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헬렌 니어링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
  • 李文宰 기자 ()
  • 승인 1997.12.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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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렌 니어링 지음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스콧 니어링의 생애와 사상 담아
‘좋아’. 그가 지상에 마지막으로 남긴 한마디였다. 100회 생일을 지내고 채 한 달이 안 된 83년 8월24일 아침, 그는 오래 전부터 준비해온 죽음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63년, 여든 살이 되던 해 그는 ‘주위 여러분에게 드리는 글’을 남겼다. ‘나는 병원이 아니고 집에 있기를 바란다. 어떤 의사도 곁에 없기를 바란다. 의학은 삶에 대해 거의 아는 것이 없는 것처럼 보이며, 죽음에 대해서도 무지한 것처럼 보인다’로 시작되는 그 글은 ‘나는 단식을 하다가 죽고 싶다’라고 이어진다.

죽는 순간까지 그는 자신의 삶의 주어였다. 그는 주위 사람들에게 또 이렇게 써놓았다. ‘나는 죽음의 과정을 예민하게 느끼고 싶다. 나는 힘이 닿은 한 열심히 충만하게 살아 왔으므로, 기쁘고 희망에 차서 간다. 죽음은 옮겨감이거나 깨어남이다’. 그는 자신을 화장한 다음 뼛가루를 자기 농장에 뿌려 주기를 바랐다. 그는 20년 전에 계획한 그대로 죽어 갔다…. 이렇게 소개하다 보면 종교 지도자 혹은 신비주의자의 생애가 떠오를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는 경제학자였고 사회주의자였으며 생태주의자였다. 스콧 니어링. 그는 20세기를 지배한 문명과 체제에 순응하지 않고 땅에 뿌리 박은 삶, 다시 말해 새로운 삶의 방식을 실천하고 간 사람이었다. 53년 동안 그의 동반자였던 아내 헬렌 니어링이 쓴 책을 최근 이석태 변호사가 우리말로 옮긴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보리 펴냄)는 헬렌의 눈에 비친 스콧 니어링의 생애와 사상이다.

“소유는 적게 삶은 충만하게” 삶의 철학 실천

스콧을 만나기 전에 헬렌은 크리슈나무르티의 첫사랑이었다. 미국 중산층 가정에서 성장한 헬렌의 꿈은 바이얼린 연주자였다. 바이얼린을 배우기 위해 네덜란드로 유학을 떠났다가 거기에서 신지학회의 ‘세계 교사’로 발돋움하던 크리슈나무르티와 만났다. 하지만 헬렌은 크리슈나무르티의 가르침과 생활에 실망했다. 그의 ‘말씀’은 자기 모순에 빠져 있고, 그의 삶은 상류 사회에 속해 있었다.

미국으로 돌아와 스콧 니어링을 만나면서 헬렌의 삶은 일대 전환을 이루었다. 크리슈나무르티로부터 ‘영혼’에 대한 감수성을 배웠다면, 21년 연상인 스콧으로부터는 현실을 보는 눈과 비순응주의를 배웠다. 그는 스콧의 권유로 사탕 공장 등에 ‘위장 취업’을 하기도 했다. 궁핍에 시달리던 두 사람은 버몬트의 시골로 들어가 땅에 뿌리 박은 삶을 시작했다. 그때가 32년. 그들은 라디오와 텔레비전과 전화를 사용하지 않았고, 채식을 했으며, 정기적으로 단식을 했다. 스콧은 강연과 50여 권이 넘는 저서와 정기 간행물을 통해 인류와 지구의 미래를 염려하면서, 아내 헬렌과 함께 농사를 지었다.

버몬트가 도시화하자 두 사람은 더 깊은 시골인 메인으로 이사해 새 농장을 개척했다. 그들의 메인 농장은 ‘세계의 학교’였다. 지속 가능한 삶을 바라는 사람들이 전세계에서 찾아들었다. 20세기 미국 사회는 곧 20세기 문명이었다. 19세기 후반에 태어나 20세기 후반에 세상을 떠난 스콧의 삶은 20세기의 주류로부터 배제되었다. 하지만 그는 헬렌과 더불어 21세기를 위한 한 비상구를 열어놓았다. 스콧이 일생 동안 실천한 삶의 철학은‘적게 갖되 충만하게 살자’였다.

하지만 이 책은, 헬렌이 본 스콧이어서 스콧이 품었던 사상의 전모를 파악하기는 어렵다. 다만 다음과 같은 기록들에서 그 사상의 일단을 짐작할 수 있을 따름이다. 스콧이 보기에 오늘날 지배 계층의 프로젝트는 추하고 저급하며 사람들을 노예로 만드는 제도이지만, 그의 반(反) 프로젝트는 ‘욕구를 최대한 줄이는 데에서 진정한 자유’를 찾고, 자립과 에너지 보존에 바탕을 두고 성장을 추구하는 해방의 철학이었다.

91년에 이 책을 쓴 헬렌 니어링은 95년 스콧의 뒤를 이어 조용히 세상을 떠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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