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로와 뮤지컬의 '화학적 결합'/<어둠 속의 댄서>
  • 노순동 기자 (soon@e-sisa.co.kr)
  • 승인 2001.02.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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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 폰 트리에 감독/
비요크의 연기·디지털 미학 돋보여/font>

지난해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어둠 속의 댄서>는 라스 폰 트리에 감독 못지 않게 주연 배우 비요크 때문에 널리 회자되었다. 디지털 카메라 100대를 동원해 찍었다는 이 영화의 리듬감은, 가수인 비요크의 몸을 빌리지 않고서는 생기를 얻기 어려웠을 것이다. <어둠 속의 댄서>는 아들의 수술을 위해 미국에 건너간 체코 출신 미혼모가 겪는 고생담을 뮤지컬 형식에 녹여낸 작품이다. 대중적 장르인 멜로와 뮤지컬이 만난 만큼 인기가 높았다. 물론 환대가 지나치다고 생각했는지 일부 비판자들의 시선은 더욱 싸늘했다. 프랑스 영화 전문지 <카이에 드 시네마>와 영국의 <가디언>은 '진부하고 단순하며 새로운 것이 없다'고 별 4개 만점에 별을 달랑 하나만 주었다.

대상을 받을 자격이 있느냐는 논쟁과는 별개로 이 작품의 대중적인 흡인력은 작지 않다. 가난한 미혼모 셀마(비요크)의 삶은 좀체 풀리지 않는다. 점점 시력을 잃어가고 있는 데다가 아들마저 같은 병을 앓고 있기 때문이다. 공장에서 일하면서도 뮤지컬 배우의 꿈을 접지 않았던 그녀는, 점점 병이 깊어져 직장을 다닐 수 없는 지경이 되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그동안 한푼 두푼 모았던 아들의 수술비마저 도난당한다. 그것도 믿었던 친구의 짓이었다. 셀마는 집주인이자 경찰인 그와 실랑이를 벌이다 실수로 총이 발사되는 바람에 살인자가 된다. 이처럼 셀마의 성격은, 자신이 좋아하는 뮤지컬 <사운드 오브 뮤직>의 마리아 못지 않게 씩씩하지만, 삶의 행로는 뮤지컬 속 주인공과는 판이하다. 감옥에 갇힌 셀마가 벽에 머리를 짓찧으며 우울한 기분을 떨치는 데 좋다는 <사운드 오브 뮤직>의 삽입곡 <페이버리트 송>을 부를 때 그 차이는 더욱 극명해진다.

나이를 짐작할 수 없는 비요크의 얼굴은, 번득이는 장난끼와 우수를 한데 아우르고 있다. 기쁠 때 묘한 애조를 띠고, 슬플 때 미소가 감돈다. 그의 실제 나이는 서른여섯. 열한 살 때 데뷔 음반을 낸 후 아이슬란드에서는 자기 색깔이 뚜렷한 가수로 자리를 잡았다. 여우 주연상을 받음으로써 세계적인 스타가 되었지만 그녀는 배우가 아닌 가수로 살겠다고 밝혔다.

촬영 감독 로비 뮬러는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빔 벤더스), <고스트 독>(짐 자무시), <데드맨>(짐 자무시), <파리 텍사스>(빔 벤더스) 등에 참여한 인물이다.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에 이어 디지털의 미학을 탐색하고 있는 셈이다.


'섬세한 뒷손질'로 흡인력 높여


라스 폰 트리에는 널리 알려진 대로 스크린에서 화장을 몰아내겠다는 다짐인 '도그마 선언'을 주도했던 인물이다. 하지만 <어둠 속의 댄서>는 그런 사람의 작품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만큼 양식미가 돋보인다. 영화는 촬영 후 색 보정에만 6개월이 걸렸다. 카메라 100대가 촬영한 화면을 편집하는 일은 또 얼마나 복잡했을까. 그 덕에 영화에 6∼7회 등장하는 뮤지컬 장면은, 소박하면서도 놀라운 흡인력을 발휘한다.

공장의 거친 기계음은 어느 순간 탭 댄스를 위한 반주가 된다. 셀마의 옆을 스쳐가는 기차의 소음은 그대로 노래가 되고, 기차는 기꺼이 자신의 몸을 뮤지컬 무대로 내어준다. 현실의 거친 소음이 음악으로 바뀌는 대목은, 음악의 탄생을 보여주는 듯 신비롭다. 그런 공간 속에서는 일상의 몸짓도 그대로 춤사위가 된다.

영화는 결국 비극으로 끝난다. 사형대에 오르는 셀마의 인생은, 영화의 초반부에 그녀가 불렀던 노래와 조응한다. '볼 게 뭐 있어요? 난 모든 걸 다 봤는걸요. 채 다 살아 보기도 전에 이미 예전에 다 보고 알아버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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