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한 맺힌 넋 잠재우는 한판 굿
  • 이문재 기자 (moon@e-sisa.co.kr)
  • 승인 2001.06.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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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영 소설〈손님〉,
신천 학살 사건 규명하며 기존 리얼리즘에 도전


소설이 역사와 긴장할 때, 소설이 쓸 수 있는 무기는 '사실'과 '형식'이다. 사실이 부족할 때 형식을 앞세우고, 형식이 모자랄 때 사실을 우선한다. 무기는 둘이지만 그 둘을 양손에 들기란 쉽지 않다. 황석영씨(58)가 최근 펴낸 장편소설 〈손님〉(창작과비평사)은 사실과 형식을 양손에 들고 당당하게 현대사·현대 문학과 대결한다. 여기서 사실이란 남쪽에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은 '신천 학살 사건'이고, 형식이란 기왕의 리얼리즘에 대한 도전이다.




〈손님〉의 줄거리는 단순하다. 줄거리만 소개한다면, 그거 단편소설 아니야? 라고 반문할 수도 있다. 소설이 발굴한 신천 학살 사건도, 그런 사건이 남쪽에서 얼마나 많았는데…라며 시큰둥해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황석영의 소설에서 단편적인 줄거리는 중층적인 시각과 다성(多聲)적인 목소리를 획득하고, 사건은 20세기 한반도가 겪은, 그리고 지금도 겪는 비극의 핵심에 자리 잡는다.


소설 제목이 은유하는 손님은 둘이다. 기독교와 마르크시즘이라는 두 손님. 작가는 한반도의 '특수한' 20세기가 저 두 손님 사이의 불화에서 비롯되었다고 파악한다. 식민지·전쟁·분단의 발원지가 저 손님과 손님 사이, 손님과 주인 사이의 갈등이라는 것이다.


황해도 신천 찬샘골에서 태어나 한국전쟁 시기에 월남해, 일찍이 미국으로 이민한 기독교인 류씨 형제. 형 류요한은 장로이고, 동생 류요섭은 목사다. '빨갱이'를 극도로 혐오하는 요한에게는 고향, 즉 과거가 없다. 화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동생 요섭이 50년 만에 고향을 찾아가기 3일 전, 형 요한은 미국에서 홀로 세상을 떠난다.


흑백 화면이 문득 컬러 화면으로 바뀌는 것처럼 소설은 현재와 과거를 넘나드는데, 현재가 소설 속에서 살아 있는 인물들이라면, 과거는 '구신' '헛것'들을 통해 수시로 등장한다. 소설은 이 초현실들(리얼리즘이 무시해 왔던)에게 리얼리즘의 자격을 부여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전통적 리얼리즘의 주인공인 류요섭 목사의 상대자는 고향 신천의 오늘이나, 미제 학살 기념 박물관이라기보다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나타나는 저 '중음신'(넋)들이다.


북한의 오늘이 시차 없이 수용된 최초의 소설


북한의 오늘이 시차 없이 수용된 최초의 소설이기도 할 〈손님〉은 1950년 늦가을, 황해도 신천에서 45일 동안 벌어진 광기의 번제(燔祭)를 저 중음신들의 현현을 통해 복원해낸다. 50년 전 구월산 인근에서 벌어진 비극은, 북한이 규정한 것처럼 '미군에 의해 저질러진 대중 학살'이 아니라 이 땅의 기독교도와 사회주의자 사이에서 벌어진 복수극이었다. 작가는 '이 작품에 그려진 사실들은 '우리 내부에서 저질러진 일'이었으므로 북이나 남의 어떤 부류들이 매우 싫어할 내용일지도 모른다'라고 후기에 밝혔다.


'조선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이웃들을 처단한 류요한 장로의 뼈 한 조각을 고향 땅에 묻으면서, 50년 전 그 해 늦가을 서로 총칼을 휘둘렀던 동족들은 '헛것'으로 다시 만나 화해를 이룬다. 아들을 낳는 순간 남편 요한과 생이별했던 북의 형수는, 남편의 뼈를 들고 온 시동생 요섭에게 이렇게 말한다. "죄많언 넋이 고향에 돌아왔시니께 맞아줄 혼령덜두 씻김얼 해줄 거여."


황석영씨가 〈손님〉을 쓰기 시작하던 지난해 6월, 남과 북의 정상이 만났고, 이산 가족들이 서로 만났다. 작가는 그 모습을 지켜보며 이렇게 썼다. '서구에서 냉전이 사라진 지 10여 년이 지나서야 겨우 변방의 얼음이 녹아내리고 있었다. 그런데 이제 보니 사실상 무서운 '손님 마마님'은 아직도 미국이 아닌가.'


지난 5월 하순, 지리산에서는 분단 이후 처음 범종교계가 손을 잡고 한국전쟁 때 지리산 일대에서 죽어간 군인·경찰·민간인·인민군·빨치산의 넋을 달래는 위령제를 지냈다. 민족의 화해와 생명과 생명 사이의 평화를 위한 '씻김굿'이었다. 그리고 곧이어 황석영씨의 〈손님〉이 나온 것이었으니, 〈손님〉은 황씨가 이 땅의 독자들과 함께 지내는 '구월산 위령제'인 것이다.


역사를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책은 많지만, 실제로 역사를 바꾼 책은 그리 많지 않다. 1962년 미국에서 나온 레이철 카슨의 <침묵의 봄>은 <종의 기원>이나 <자본론>처럼 역사의 흐름을 바꾼 환경생태학의 고전이자 현재에도 유효한 교과서로 꼽힌다. 이 책은 세계를 대표하는 석학 100인이 뽑은 ‘20세기를 움직인 책 10권’ 중 4위로 선정되었고, 저자 카슨은 <타임>이 뽑은 ‘20세기를 변화시킨 100인’ 가운데 한 사람으로 뽑혔다.


정식 출판 계약을 맺고 최근 번역된 <침묵의 봄>(김은령 옮김, 에코리브로 펴냄)은, 역사의 물꼬를 튼 저작들이 그렇듯이 출간 당시에는 박해를 받았다. 미국 들판에 무차별하게 뿌려지는 유독성 화학물질의 광범위한 폐해를 고발한 이 책은, 언론과 학계, 정부 관리, 농약제조업체 들로부터 십자포화를 맞았다.


의학 전문 평론가 윌리엄 B. 빌은 ‘카슨이 비과학적인 우화에 바탕해 책을 써서 소란을 피운다’고 공격했다. 농약제조회사는 더했다. ‘카슨의 잘못된 주장이 문명을 중세 암흑 시대로 되돌려 놓고 있다’고 비난을 퍼부었다. 언론도 ‘카슨이 쓴 책은 그녀 자신이 저주하는 살충제보다 더 독하다’며 가만히 있지 않았다.


카슨은 수많은 적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카슨은 비밀 핵실험, 화학회사의 연구 지원금 앞에서 고개를 숙이는 과학계, ‘대중성’을 폄하하는 학계의 권위주의, 여성 학자를 깔보는 남성우월주의와 싸워야 했다. 그러나 가장 큰 적은 자연을 착취 대상으로 여기는 인간 중심주의와 광적인 과학기술 만능주의였다.


하지만 카슨과 <침묵의 봄>은 침묵하지 않았다. 카슨에 대한 전방위적 공격은 카슨의 ‘경고’를 널리 홍보하는 결과를 낳았다. 그녀의 책은 1962년 가을 베스트 셀러로 떠올랐고, 이듬해 케네디 대통령 과학자문회의는 카슨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1969년, 미국 의회는 국가환경정책법을 통과시켰으며, DDT 사용을 금지하기 시작했다. 지구의 날(4월22일)이 제정된 것도 <침묵의 봄> 때문이었다.


대지와 식물, 식물과 식물, 식물과 동물 사이에는 절대 끊을 수 없는 친밀하고 필수적인 관계가 존재한다는 카슨의 발언은 40년이 지난 지금, 상식적으로 들린다. 하지만 카슨의 열정과 탐구, 그리고 인간의 무지와 오만에 대한 분노가 없었다면, 생명의 침묵(죽음)은 훨씬 앞당겨졌을 것이다. 카슨은 말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겸손함이다. 과학적 자만심이 자리 잡을 여지는 어디에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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