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 추석에 볼 만한 '제9의 예술' 유럽 만화
  • 김은남 기자 (ken@e-sisa.co.kr)
  • 승인 2001.09.28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송편보다 맛있는 '제9의 예술'/
지적 감수성·회화적 상상력 '짜릿하게 자극
유럽 만화를 재미있게 보는 두 가지 방법. 하나, 단번에 읽어치워야 한다는 강박감을 벗고 며칠에 걸쳐 조금씩 음미하듯 읽는다. 그림 한 컷, 대사 한마디 천천히 곱씹지 않으면 ‘제9의 예술'이라는 별칭까지 얻은 유럽 만화의 참맛을 느끼기 어렵다. 둘, 좋아하는 화가나 영화 감독 또는 작가를 교차 연상하며 만화를 읽는다. 유럽 만화가 중에는 시나리오 작가·소설가·감독 따위를 겸업하는 이가 흔하다. 이들의 상상력이 영화나 소설에는 또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지 추리하는 것도 재미있다.




다행한 것은, 취향대로 골라 읽는 것이 가능할 만큼 번역 출간된 유럽 만화의 가짓수가 크게 늘어났다는 사실이다. 터주 대감 격인 현실문화연구 외에 문학과지성사 같은 ‘정통' 출판사가 이 시장에 뛰어든 것도 고무적이다. 추석 연휴에 지적 감수성과 회화적 상상력을 자극하는 유럽 만화의 세계에 입문해 보는 것은 어떨까.


영화 감독 에이젠슈테인이나 프리츠 랑의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설레는 사람이라면 〈이비쿠스〉(파스칼 라바테 작, 현실문화연구 간행)에 도전해 볼 만하다. 러시아 혁명을 소재로 한 가장 뛰어난 예술 작품 중 하나라는 평가를 받는 이 만화는, 비열하고 잔혹하면서 한편으로 미워할 수 없는 매력을 지닌 남자 시메온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혁명기의 혼란 속으로 독자를 빨아들인다.


주목할 것은 담채와 아크릴을 혼합한 듯한 이 만화의 표현 기법. 수묵화를 연상시키는 풍부한 회색 톤, 흐릿한 윤곽선, 그로테스크해 보이는 인물 묘사가 현실과 동떨어진 듯하면서 오히려 현실보다 더 생생하게 모스크바 거리의 추위와 굶주림을 전달한다.


영화 〈성스러운 피〉에 매혹되었던 사람이라면 감독 조도로프스키의 신비주의적인 체취를 만화에서도 느낄 수 있다. 북하우스가 최근 펴낸 〈디오자망트의 열정〉과 〈라마 블랑〉은 둘 다 조도로프스키가 시나리오를 맡은 만화로, 구도(求道) 여정에 나선 영웅의 모험담을 다루었다.


하지만 심오한 철학을 다루었으리라고 지레 겁먹지는 말 것. 적국의 수장 위르발을 만난 뒤 욕망과 정념의 덧없음을 깨닫고 수도자의 길을 걷게 된다고는 하나, 아라스의 여왕 디오자망트는 여전히 그 관능적인 아름다움으로 독자를 눈 멀게 한다. 이 만화 한 권을 위해 10년을 바쳤다는 거장 장 클로드 갈의 그림은, 가장 하찮아 보이는 소품에까지 바로크풍의 엄격한 화려함을 부여한다.


형이상학적 스릴러와 마술적 리얼리즘




티베트를 배경으로 한 〈라마 블랑〉은 밀교에 대한 조도로프스키의 경외심을 좀더 직접적으로 드러낸다. 라마가 ‘하얀 원숭이' 곧 유럽인의 몸을 통해 환생한다는 설정은, 그냥 애교로 넘어가자. 하늘을 뒤덮는 괴기스런 전갈, 사람을 낚아채는 독수리, 설인(雪人)과의 혈전을 묘사한 강렬한 화면만으로도 이 만화는 ‘형이상학적 스릴러'라는 독자적인 영역을 개척한다.


데이비드 린치의 강렬한 색감으로 〈블레이드 러너〉의 디스토피아적 미래를 재구축하는, 색다른 체험을 해 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야수의 잠〉(현실문화연구)이 제격이다. 대표작 〈니코폴〉로 국내에도 이미 상당한 컬트 팬을 확보한 엥키 빌랄은 유고 출신답게 1993년 사라예보에서 태어난 나이키 아트스펠드(나이키 운동화를 신은 시체 옆에서 발견되어 붙은 이름이다)를 주인공 삼아 서기 2026년의 암울한 지구의 미래를 그려 간다.


자기가 태어난 순간까지도 기억하는, 저주받은 기억력의 소유자 나이키는 세계중앙기억은행(BCMM) 요원으로서 사상·학문·문화를 주요 타도 대상으로 삼는 이른바 ‘몽매주의 교단'과 대적한다. 모노 톤으로 그려진 암울한 도시를 날아다니는 노란 택시, 붉고 푸른 머리칼에 창백한 낯빛을 지닌 인물들의 기묘한 부조화가 할리우드 영화 〈제5 원소〉 (뤽 베송 감독)에서 어떤 식으로 변용되었는지 비교해 보는 것도 재미있는 감상 포인트.


〈델마와 루이스〉 〈안토니아스 라인〉 같은 페미니즘 영화에서 해방감을 느끼는 사람이라면 〈화이트 쏘냐〉(현실문화연구)를 만나보자. 감옥을 막 나선 뉴욕의 백인 창녀 쏘냐는 총과 폭력이라는 남성의 방식으로 남성의 세계에 대항하지만 남성들은 그를 내버려 두지 않는다. 유럽 최고 화가로 손꼽히는 루스탈은 필름 느와르 형식으로 전개되는 이 작품에서 화려하면서도 절제된 색감으로, 존재 그 자체를 부정당한 여성의 분노와 절망을 그려낸다.


가르시아 마르케스나 보르헤스 같은 마술적 리얼리즘의 계보를 잇는 만화도 있다. 대서양의 외딴섬에서 우연히 만난 두 남녀의 이야기를 그린 〈섬〉(현실문화연구)이 그것. 스페인 태생 만화가 프라도는 주인공 남녀의 관계가 원만하게 풀릴 때는 드가 풍의 화사한 색조, 위기 상황이 육박했을 때는 로트레크의 불안하고 격정적인 색조, 외딴섬을 둘러싼 자연의 느낌을 전달할 때는 에드워드 호퍼 풍의 색조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며 환상과 현실을 넘나드는 이야기 얼개를 시각적으로 완벽하게 구현한다.


자녀와 함께라면 〈아스테릭스〉(문학과지성사)를 읽어 보자. 미국에 미키마우스가 있다면, 프랑스에는 아스테릭스가 있다는 말이 있을 만큼 프랑스인의 자부심을 상징해온 이 만화는 1961년 이래 전세계 42개 나라에서 2억8천만 부가 팔린 초유의 베스트 셀러이기도 하다. 꾀와 유머를 타고난 데다 마법의 물약을 마셔 힘마저 넘쳐나는 골족(갈리아족) 전사들이 허풍쟁이 로마인과 대결하는 유쾌한 모험담에 배꼽을 잡다 보면 유럽의 역사와 문화가 속속 정리되는 가외 소득도 챙길 수 있다.'죽음의 천사’라고 불리는 마이클 설리번(톰 행크스). 지역 마피아 보스인 존 루니(폴 뉴먼)의 양아들인 그는 조직의 일원으로 중요한 임무를 수행한다. 그의 임무에는 상대 세력을 제거하는 일도 포함되어 있다. 집에서는 믿음직스러운 남편이자 든든한 아버지이지만 차마 두 아들에게 자기 직업을 밝히지는 못한다.





어느 날 설리번은 루니의 친아들 코너와 함께 조직원 핀을 찾아간다. 코너 때문에 동생을 잃은 핀은 코너를 질책하고 화가 난 코너는 그를 쏘아 죽인다. 설리번은 핀의 부하들을 죽이고 사태를 수습한다. 그런데 우연히 아버지를 따라 온 아들 마이클(타일러 후츨린)이 이 광경을 목격한다.


불리한 상황에 처한 코너는 설리번과 그의 가족을 살해하려고 음모를 꾸민다. 코너에게 아내와 작은 아들을 잃은 설리번은 복수를 맹세하고 살아 남은 큰 아들 마이클과 함께 퍼디션이라는 이름을 가진 고장으로 도피한다. 루니는 코너를 보호하기 위해 맥과이어(주드 로)라는 킬러를 고용한다.


탁월한 킬러인 맥과이어는 곧 설리번과 마이클을 찾아낸다. 그러나 설리번은 기지를 발휘해 위기를 모면한다. 루니로 하여금 스스로 아들을 포기하도록 만들기 위해서 그는 조직 계좌에서 자금을 인출한다. 그리고 마침내 루니를 찾아가는데…. (9월13일 개봉 예정)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