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성철 스님 사리탑 파문
  • 합천 해인사·李文宰 기자 ()
  • 승인 1997.10.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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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지 만들 셈이냐” 건설 불가론에 “대중 위한 신앙 공간” 찬성론 맞서
성철 큰스님 4주기(10월21일·음력 9월20일)를 앞두고 해인사가 내출혈을 겪고 있다. 해인사 재적승 및 해인사 강원 동문 스님 백여 명으로 구성된 상림회(공동의장 원학·향적·여연)와, 성철 큰스님을 은사로 모셨던 백련암 성철 스님 문도회(대표 천제·만수·원융·원택 외 14인)가 내년 초 완공될 예정인 성철 큰스님 사리탑을 조성하는 절차와 규모를 둘러싸고 서로 대립하고 있는 것이다.

얼핏 보기에 이번 사태는 성철 큰스님 사리탑의 규모를 놓고 사찰 내 문중 사이에서 주도권 다툼을 벌이는 것으로 비치지만, 그 속내에는 1천2백 년 고찰 해인 총림의 정체성과 미래에 대한 시각 차이가 깔려 있다. 상림회측은 대규모로 조성되고 있는 큰스님 사리탑 공사에서 볼 수 있듯이 청정 수행 및 교육 도량인 해인사가 개발 위주 정책을 지향해 해인사의 정통성이 흔들리고 있다는 위기 의식을 공유하고 있는 반면, 백련암 측은 성철 스님의 사리탑이 한 개인의 묘지가 아니라 대중을 위한 신앙 공간이며, 개발 사업은 21세기를 위한 ‘제2의 해인사’건설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어 서로 접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지난 여름부터 불거진 양측의 갈등에서 성철 큰스님 사리탑 건설을 둘러싼 논란은 상징적으로 보인다. 상림회측은 대규모로 지어지고 있는 사리탑 공사뿐만 아니라 옛 해인 초등학교에 세워지고 있는 박물관(성보 유물관 등)과 납골당 계획 등 해인사 개발 사업 전반을 문제 삼고 있기 때문이다. 10월13일 현재, 이번 사태는 해인사 내부 문제를 벗어나 종단 차원으로 번졌다.
지난 10월7일 오전 11시, 상림회가 서울 조계사 교화 사무국에서 기자회견을 가지면서 지난 8월부터 내연해 왔던 이번 사태는 산문 밖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이번 사태는 사찰 분규가 아니다”라고 강조한 상림회측은 ‘해인 총림의 청정 가풍 회복과 교육 도량 정립을 위하여’라는 성명서에서, 새로 출범한 해인사 운영자들이 ‘수행 풍토 진작과 승가 교육 진흥이라는 시대적 요청에 부응하지 아니하고 가람 불사를 빙자한 개발 사업에 몰두하는 등 총림 운영 방향을 잘못 이끌어 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상림회가 가장 먼저 문제 삼은 불사가 성철 큰스님 사리탑 조성이다. 성명서에 따르면, 사리탑 건설 부지 사용을 허가하는 과정에서 95년 3월 산중 임회(해인사내 중진 스님들의 회의체)가 결의한 ‘총부지 1백8평 이내로 할 것’을 무시하고 주지가 일방적으로 천평을 사용하겠다고 문화재 현상 변경 신청서를 관계 부서에 제출해 승인을 받고 현재 공사를 진행하고 있다면서, 다음과 같은 이유를 들어 공사 중단을 촉구했다.

먼저, 기하학적으로 이루어진 사리탑의 조형 형태가 천년 고찰의 주변 경관과 조화되지 않는다. 둘째, 천 평 넘는 부지를 차지하는 대형 사리탑은 불교사에도 유례가 없는 호화 사리탑이어서 불교 정신에 부합하지 않으며, 청빈한 가풍을 보였던 성철 큰스님의 뜻에도 어긋난다. 셋째, 현재 사리탑 공사가 진행되고 있는 부지 일대는 해인사의 많은 원로 대덕과 재적승들의 부도가 안치될 비림(비석거리)으로 이미 결정되어 있는데, 특정 스님의 사리탑이 지나치게 대형화한다면 형평성에 위배된다. 넷째, 대대적인 모금을 통해 건설되는 호화 사리탑은 평소 시주 은혜를 지는 것을 경계한 큰스님의 뜻에 배치된다.

상림회는 현재 옛 해인 초등학교 자리에 세워지고 있는 박물관(성보 유물관)과 만불전(국제회의장), 수련원, 연구소 등과 매점·다실 등 부대 시설 공사에도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상림회는 성명서를 통해,이 공사는 2002년 해인사 창건 1200주년을 맞아 추진하는 ‘제2의 해인사’ 건립인데, 이 계획이 타당성과 사업성을 충분히 검토하지 않은 ‘밀실 행정의 산물’이며, 이 사업을 수년 전 재정에 물의를 일으켜 사중의 징계를 받은 스님이 도맡고 있는 것도 옳지 않다고 밝혔다.
상림회가 마지막으로 지적한 것이 납골당 건설이다. 상림회에 따르면, 명찰에는 묘를 쓰지 않는 것이 관행이며, 특히 팔만대장경을 봉안하고 있는 해인사에 대규모 납골당을 건립하는 일은 결코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다.

조계종 합동 조사 착수, 10월말 결말날 듯

상림회측이 기자회견을 가진 다음날, 해인사 백련암 대표 14인은 반박 성명서를 내놓았다. 백련암측은 ‘성철 대선사 사리탑 불사에 대한 우리의 입장’에서 ‘법보 종찰 해인사를 찾는 많은 사부 대중에게 참 나를 찾는 사색 공간으로 자리매김할 성철 큰스님의 사리탑 불사, 즉 선(禪)의 공간 건설에 대한 일부의 왜곡된 시각이 있다’고 지적하면서 공사 규모와 형태, 부지, 공사 과정과 사리탑의 성격, 비용 문제 등에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백련암측은 우선 큰스님 사리탑이 차지하는 평수는 총 1백62평이라고 밝혔다. 또한 실제로 사리탑이 차지하는 공간은 약 30평으로 ‘선의 공간’ 중앙에 위치하고 높이는 3.6m로 일반 대중에게 친숙한 형태이며, 나머지 공간은 누구나 쉴 수 있고 다양한 행사도 할 수 있는 공간으로 설정되어 있다는 것이다. 또 사리탑의 조형 형태가 주변 경관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큰스님 사리탑 형태를 정하기 위해 이 분야의 권위자인 김동현 문화재연구소장, 정영호 교원대 교수, 주남철 고려대 교수 등을 자문위원으로 위촉하고 재일 작가 최재은씨에게 사리탑을 설계하도록 했다고 반박했다.
성명서에 따르면, 현재 공사 중인 사리탑은 명칭이 성철 스님 사리탑일 뿐 실제적으로는 해인사를 방문하는 모든 대중이 사용할 수 있는 휴식 및 사색 공간으로 계획된 것이며, 사리탑 공간은 세인들의 묘지 공간이 아니라 신앙 공간이라는 것이다. 백련암측은 ‘조촐하고 소박하게 (사리탑 불사를) 하는 것이 큰스님을 위한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이는 많은 대중의 이익과 불자 교화의 중추인 해인사의 역할을 간과하는 소아적 생각’이라면서, 승가의 일은 승가 내에서 처리·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10월9일 상림회는 백련암측 주장에 대해 다시 반박하고 나섰다. 백련암측이 밝힌 1백62평은 사리탑이 안치될 중심부만을 계산한 것이며, 1백62평도 유례가 없이 큰 규모라고 지적했다. 또한 임회의 결정 사항은 사리탑 부지를 허락한 것이지, 각종 불교 행사나 휴식 공간으로 허락한 것이 아니라고 밝혔다. 백련암측이 주장하는 성격의 공간은 큰스님 생가 터나 다른 사찰을 택해야 할 것이라는 반론을 폈다. 승가 내의 일은 승가 안에서 해결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상림회는 ‘사리탑 토목 공사가 본격화하던 8월부터 수 차례 건의와 요청을 했지만 이를 묵살하고 공사를 강행했다’면서 ‘산중 내에서 시정 노력이 불가능하다고 보아 종단과 교계 여론에 호소하게 된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 10월11~12일에 벌어진 해인사에 대한 중앙종회와 총무원의 정기 감사 결과 성철 큰스님 사리탑 크기가 적절치 못하며, 납골당 건립 과정의 하자도 드러난 것으로 알려졌다. 10월13일부터는 조계종 호법부·재무부·감사부 등으로 구성된 합동조사부가 해인사 현지에서 사리탑과 박물관 건립 등 이번 사태에 대한 전반적인 조사에 들어가 늦어도 10월 하순 께에는 사태가 일단락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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