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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와의 대화]“슬픔은 철학보다 깊다”

<나르시스의 꿈> 펴낸 철학자 김상봉씨

이문재 편집위원 ㅣ moon@sisapress.com | 승인 2002.02.02(Sat)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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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르시스 신화와 만해의 시가 만날 수 있을까. 철학자 김상봉씨(문예아카데미
교장)는 나르시스의 꿈에서 서양 정신의 본질을 발견하고, 만해의 눈물에서
서양 정신을 극복할 수 있는 ‘우리의 철학’을 모색한다. 김씨가 최근에
펴낸 <나르시스의 꿈>(한길사)은 타자를 인정하지 않는 서양 정신사에
대한 전면적인, 그리하여 매우 새로운 비판이지만, 그 비판은 ‘우리의
철학은 과연 무엇인가’라는 고통스러운 모색으로 귀결된다.


 












 서양 철학사는 타자를 인정하지 않은
채 자유를 추구해온 나르시시즘의 역사였다. 그림은 카라밧지오의
<나르시스>.



지난 1월25일, 서울 인사동 문예아카데미에서 만난 김상봉씨(44)는
도발적인 학설을 제기한 철학자답지 않게 수줍음이 많아 보였다. 작은
체구에다 목소리까지 나지막했다. 하지만 철학의 현실이나 ‘한국병’에
대한 그의 지적은 그의 눈빛처럼 맑고 깊었다. 그에게 철학은 엄숙한
설교가 아니다. 숭고한 가치를 가르치는 주류 철학이 아니다. 그의 철학은
낮은 곳으로 내려간다. 가장 낮은 곳의 눈으로 세계를 보며, 그 낮은
존재들의 동경을 보편적 언어로 번역해내려 한다. 객체로 머물러야 했던
삶, 즉 한국인의 삶을 주체화하려는 것이다.


“서양의 자기 비판은 사이비 자기 비판”


김상봉씨는 호메로스에서 헤겔에 이르기까지 서양 정신의 역사를
뒤따라가며 나르시시즘이 전개된 양상을 되짚는다. 얼핏 보기에 서양
철학사는, 특히 니체에서 들뢰즈에 이르는 서양 현대 철학은 진지한
자기 비판처럼 보이지만, 김씨에 따르면, 그 비판은 사이비 자기 비판이다.
서양 철학은 서양 철학의 바깥, 즉 타자를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하나의 비판은 하나의 반복이었다.















©시사저널
윤무영


 “한국인은 슬픔의 힘으로 단절과 자기
상실의 역사를 극복해야 한다.” 김상봉씨



김상봉씨는 서양 정신의 유구한 나르시시즘을 타자적 주체를 알지
못하는 ‘홀로주체’라고 명명한다. 이 홀로주체는 타자를 사물화하며
자신의 진리인 자유를 유지한다. 서양 정신의 시원이자 궁극적 지향인
자유는 타자를 노예 상태에 빠뜨리면서 유지된다. 착취와 빈곤의 세계화,
분쟁과 자연 파괴의 세계화, 테러의 세계화가 바로 홀로주체에서 비롯한다.
나르시시즘의 보편화가 곧 세계화였다. 김씨가 나르시시즘을 비판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홀로주체의 시대는 조종이 울리고 있다. 김상봉의 철학은 타자를
인정하고 타자들이 공존하는 ‘서로주체’의 시대를 꿈꾼다. 김씨는
“우리는 자유롭게 살기 위해 창조된 것처럼 또한 서로 만나기 위해
창조된 것이기도 하다”라고 말한다. 사람은 오직 사람 사이에서 사람이
된다는 것이다.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빛에서 어둠으로 ‘거꾸로’
가는 김상봉 철학은 만해 시의 눈물에서, 함석헌의 ‘고난의 뜻’에서
박동환 교수의 ‘절망의 개념’에서 ‘슬픔의 해석학’을 곧추세우려
한다.


슬픔의 보편학은, 슬픔이 철학보다 커다란 지평이라고 선언한다.
김상봉씨에 따르면, 중국에 이어, 일본과 서양을 따라가기 위해 단절과
자기 상실의 역사를 살아온 한국인이 찾을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은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에서 나온다. ‘나는 누구인가’라고 묻는 철학적
사유는 분노가 아니라 자기에게로 돌아가는 슬픔 속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1992년, 독일 마인츠 대학에서 칸트 연구로 철학박사 학위를 받고
귀국한 김상봉씨는 그리스도신학대 종교철학과 교수로 재직하다가 ‘해직’된
이후 ‘학벌없는 사회’ 사무처장으로 일했다. 학벌의 역기능을 철폐하기
위해 발품을 팔아온 김씨는, 지난해부터 민족예술인총연합이 개설한
문예아카데미 교장으로 있다.  

1980년대 후반 <영웅본색>과 <첩혈쌍웅>에 열광한 기억이 있다면, <무간도(無間道)>를 그냥 지나칠 수는 없다. 량차오웨이와 류더화가 출연한 <무간도>는 당시 최고 인기를 누렸던 홍콩 누아르의 비극적 정서를 물씬 풍기는 복고풍 영화다. <풍운>과 <환영특공> 등 특수 효과로 잔재주를 부렸던 최근 홍콩 영화의 트렌드와는 전혀 다르게, 정통적인 연출과 배우들의 출중한 연기 그리고 비장미로 관객을 사로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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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자료



<무간도>는 신분을 속이는 두 남자의 이야기다. 폭력 조직에 침투한 경찰과 정보를 캐기 위해 경찰에 지원한 조직원. 삼합회 보스인 한침(쩡즈웨이)은 유건명(류더화)을 비롯한 젊은 조직원들을 경찰학교에 입학시킨다. 10년 후 유건명은 강력계의 촉망받는 경찰로 성장한다. 진영인(량차오웨이)의 입장은 정반대다. 베테랑 형사 황지성(황추성)에게 발탁된 진영인은 경찰학교에서 퇴학당한 것으로 위장하고 바로 범죄 세계에 뛰어든다.
경찰에서는 한침을 체포하기 위해 주도면밀하게 작전을 세우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정보가 새는 바람에 놓쳐버린다. 황지성은 경찰 내부에 스파이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유건명 역시 조직원 중에 스파이가 있음을 한침에게 알려준다.


특수 효과 잔재주 대신 ‘몸의 액션’ 영상화


제목인 ‘무간도’는 불교에서 말하는 ‘무간지옥’에서 따온 것이다. 18층 지옥 중에서 가장 낮은 층에 존재하는, 영원히 고통이 지속되는 지옥. 유건명과 진영인은 누구에게도 자신의 본심을 털어놓을 수 없고, 자신의 정체성을 스스로 찾지도 못하는 존재다. 경찰 상부의 총애를 받으며 직위가 오를수록 유건명은 회의에 빠진다. 과거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지만, 상황이 바뀌자 그는 좋은 사람이 되기를 원한다. 하지만 ‘무간도’에서 빠져나가기는 결코 쉽지 않다.


진영인은 더 심각하다. 연인은 다른 남자와 결혼한다. 그녀는 진영인을 사랑했지만, 언제 죽을지 모르는 삼합회 조직원과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할 수는 없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자신의 의지대로 자신의 삶을 꾸려가는 것뿐이지만, 운명은 그들을 영원한 고통으로 몰아넣는다.


<무간도>의 주인공들은 과거 홍콩 누아르의 주인공처럼, 비열하고 추악한 세상에 적응하지 못하는 인간들이다. 홍콩 영화의 상업주의를 선두에서 이끌었던 류웨이창과 시나리오까지 쓴 마이자오후이가 공동으로 감독한 <무간도>는 한 단계 성숙했다. 두 감독은 지옥에서 발버둥치는 두 남자의 고뇌를 정면으로 파고든다.


<무간도>는 배우의 연기에 의존하는 전형적인 누아르다. 홍콩 영화의 진정한 힘이 특수 효과를 통한 잔재주가 아니라, 무협 영화에서 연유한 정통적인 ‘몸의 액션’과 진한 감정의 울림임을 다시 한번 느끼게 해준다. 엇갈린 운명 때문에 고통받고, 끝내는 서로를 지옥으로 밀어넣을 수밖에 없는 남자들의 처절한 몸부림을 인상 깊게 그린 <무간도>는 새로운 세기를 시작하는 홍콩 영화의 대표작으로 손색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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