹색평론)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읽는’ 깨달음에서 ‘행하는’ 생태적 삶으로

지난 봄 <조화로운 삶>(류시화 옮김, 보리)과 <스콧 니어링 자서전>(김라합 옮김, 실천문학사)이 나란히 나오면서 니어링 부부에 대한 관심은 한층 뜨거워졌다. 첫 번째 책은 스테디 셀러로 자리잡았고, 최근에 나온 두 권 역시 베스트 셀러 목록에 올랐다. 첫 번째 책이 평생의 동반자 헬렌이 바라본 스콧의 사상과 두 부부의 삶이었다면, 두 번째 책 <조화로운 삶>은 <아름다운 삶…>의 속편으로 땅에 뿌리 박은 삶을 구체적으로 기록했다. 세 번째 책인 자서전은 스콧이 서양 문명·제국주의·전쟁·자본주의·미국 사회 등을 비판적으로 조명한 것이다.

자서전은 20세기 서양 문명을 신랄하게 공격한다. 1883년 미국 펜실베이니아의 탄광 도시에서 태어난 스콧 니어링은 부유하고 엄격한 가정에서 자라났다. 스콧의 삶은 크게 둘로 나뉜다. 전반부는 보수주의자였고 후반부는 근본주의자였다. 제국주의와 전쟁과 인종 차별에 반대하는 평화주의와, 모든 생명은 하나임을 인식하고 그것을 실천하는 ‘땅에 뿌리 박은 삶’을 실천한 근본주의자였다.

경제학을 전공하고 펜실베이니아 대학에서 경제학을 가르치던 그는 어린이 노동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면서 개인과 사회와의 관계에 눈 뜨기 시작했다. 스콧은 1917년 미국 사회에 등장했는데, 반전 논문 <거대한 광기>를 발표했다가 스파이 혐의로 연방 법정에 선 것이 계기이다. 스콧은 이 법정을 전 미국 사회를 대상으로 한 특별 강연장으로 만들었다. 그는 자신의 평화주의와 사상의 자유를 역설했고, 언론들은 대서 특필했으며, 배심원들은 무죄를 평결했다.

하지만 이때부터 그는 미국 사회와 20세기의 바깥으로 밀려났다. 펜실베이니아 대학에서 쫓겨나고 언론사와 출판사로부터도 외면당했다. 그는 이 시기를 ‘인생 역경 대학에 다녔다’고 표현한다. 몇 푼 안 되는 강연료가 수입의 전부였던 스콧은 권력과 부의 유혹에 의연했다. ‘지난 시절을 돌아볼 때 부의 유혹을 거절한 것만큼 현명한 처사는 없었다’라고 스콧은 말했다.

‘진실을 배우고, 그것을 가르치며, 사회에서 진실을 구현하는 데 이바지한다’는 세 가지 원칙을 세운 그는 학교를 떠난 뒤에도 그 원칙을 저버리지 않았다. 1915년부터 1935년까지 그는 한 주에 8~10회, 1년에 4백회 가까이 강연했다. 미국 전역을 돌며 미국 사회를 파악했고, 소련 중국 일본 남미 등지를 방문해 연구와 강연회를 열었고, 그 결과를 책으로 펴냈다. 1971년, 87세이던 그는 이미 아흔 가지 넘게 책을 냈고, 당시 진행 중인 책이 열네 가지에 달했다.
100회 생일 맞은 뒤 조용히 죽음 맞이해

스콧은 양차 세계대전을 통해 세계 경찰로 자리잡은 미국을 강력하게 비판하고 고발했다. 1945년, 자신의 62세 생일이던 8월6일 그는 서양 문명과 결별을 선언했다. 서양 문명이 갖고 있는 위선적 태도와, 경쟁을 최우선 원리로 삼는 파괴적 행태, 군의 모험주의 등이 서양 문명을 위험으로 몰아간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니어링 부부가 보기에, 추악하고 천박하고 방종한 미국적 삶의 방식과 우익이 지배하는 낡은 사회 질서로부터 추방당한 사람이 소박하게나마 품위를 잃지 않고 실현 가능한 사회 체제를 지향하는 삶은 자급농이 유일했다. 1932년, 49세 되던 해, 스콧은 스무 살 연하인 헬렌 노드를 만났다. 정열적이고 활달하며 기품을 가진 헬렌은 스콧의 제의에 찬성했다. 두 사람은 버몬트의 자갈밭으로 들어갔다.

그곳에 손수 집을 짓고 일하고 글쓰고 창조하며 20년을 자급자족했다. 그들은 돈을 벌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1년 동안 써야 하는 최소한의 수입이 들어오면 생산을 중단했다. 생계를 위한 노동 4시간, 지적 활동 4시간, 좋은 사람들과 친교하는 4시간이면 하루는 매일 완벽했다. ‘우리의 시골 생활은 미친 세상에서 제정신을 갖고 사는 삶의 한 본보기’라고 스콧은 말했다.

자서전에서 ‘나는 독점 자본주의를 거부하지만, 그렇다고 정통 마르크스주의자는 아니었다’고 밝힌 스콧은, 사회주의는 기정 사실이 아니라 미완의 사건이라고 보았다. 독점 자본주의가 문화적으로 현재완료형이라면 사회주의는 갓 태어난 신생아라며 사회주의의 미래에 큰 기대를 걸었었다. 그는 1983년 100회 생일을 맞은 뒤, 스스로 음식을 끊고 자신의 죽음 속으로 걸어들어 갔다. 그의 죽음과는 무관하겠지만, 그가 세상을 떠난 뒤 ‘어린’ 사회주의는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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