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동아시아 발전 모델은 실패했는가>
  • 신광영 (한림대 교수·사회학) ()
  • 승인 1998.07.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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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적인 경제 발전모델로 칭송받던 동아시아 발전 모델은 과연 실패했는가. 이 책은 이러한 문제에 정면으로 도전해 대안적인 설명을 제시했다.”
동아시아 발전 모델이 위기에 처했다, 혹은 더 나아가 실패했다는 주장이 아시아 경제가 위기를 맞은 국면에서 크게 부각되고 있다. 한때 성공적인 경제 발전 모델로 제시되어 개발 도상국의 경제 발전을 위한 ‘처방전’으로 간주되기도 했던 동아시아 모델은 지금 경제 파탄을 불러일으키는 ‘독약’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박정희식 발전 모델을 일부 언론이 칭송하면서 ‘박정희 증후군’이 일어난 일이 엊그제인데, 이제 동아시아 발전 모델의 상징인 박정희식 발전 모델이 사망 선고를 받게 된 것이다.

한국정치연구회가 펴낸 <동아시아 발전 모델은 실패했는가>는 이러한 문제에 정면으로 도전해 나름으로 대안적인 설명들을 제시하고자 한 연구서이다. 이 연구서의 특징은 한국의 경제 위기만이 아니라 일본과 인도네시아를 포함한 아시아 동부 지역 국가를 두루 다루었다는 점이다.

체계적 논의 위한 출발점 마련

동아시아 모델 논쟁의 핵심은, 동아시아 국가들의 내부적인 특성으로 인해 동아시아 경제가 성공 혹은 실패했다는 것이다. 싱가포르 전 총리 리콴유(李光耀)의 ‘아시아적 가치’나 하버드 대학 투웨밍 교수의 ‘유교 자본주의’ 논의에서부터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시카고 대학 로버트 루카스 교수의 ‘인적 자본론’에 이르기까지, 많은 학자·정치인 들이 동아시아 국가들의 독특한 문화나 가치관에 바탕을 두고 동아시아의 경제 성장을 설명하고자 했다.

기존 논의와 관련해 이 책은 세 가지 특징을 보여준다. 첫째, 내적 요인과 외적 요인을 통합해 동아시아 경제를 설명했다. 동아시아 국가들이 대부분 무역으로 성장했기 때문에 국내적인 요인만으로 동아시아 자본주의를 분석하는 것은 치명적인 결함을 가지고 있다. 이 책에 실린 논문들은 국내외 요인의 상호 작용을 통해 경제 성장과 실패를 설명하고자 한 점에서 매우 돋보인다.
두 번째, 비교의 관점으로 동아시아를 분석했다는 점이다. 이제 한국 학계도 외국 사례 연구를 많이 연구해 비교적인 시각에서 한국과 동아시아를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시각은 과거 한국 학자들이 범해 온 한국 특수주의를 벗어날 수 있게 한다.

세 번째, 경험적인 연구를 토대로 하여 분석적 논의가 진행되었다는 점이다. 한국 경제 위기를 둘러싼 저널리즘적인 논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다른 책들과 달리 이 책에 실린 논문들은 경험적 자료를 바탕으로 하여 면밀하게 논의를 전개해 동아시아 국가들에 대한 인식뿐만 아니라 지식도 전달해 주고 있다. 이 책이 본격적인 논의와 논쟁거리를 제공한 셈이다.

동아시아 발전 모델을 둘러싼 쟁점은 이제부터 더 체계적인 논의로 발전시켜야 한다. 한때 세계화라는 화두는 그야말로 한국 학계의 공통 주제가 되어 수많은 세미나와 학술 대회를 양산했다. 이 과정에서 분명해진 것은, 한국 학계가 냄비처럼 빨리 달아올랐다가 식는 ‘냄비 학계’라는 점이었다. 이러한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이제 본격적으로 한국과 동아시아 국가를 동아시아 자본주의, 세계 자본주의 및 세계화와 연관해서 연구할 때이다. 이 책은 이러한 관점에서 문제의 답을 제공했다기보다는 더욱 발전된 논의로 나아가기 위한 논의의 출발점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의를 찾을 수 있다.

이 책에서 더 진전되어야 하는 내용들은 두 가지로 요약된다. 하나는, 많은 주장이 심증적인 수준에서 이루어지고 있으므로 좀더 체계적으로 자료를 발굴하고 축적해야 한다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더 엄밀한 연구를 하기 위해 동아시아 모델의 성공과 실패를 만들어내는 기제를 밝혀야 한다는 점이다. 특정한 조건이나 변수를 언급하는 수준이 아니라 특정한 변수가 어떠한 과정을 거쳐서 성공과 위기를 야기했는가를 추적해야 한다.

그러나 이 책은 과거 비판적인 진영에서 이루어졌던 단정적인 현실 규정과 심증에 근거한 추론을 상당히 극복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 동아시아 위기와 관련해 더욱 깊이 있는 논의가 전개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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