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사이버 대학, 교육 혁명 일으킬까
  • 박성준 기자 (snype00@e-sisa.co.kr)
  • 승인 2001.07.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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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적 출발, 왜곡된 교육 구조 바꿀 잠재력 보여…
난제 많이 '낙관' 금물


서울 사당동에 있는 작은 디자인 회사 직원인 박경순씨(28)는 지난 3월 늦깎이 대학생이 되었다. 직장 생활 8년 만에 이룬 꿈이었다. 1990년대 초반 고등학교를 졸업한 그녀는 대학 문턱까지 갔다가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꿈을 접었던 아픈 사연이 있다.


그런 박씨에게 직장을 그만둘 필요 없이 4년제 대학 정규 과정을 밟을 수 있는 길이 열린 때는 지난해 11월. 컴퓨터만 있으면 학교에 직접 나가지 않고서도 수업을 들을 수 있는 원격 대학, 이른바 '사이버 대학'이 교육 당국으로부터 정식 허가를 받고 신입생을 모집했던 것이다.


현재 박씨가 적을 둔 학교는 성균관대·용인대·중앙대 등 14개 대학이 컨소시엄을 구성해 문을 연 열린사이버대학. 정원 2백명인 이 대학 인터넷컨텐츠학과에 새내기로 입학해 1학기를 보낸 그녀는, 지난 4개월 간을 '고달펐지만 보람 있었던 기간'이라고 말한다. 귀가 후 컴퓨터 앞에 앉아 오전 1∼2시를 넘기기 일쑤였지만, 무엇보다 자기가 필요로 했던 인터넷 디자인 관련 지식을 기초부터 차근차근 다져간다는 기쁨에 고달픔을 말끔히 씻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평생 교육 강화'와 '지식 기반 사회 구축'을 목표로 지난 3월 일제히 문을 연 사이버 대학들이 당초 우려와 달리 1학기 학사 과정을 순조롭게 마무리하면서 빠르게 정착되어 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사이버 대학의 주무 부서로서 전문가로 구성된 모니터 팀까지 운영하며 초기 출발 상황을 불안하게 지켜보던 교육인적자원부 평생교육국 관계자들은 별 탈 없이 1학기가 끝나자 안도의 숨을 내쉬고 있다. 학생들이 혹시나 등록만 해놓고 수업을 듣지 않을까 가슴 졸이던 학교측도 학생들이 학기 중 평균 80∼90% 수강률을 보이자 자신감을 갖는 표정이다.


신입생들도 새로운 대학 환경에 빠르게 적응하고 있다. 온라인 수업과는 별도로 오프라인에서 모임을 갖고 총학생회까지 꾸리는 등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일부 사이버 대학에서는 최근 학생들의 이해를 대표할 총학생회를 띄우기 위한 선거전이 치열하다.


인터넷 게시판에는 학기가 끝나면서 연일 체육대회 등 친목 모임을 제안하는 공고가 뜨고 있다. 세종사이버대학 홈페이지에는 만화애니메이션학과의 홍보부장이 '체육대회 개최'를 알리는 공고문이 올랐다. 공고문 내용도 이채롭다. 학우 대부분이 기혼 직장인이라는 점을 감안해 '아기를 데리고 나오면 성심 성의껏 돌보아 주겠다'는 애교 섞인 다짐도 들어 있다.


사이버 대학은 평생교육법 제22조에 근거를 둔 제도로서 일종의 평생 교육 시설(관련법에 따른 정식 명칭은 '원격 대학')이다. 인터넷을 통한 강의와 토론·시험을 거쳐 교육 과정을 이수할 경우 인터넷 수업만으로 정규 학사 학위를 받을 수 있다. 또 사이버 대학은 고등학교 졸업장 또는 검정고시 합격증만 있으면 누구나 입학할 수 있다.


신입생 중 대졸 이상 학력자 10% 넘어




바로 이 점 때문에 사이버 대학 신입생들의 인적 구성은 기존 오프라인 대학과 대별된다. 우선 나이 분포. 한국디지털대학이 개강 초기를 기준으로 작성한 통계에 따르면, 전체 등록 신입생 가운데 절반 이상이 20대 후반∼30대에 분포해 있다. 이 대학에는 50대 이상 고령 새내기도 25명에 이른다.


학력·직업 분포도 다양하다. 고졸자가 압도적이지만, 전교생이 9백명에 가까운 이 대학에는 전문대 졸업자가 1백49명, 대학 졸업 이상 학력 소지자도 100명이 넘는다. 한마디로 고학력 새내기가 즐비하다. 학생들의 직업도 근로자·자영업체 사장·금융회사 간부·교수 등 다양하다. 황두연 대한무역진흥공사 사장과 손진영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사무처장도 서울사이버대학 학생이다.


잘 운영할 경우 사이버 대학은 한국 고등 교육의 왜곡된 구조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는 커다란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한국의 고등 교육은 교육 내용의 부실함과 폐쇄적인 운영을 특징으로 한다. 고등 교육 체계의 폐쇄성은 또한 한번 입학 시기를 놓치면 엄청난 희생을 각오하지 않고서는 좀처럼 고등 교육 기회에 접근할 수 없는 상황을 초래했다.


한국디지털대학 산파역을 맡았던 신준용 교수(고려대·경영학)는 사이버 대학이 이같은 교육 현실에 혁명을 가져다 줄 수 있다고 믿어온 사이버 대학 예찬론자다. 그가 이같은 믿음의 근거로 제시하는 중요한 사항은 두 가지다. 첫째, 사이버 대학은 시대적 요청이요 대세이다. 둘째, 진정한 의미의 교육 혁명은 교육 방식이 아니라 내용, 즉 컨텐츠의 혁명이라는 점에서 사이버 대학은 교육 혁명을 앞당길 수 있다.


사이버 강의는 교수들의 강의 내용과 수업 태도가 실시간으로 학생에게 전달되고, 이에 대한 학생의 반응 또한 실시간으로 교수에게 전달되는 특징을 갖는다. 게다가 학생들 중 일부는 강사 못지 않은 전문성과 지식을 가지고 있다. 엉터리 강의 내용을 내보냈다가는 당장 빗발치는 항의를 받게 된다. 공개적인 강의 평가가 매순간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 때문에 사이버 대학에서 모범이 되는 대학(또는 수업)이 생기면 나머지 다른 대학도 '최소한의 수준'에 도달하기 위해 컨텐츠 내용을 개선할 수밖에 없는 분위기가 형성된다는 것이다. 이 점이 바로 교육 개혁의 시발이 될 것이라고 신교수는 잘라 말했다.


아직 속단하기는 이르지만, 사회적 평가 면에서 벌써 이같은 조짐은 나타나고 있다. 사이버 대학 강사가 학생들 질문에 성실하게 답변하지 않으면 그 즉시 수천 통의 항의가 날아가는 사태가 벌써 여러 대학에서 벌어졌다. 사이버 대학 학생들 사이에서는 '어느 대학 무슨 강의는 무엇이 문제더라' 하는 식의 강의 평가가 인터넷을 타고 광범위하게 유통되고 있다.


교수들도 바로 이같은 특수성 때문에 인터넷 강의에 나설 때면 긴장도가 매우 높아진다고 말한다. 경희사이버대학 학장이자 이 대학 e비즈니스학과 과목을 맡아 한 학기 동안 강의를 진행했던 권문택 교수(경영학)는 "오프라인 대학 수업 중에는 가끔 농담도 하면서 분위기를 끌고 갈 여유가 있었지만, 인터넷 수업에서는 전혀 달라진다. 수업중 무심코 던진 농담 한마디가 엄청난 비난의 표적이 되어 돌아올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털어놓았다.


사이버 대학의 또 다른 강점으로는 '면대면 교육'의 내실화를 꾀할 수 있다는 점이 꼽힌다. 일반인에게 면대면 교육의 전형은 교수와 학생이 한 강의실에서 만나는 기존 오프라인 대학의 수업으로 이해되고 있다. 하지만 대형 강의실에서 질문 한 번 오가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강의가 진행되기 일쑤인 오프라인 강의는 겉모습만 면대면이지 실제 내용은 전혀 그렇지 않다. 이와 달리 인터넷 강의에서는 학생의 출석률과 수업 태도에 관한 각종 정보가 실시간으로 교수에게 전달되어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학생과 대화할 수 있으므로 훨씬 높은 면대면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것이다.


다양한 학과 개설할 인력·컨텐츠 확보 못해




사이버 대학에 어떤 학과 있나



















































명칭 설치 학과 연락처
경희사이버대학교
www.cyber.khu.ac.kr
미디어문예창작과
e-business학과
디지털미디어학과
02-968-2233
세계사이버대학
(전문 학사 학위 과정)
www.world.ac.kr
사회복지학과
디지털실용음악학과
인터넷비즈니스학과
약용건강식품학과
관광호텔외식학과
041-736-6071
041-735-7431∼5
한국디지털대학교
(KDU)
www.koreaDU.ac.kr
디지털경영학과
디지털정보학과
디지털미디어학과
문화예술학과
디지털교육학과
사회복지학과
실용어학과
02-313-6100
02-363-9966
세종사이버대학교
www.cybersejong.ac.kr
호텔관광경영학과
e-business학과
게임PD학과
만화애니메이션학과
인터넷학과
02-3408-3841∼3
세민디지털대학
(전문 학사 학위 과정)
www.kcc.ac.kr
영어과
관광과
멀티미디어학과
053-810-0182
서울사이버대학교
(SCU)
www.iscu.or.kr
정책학부
경제통상컴퓨터학부
02-541-4600
열린 사이버대학교
(OCU)
www.ocu.ac.kr
인터넷컨텐츠학과
인터넷경영학과
컴퓨터디자인학과
인터넷어학과
02-760-0813
02-760-0815
한국사이버대학교
(KCU)
www.kcu.or.kr
온라인실용영어학과
벤처경영학과
법학과
정보통신학과
디지털미디어디자인학과
02-363-7442
02-364-2852
서울디지털대학교
(SDU)
www.sdu.ac.kr
법률정보학과
경영학과
멀티미디어학과
국제지역학과
02-2128-3000


이처럼 많은 장점에도 불구하고 사이버 대학이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장벽도 많다. 먼저 학과의 다양화. 대학에 따라 미디어문예창작과(경희사이버대학)·약용건강식품학과(세계사이버대학) 등 특색 있는 학과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사이버 대학에 개설된 학과는 컴퓨터·인터넷 관련 학과가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디지털미디어학과·디지털정보학과·인터넷학과·인터넷경영학과 등 이름도 비슷하고, 실제 가르치는 내용에도 별반 차이가 없다(왼쪽 표 참조).


이처럼 사이버 대학 학과가 특정 분야에만 치우치게 된 것은, 이 분야에 대한 사회적 수요가 워낙 높은 탓도 있지만, 다양한 학과를 개설할 만큼 충분한 인력과 컨텐츠를 확보하지 못한 것도 주요 요인으로 꼽힌다. 잘된 강의와 그렇지 못한 강의를 판가름할 수 있는 객관적이고 엄정한 기준이 마련되어 있지 못한 것도 사이버 대학 활성화를 가로막는 주요 요소로 꼽히고 있다. 현재의 상황은 대학 운영 초기인 탓에, 수업 시수 산정·수업 방식 표준화 등 사이버 대학에 공통으로 적용할 '운영 매뉴얼' 없이 제각각의 방식으로 대학을 운영하고 있다는 것이다.


처음 시작하는 것이어서 경험 부족에서 발생하는 문제도 많다. 동영상이 들어가면서 서버 용량이 문제가 된 것은 물론이고, 신입생 중에는 군인이나 경찰·교도소 감호 담당 등 인터넷 환경이 열악한 격·오지 근무자가 상당수 있어 애를 먹기도 했다는 것이다.


'너도 나도' 설립 추진…교육의 질 저하 우려


사이버 대학이 성공 기미를 보이자 면밀하게 설계된 수익 모델이 없이 '남이 하니까 우리도 한다'는 식으로 최근 각 대학이 잇달아 사이버 대학 설립에 뛰어들고 있는 것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최근 마감한 사이버 대학 설립 신청에서 무려 16개 대학이 신청서를 낸 상황이 이를 반증한다. 이미 지난 3월 사이버 대학 설립 허가 당시 '9개 대학도 너무 많다'는 의견이 일각에서 제시된 마당에 설립 허가를 무더기로 내줄 경우, 과당 경쟁으로 인한 교육의 질 저하가 불을 보듯 뻔하다고 관계자들은 우려한다.


사이버 대학은 학생의 처지에서 돈과 시간을 절약할 수 있고, 언제든 필요한 때에 교육받을 기회에 접근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갖고 있다. 하지만 이같은 장점도 사이버 대학이 스스로 생존 능력을 갖고 양질의 교육 서비스 수준을 유지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실현될 수 있다. 사이버 대학은 입학이 자유로운 만큼 자퇴도 자유롭다. 게다가 사이버 대학의 존립 근거는 '졸업장' 대신 '실무 지식'을 학생에게 제공하는 데 있다. 바로 이 때문에 사이버 대학을 지켜보는 교육 전문가들은 현재의 상황을 '샴페인을 터뜨리기에는 너무 이른 시기'라고 단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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