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영원한 제국><무궁화 꽃이 …>비판
  • 李文宰 기자 ()
  • 승인 1995.09.07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신예 비평가 정장진씨 <영원한 제국> <무궁화꽃이…> 전면 비판
소장 불문학자 정장진씨(39·고려대 불문학과 강사)가 <두 개의 소설 혹은 두 개의 거짓말>(열린책들)을 펴냈다. 정씨의 문학 비평가 데뷔작이기도 한 이 비평집에서 ‘두 개의 소설’은 두 베스트 셀러 소설, 즉 김진명씨의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와 이인화씨의 <영원한 제국>을 가리킨다. 90년대 베스트 셀러 소설 목록의 최상위권에 들어가는 두 소설을 정신 분석 비평이라는 관점에서 해부한 정씨의 결론은 ‘두 개의 거짓말’이다.

베스트 셀러 소설에 대한 비평가들의 태도는 무관심 혹은 모른 척하기라고 말해도 크게 틀리지 않는다. 거개의 베스트 셀러 소설은 줄곧 문학 비평의 대상에서 제외돼 왔다. <무궁화꽃…>이 그랬듯이 ‘비평’은 문단 밖에서 쇄도했다. 박정희 대통령의 ‘복권’과 연관되기도 했던 <영원한 제국>도 문학보다는 그 밖에서 더 많이 논의되었다.

두 소설이 베스트 셀러가 된 연유가 주로 문학 밖에서 찾아진 것은 당연한 귀결이었다. 앞의 책이 핵 문제를 둘러싸고 급박하게 돌아가던 시대적 분위기와 맞아 떨어졌다면, 뒤의 책은 정조의 왕권 강화 정책인 홍재유신이 작금의 정치적 분위기와 접점을 갖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출판 마케팅의 성공, 추리 소설 기법의 대중성 등과 함께 성공 요인으로 꼽혔다. 그러나 이 가운데 추리 소설이라는 요소는 그다지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았다.

정장진씨는 두 소설의 공통된 형식인 추리 소설에 주목하면서, 추리 소설 형식을 빌려온 작가가, 추리 소설 형식 자체가 요구하는 힘과의 싸움을 포기할 때 남는 참담함이 <무궁화꽃…> <영원한 제국>이라고 규정했다. 추리 소설과의 싸움을 포기할 때 소설은 ‘기만의 수사학과 욕망의 언어들’을 드러내는데, 이것은 작가(또는 소설 속 작가의 분신)의 무의식과 연관을 갖는 것이어서, 보통의 독자는 물론 작가 자신도 자각하지 못할 때가 있다고 정씨는 밝혔다.

‘이 무슨 어리석은 짓들인가! 빨리 읽고, 잘못 읽고, 이해하기 전에 서둘러 심판하려 들기 때문이다. 그러니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보자’라는 사르트르의 질타를 책의 맨 앞에 인용해 놓고 있는 데서 정씨의 비평 동기와 입장이 엿보인다.

고려대 불문과와 같은 대학원을 졸업하고 85년 도불하여, 파리 8대학에서 프랑수아 모리악 소설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고 지난 3월 귀국한 정씨는, 두 소설을 파리에서 읽었다. 그런데 두 소설에 대한 평가와 논의 들은 정씨의 독후감과 ‘당혹스러울 정도로’ 달랐다. ‘빨리, 잘못 심판하는 어리석은 짓들’이었다. 앞의 사르트르 인용은 두 문장이 더 있었으니, ‘이것은 누구에게도 즐거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알아들을 때까지 귀에 못이 박히도록 떠들어야 할 것이다’.

독자에서 비평가로 자리를 바꿔 앉기로 마음먹었을 때 정씨는 즐겁지 않았다. ‘답을 아는 수수께끼’를 다시 풀어야 했던 그는, 우선 추리 소설 형식을 대하는 두 작가의 태도를 분석했다. 왜냐하면 이 두 작가는 추리 소설이라는 형식을 지나치게 가볍게 여겼기 때문이다. 추리 소설이라는 기법을 이용하려다가 추리 소설이라는 형식에 지고 만 형국이라고 정씨는 보았다. 그래서 두 소설은 곳곳에 허점을 보인다는 것이다.

<무궁화꽃…>은 영화 ‘007 시리즈’에 기댄 첩보·추리 소설이다. 그래서 권순범 기자는 ‘활극’의 주인공이다. 독자들은 권기자 개인사적 정보에 대한 어떤 ‘서비스’도 받지 못한다. 그래도 이 소설이 읽히는 것을 정씨는, 이것이 ‘007 영화’였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제임스 본드인 권기자는 ‘논리의 비약을 감정 과잉(술)으로 메우는 특유의 논리’로 소설을 이끌어 간다. 그러나 이 소설의 핵심은 ‘핵 주권’이 아니다. 정씨는, 이 소설에 대한 기왕의 독후감이 핵 주권에 초점이 맞추어져 소설의 정체를 제대로 짚어내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한국과 미국 관계의 매개항을 핵으로, 한국과 일본의 경우는 섹스로 상정한 <무궁화꽃…>에서 이용후 박사·핵 미사일·미국을 상징적 아버지, 즉 정신분석학에서 말하는 ‘남근’과 다름없다고 규정한 정씨는, 이 소설의 가장 핵심적인 무의식적 욕망을 ‘소유와 지배의 욕망’이라고 지적했다. 핵이라는 추상이 아니라 핵 미사일이라는 ‘남근’은 그 주위에 항상 죽음이 어른거리는 ‘물건 중의 물건’이었다. 이 핵 미사일을 손에 넣는 순간, 세상의 모든 것을 얻는다는 것이다.

정장진씨가 정신 분석 비평이라는 분석틀을 적용한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한 작품의 콤플렉스와 무의식을 탐구해 나가다 보면 그 작품이 수용되는 한 사회의 사회·역사·정치적인, 그리하여 광의에서 문화적인 욕망의 문제와 만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무궁화꽃…>은 민족이나 역사에 관한 소설이 아니었다. 정씨의 해석에 따르면, 소설이 ‘핵 핵 핵거리며’ 강조한 ‘핵 미사일이라는 상징’에 작가와 독자가 속았다는 것이다. 표면 구조는 핵이지만 심층적인 무의식의 욕망은 ‘돈’이라는 것이다.

정씨는 “소설을 허구로 볼 때 작가는 자기가 쓰고 있는 소설의 노예가 된다. 핵이 돈·권력·명예의 메타포임을 숨길 때, 그리고 이 노예(작가)와 똑같은 욕망을 지닌 독자들이 소설이 시키는 대로 독서할 때 이 기만의 수사학과 집단적 욕망의 움직임은 이미 정치적이 된다”고 강조했다. 돈을 통한 소유와 지배의 욕망을 다름아닌 ‘민족과 역사와 신을 파는 거룩함’으로 감추고 있다는 것이다.

작가가 독재자 위치로

정장진씨는 <영원한 제국>을 놓고 우선 추리 소설로 읽기에 적지 않은 허점과 심각한 모순이 있다고 비판했다. 이인몽의 아들이 하나였다가 갑자기 둘이 된다든지, 연락이 두절되었던 아내가 이사간 집을 쉽게 찾아왔다든지, 줄거리 전개상 전후 설명이 없는 처남이 불쑥 튀어나온다든지, 피눈물의 흔적이라든지, 아내 상아가 서로 다른 세 여인(어머니·아내·누이)으로 등장한다든지 하는 ‘추리 소설에서는 있을 수 없는 실수’를 추려냈다. 정씨가 보기에 이 실수들은 단순한 실수가 아니다.

정신 분석학의 범주 안에서, 모든 아들은 어머니가 바라는 바와 자신의 욕망을 동일시하면서 사회화하는데, <무궁화꽃…>의 권순범과 최영수, <영원한 제국>의 유치명과 이인몽은 작가의 두 분신으로, 아버지(핵과 금등지사, 혹은 박정희·이용후/정조·정약용)를 제거하면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완성한다는 것이 정씨 해석의 한 핵심이다. 이 콤플렉스는 작가의 실수, 작가가 자각하지 못하는 무의식의 차원에서 발생한다고 정씨는 주장한다. 그렇게 해석하게 된 실마리가 <무궁화꽃…>에서 권기자의 ‘술’과 <영원한 제국>에서 이인몽의 ‘꿈’이라는 것이다. 두 소설은 논리의 비약, 소설 구성의 허점, 콤플렉스를 술과 꿈으로 메운다는 것이다.

정장진씨는 또 움베르토 에코 등을 모방했다고 밝힌 <영원한 제국>에서 강조되는 홍재유신과 근왕주의가 ‘혼성 모방과 개발 독재 논리의 유사성’으로 나아갔다고 읽어냈다. 이 소설의 혼성 모방과 개발 독재는 현재라는 개별성을 무시하면서 독재자와 작가를 선험적 존재, 운명의 주관자로 만들어 놓는다는 것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