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자본주의 돋보기'로 다시 읽은 중국
  • 이화승 (전북대 강사·중국 사회경제사) ()
  • 승인 2001.06.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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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련위 지음〈…중국의 21세기〉/
"중국사는 자본주의와 마주치는 장기 혁명 과정"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이 다가오면서 중국과 자본주의에 관한 문제가 다시 담론이 되고 있다. 중국에 관심을 많이 가진 독자들조차 사회주의 체제인 중국과 자본주의가 도대체 무슨 관계가 있느냐고 반문할 수 있겠지만, 사실 이 문제는 역사학계의 오랜 토론 주제였다.




1960년대 중반, 유물사관론자들은 이른바 자본주의 맹아론을 제기했다. 유물사관에 따르면, 인류 역사는 원시·노예·봉건·자본주의 사회를 거쳐 사회주의로 정착된다. 중국에는 1949년 이미 사회주의 체제가 성립했으므로 그 전 단계인 자본주의를 찾아야 할 당위성이 제기되었다. 결국 16세기 전후 중국 강남(양자강 이남 지역)을 중심으로 일어났던 경제 변혁에 이들은 주목했다.


그러나 역사를 유물론 공식에 꿰어 맞추어 정치 체제를 합리화하려 했던 경직된 논리는 오히려 역사학자들에게 당시 경제 변혁의 진정한 원동력이 무엇인가를 찾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빠른 인구 증가, 과거 제도의 언저리에 있던 많은 사대부들이 상업으로 순환되는 '사상 합류(士商 合流)'의 거대한 흐름, 근검·절약·성실·노동 등 전통 가치 체계가 자연스럽게 상업에 투과되어 형성된 '고도(賈道)'라고 부르는 중국 특유의 상인 철학 등이 재조명받게 되었다.


그러나 상·하층 구조 간의 안정과 기동성, 효과적 세수 관리와 합리적 예산 분배, 그리고 무엇보다 사유 재산권에 대한 확실한 보장을 특징으로 한 자본주의가 하나의 강력한 시스템으로 등장한 것은 중국 근대기이다. 서양 열강은 불과 2백 년 전까지만 해도 자기들보다 앞선 체제와 문화를 자랑하던 중국을 아편전쟁을 통해 마음껏 유린했지만, 중국 정부의 대응은 느리고 소극적이었으며, 전통 경제 체제 역시 무력하게 무너졌다. 왜 그럴 수밖에 없었을까. 경제 변혁을 주도했던 전통적 가치는 자본주의와 아무런 상관 관계도 없는 것일까.




이 물음에 대한 다양하고 세밀한 연구 중에서 〈자본주의 역사와 중국의 21세기〉(이산)만큼 거시적 태도를 견지한 책은 찾아보기 어렵다. 저자는 중국의 역사 전개 과정을 중국이 자본주의와 마주하기 위한 장기간의 혁명이라고 보고 문제의 시제를 과거에서 미래로 확대했다.


중국의 미래 자본주의를 설득력 있게 조망


저자는, 이 거대한 나라는 굳건한 사회 조직 유지를 개인의 사유 재산 보장보다 우선했기 때문에 자본주의가 출현하지 못했고, 출현할 필요도 없었다고 주장했다. 사회 대부분의 하층 구조는 어떠한 변화에도 미동하지 않고 어제와 똑같이 반복되는 오늘을 보내고 있었는데, 이같은 상황에서 '들짐승이 단숨에 날짐승이 되기'를 기대하기는 저자에게 불가능한 일이었다.


저자가 세계 각국의 자본주의 전개 과정을 돌아보는 긴 여정은 조금 지루해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다양하고 복잡한 요소들이 자본주의라는 사회 경제 체제로 정착하는 이들 나라의 사회 변천 과정은 분명 중국과 상대적 대비를 이루고 있다. 과거 중국에서 자본주의가 어떤 형태로 존재했었는가보다 미래에 자본주의가 중국에서 어떻게 발전할 것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저자의 거시적 관점은 대단히 설득력을 지니고 있다. '장기 혁명'을 통해 다져진 중국 사회의 내재적 가치들이 자본주의와 마주해 어떤 모습을 나타낼지, 자본주의를 통해 중국을 보았던 시각에서 벗어나 이제 중국을 통해 자본주의를 바라보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 살피는 과제가 우리에게 남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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