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4인의 감독이 말하는 '내 영화 관람 포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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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1.10.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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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은 간다
사랑, 그 모호한 기억




〈봄날은 간다〉는 연애의 다양한 감정을 담은 영화이다. 연애를 처음 시작할 때의 설렘, 끝마칠 때의 스산함,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사랑이 변하고 잊히는 것에 대한 쓸쓸한 느낌이 담겨 있다.


사실 사랑과 이별은 매우 통속적인 주제이다. 하지만 그것은 가장 사적이면서 또한 가장 보편적인 것이다. 내가 겪고 주위의 다른 사람들이 겪는 그런 얘기를 통해 모두가 공감하는 영화를 만들 수 있다는 생각에서 연출하게 되었다.


사랑은 우리에게 꼭 필요한 존재지만 멈추지 않고 흘러가 버리는 공기처럼 변덕이 심한 것 같다. 영화는 남자 주인공인 상우의 시선을 따라간다.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라고 묻는 그에게 사랑은 절대적인 어떤 것이다. 하지만 상우가 사랑하는 여자 은수에게 그것은 흘러가는 시간의 마디마디일 뿐이다.


사실 그렇지 않은가? 진짜 사랑을 했는지, 새 남자가 생겨서 이별한 것인지, 아니면 이별하고 나서 새 남자가 생긴 것인지, 모든 것이 불확실하지 않은가? 불명확한 기억의 편린들이 그것을 받아들이고 해석하는 사람의 의지에 따라 다르게 조합되는 것 아닌가? 그것을 아름다운 기억으로 승화시키는 사람이 있는 반면 잊고 싶은 악몽으로 생각해 팽개치는 사람도 있다. 사랑이란 모호한 면이 많다. 이 영화를 어떻게 보느냐 하는 것은 철저하게 관객의 몫일 것 같다.


주변 사람들로부터 수많은 연애담을 취재해서 만든 영화여서 재미있게 볼 수 있는 부분이 많을 것이다. '정말 저건 내 얘기 같다'라고 생각할 수 있는 부분도 제법 있으리라 본다. 각자의 추억을 환기하면서 보면 재미있게 볼 수 있을 것이다.

허진호 감독


와이키키 브라더스
사라진 꿈과 빛 바랜 우정




〈와이키키 브라더스〉는 세월의 흐름에 따라 사라진 꿈과 우정의 마모를 그린 영화이다. 학창 시절 지방 소도시에서 함께 그룹사운드를 했던 친구들이 15년이라는 세월에 어떻게 변하는지가 영화의 중심 이야기이다.


학창 시절 지녔던 꿈들이 소시민적 삶을 살면서 어떻게 소멸해 가는지를 보여주고 싶었다. 영화의 주인공들처럼 30대 중·후반이 되면 인생의 갈림길에 서게 된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 것인지, 해야만 하는 일에 자신을 소모시키면서 살 것인지 최종적인 판단을 내려야 한다.


수안보의 야간 업소에서 3류 밴드 마스터로 일하는 주인공의 삶을 통해 꿈과 현실의 괴리를 그려내려 했다. 물론 우리가 꿈에서 얼마나 멀어져 있는가 하는 것은, 별로 듣고 싶지 않은 이야기일 수 있다. 사실 그것은 그다지 유쾌한 일이 못된다. 하지만 한 번쯤은 그런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까?


비록 무거운 주제를 담고 있지만 이 영화는 무거운 마음으로 보지 않아도 된다. 무게를 덜어내기 위해 나름으로 신경을 썼기 때문이다. 〈세 친구〉에 비해 이번 영화에서는 관객과의 소통을 염두에 두고 여러 가지 영화적 장치를 많이 해두었다. 그 시절 음악이 나오면 향수에 젖어보고, 웃기는 장면이 나오면 실컷 웃으면서 편하게 보면 될 것 같다.


보는 동안은 재미를 느끼는 것으로 족하고, 보고 나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혹은 집에 돌아간 후에 이 영화가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런 여운을 남길 수 있다면 감독으로서 만족한다. 자기 꿈을 좇고 있든 그렇지 못하든 그것은 누구에게나 필요한 일일 것이다.

임순례 감독


나비
인간애의 또 다른 모습




〈나비〉는 사랑에 관한 영화이다. 여기서 사랑은 남녀 간의 사랑이 아닌 사람과 사람 간의 보편적인 사랑을 말한다. 서로의 상처를 보듬어 줄 수 있는 '인간애'를 그림으로써 남녀 간의 사랑을 다룬 영화가 보여주지 못하는 사랑의 또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영화는 망각의 바이러스라는 마술적 현상을 중심 축으로 하고 있다. 바이러스를 품고 있는 나비는 망각을 통해 문제를 해결해 주는 존재이다. 기억을 지우고 싶어하는 주인공들은 이 바이러스를 찾아 여행을 떠난다.


하지만 그런 외부적인 치유는 답이 될 수 없다. 고통은 단지 눈감아 버림으로써 잊힐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망각의 바이러스를 찾아 나선 세 주인공, 안나·유키·K는 서로 간의 소통을 막고 있는 담을 넘어 진정한 관계를 맺고 서로의 상처를 보듬어 줌으로써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게 된다.


이 영화를 기획하게 된 까닭은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서 본 서울이 너무나 낯설다는 느낌 때문이었다. 1999년의 서울은 할리우드 영화에 나오는 디스토피아가 바로 여기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피폐해져 있었다. 마치 사막 위에 뚝딱 세워진 하이테크 도시처럼 모든 과거를 지우고 그 터에 미래를 세우는 '망각의 도시'처럼 보였다.


영화의 어느 부분은 지극히 사실적인 반면 어느 부분은 다분히 몽상적이다. 다큐멘터리처럼 거칠게 인물을 쫓기도 하고 판타지처럼 상상의 장면이 펼쳐지기도 한다. 기존 영화 문법에 익숙한 관객에게는 낯설 수 있다. 다소 산만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화면을 따라 가다 보면 다른 영화에서 느껴 보지 못한 색다른 즐거움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문승욱 감독


꽃섬
어른 위한 우화, 길 위의 동화




사람들에게는 지울 수 없는 마음 속의 상처가 있다. 그 상처는 피할 수 없는 '운명'으로부터 온다. 그 운명은 역사성과 개인적 삶의 숙명을 포함한 것으로, 죽음 직전까지 벗어날 수 없는 것이 대부분이다.


어른이 되어 처음으로 발견한 것은 나 자신과 내 주변 사람들의 상처였는데, 그 상처들이 치유되기란 거의 불가능해 보였다. 이 영화는 '사람들이 갖고 있는 영혼의 상처가 어떻게 치유될 수 있을까'에 관한 이야기이다.


이 영화가 관객들의 상처까지 치유할 수 있을지는 확신이 서지 않는다. 그리고 영화에서 제시한 치유 방법이 옳은지 그른지에 대해서도 잘 모르겠다. 다만 이 영화를 통해 각자의 상처에 관심을 갖게 되고 사랑하는 사람의 상처에 관해 알게 되는 계기가 된다면, 그것만으로도 이 영화는 가치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꽃섬〉은 어른들을 위한 우화 혹은 길 위의 동화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관념으로 시작한 영화이기 때문에 주인공들의 삶과 여정에 어느 정도 동화되어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한 편의 거친 다큐멘터리를 보듯 주인공들이 꽃섬으로 떠나는 여행을 지켜 본다면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꽃섬〉에는 여주인공이 세 사람 등장한다. 화장실에 아이를 버린 10대 문제아, 설저기암에 걸려 노래를 더 부르지 못하게 된 20대 뮤지컬 배우, 딸의 피아노를 사주기 위해 매춘을 하는 30대 주부. 이들은 '꽃섬에 가면 우리들의 모든 슬픔을 잊을 수 있다'면서 미지의 섬을 찾아간다. 하지만 정말 꽃섬이 모든 슬픔이 사라지고 향기만이 그윽한 파라다이스일까? 영화를 보면서 그 답을 구해 보기 바란다.

송일곤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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