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성 언론 기죽인 ‘족집게’ 비평
  • 김은남 기자 (ken@sisapress.com)
  • 승인 2002.04.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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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주류 정치 평론가 장신기·이태준·공희준, 탁월한 예지력으로 네티즌 사로잡아
'이회창 대세론은 실체가 없다.’(<이회창 대통령은 없다>) ‘이인제로는 이회창을 이길 수 없다. 노무현이 민주당의 새로운 리더가 된다면 그 폭발력은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이인제는 이회창을 이길 수 없다>)


요즘 누가 이런 얘기를 꺼냈다가는 당장 ‘봉창’ 소리를 듣게 될 것이다. 이미 코흘리개 어린애도 다 아는 사실을 갖고 뒤늦게 웬 봉창을 두드리느냐는 비아냥이다. 그런데 이것이 노풍(盧風)은 고사하고 민주당 경선이 시작되기 한참 전에 나온 주장이라면?


이런 선견지명을 발휘한 사람은 유력 언론사 기자도, 족집게 정치 평론가도 아니다. 산전수전 다 겪은 노회한 정치인은 더더욱 아니다. 인터넷을 주된 기반으로 활동하는 이름 없는 논객들, 이름하여 아마추어 평론가 또는 비주류 평론가라고도 할 수 있을 이들이 정치 비평에 새 바람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들이 쓴 정치 비평서는 서점에서 벌써 몇 달째 베스트 셀러 자리를 지키고 있으며, 이들이 인터넷에 발표하는 글은 오르자마자 폭발적인 감염력으로 네티즌을 사로잡고 있다.


무명 논객들의 놀라운 ‘예언’





이 중 먼저 주목할 만한 사람이 올 초 <이인제는 이회창을 이길 수 없다>라는 책을 펴낸 장신기씨(29)이다. 올해 연세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대학원 진학을 준비하는 이 햇병아리 논객은 그 누구도 노무현 돌풍을 예측하지 못했던 시기에 이른바 ‘이인제 필패론’을 과감하게 들고 나왔다.


그가 여느 아마추어와 다른 점은 이를 당위론으로 주장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곧 그는 ‘이인제는 이러이러해서 안된다’고 자기 주장을 펴기보다 철저하게 ‘표의 논리’에 입각해 이인제 필패론을 도출했다. 그는 먼저 ‘반(反) 구여권, 비(非) 김대중’ 성격을 지닌 중간층 표의 향배에 주목했다. 온건한 개혁 지향 성향을 지니고 있지만 DJ 비토 정서가 뿌리 깊은 중간층. 1992년 대선에서 정주영·박찬종을 찍고, 1997년 대선에서 이인제를 찍었던 이들 중간층의 표를 흡수하지 않고는 민주당이 ‘5%의 기본 열세’를 결코 극복할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셈속이었다(장씨는 지난 몇 차례 대통령 선거를 검토한 결과, 민주당은 한나라당으로 대표되는 구여권에 비해 기본 당세가 5% 가량 뒤진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런데 이인제로는 이 중간층을 결코 사로잡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장씨는 무엇보다 부산·경남·울산 지역에 이들 중간층이 광범위하게 존재함을 환기하며, 이인제 카드로는 이 지역 표심을 붙들기가 거의 불가능함을 역설했다. 1997년 대선에서의 이른바 ‘이인제 학습 효과’와 김대중 정권 출범 이후 악화한 신(新) 지역감정 때문이었다. 나아가 장씨는 이인제의 보수성과 정치 이력 때문에 전통적인 민주당 지지표마저 이탈할 가능성이 높다면서, 그런데도 이인제 대세론을 유포하는 것은 보수 세력의 음모라고 공박했다. 수구 언론을 비롯한 이들 보수 세력이 노무현에 비해 상대하기 쉬운 이인제를 의도적으로 띄워 자기네에게 유리한 국면을 창출하고 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그런가 하면 이태준씨(30)는 ‘이회창 필패론’을 들고나온 최초의 논객이라 할 수 있다(<시사저널> 제639호 참조). 정치 비평 사이트인 ‘크리티즌’(www.critizen.net)에 ‘이회창론’을 연재하면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은 그는 지난해 <이회창 대통령은 없다>(월간 <말>)라는 정치 비평서를 펴냈다. 평범한 회사원이던 이씨가 정치 비평에 손을 댄 것은 금기를 깨기 위해서였다. 대세론만 무성한 채 이회창을 성역시하면서, 이 사람이 정말 대통령이 될 만한 사람인가를 정면으로 파헤치고 논쟁하는 일은 꺼리는 기성 지식인과 우리 사회의 풍토에 그는 절망을 느꼈다고 했다(그의 필명부터가 ‘절망의 강’이다).


그는 먼저 이회창의 자질에 직격탄을 날리는 방식으로 대세론을 공격했다. 세간에 알려진 대쪽·법치주의 이미지와 달리 이회창의 본질은 보신주의·실리주의에 불과하다는 것이 그의 비판이었다. 그는 또 지난 1∼2년 사이 이회창과 이인제에 대한 지지율 격차가 불과 10% 안팎이었는데도 이것이 대세론으로 포장되어 온 정황에 의문을 제기했다. 이회창은 아들 병역 문제·3김 이후의 대안 제시 실패 등 이른바 ‘9대 아킬레스 건’ 때문에 차기 대선에서 결코 유리할 수 없다는 것이 그가 대세론을 부정하는 이유였다.


금기 깨는 독설로 독자들 가슴 후련하게 만들어





장신기씨나 이태준씨가 앞서가는 통찰력과 탁월한 분석력으로 화제를 모았다면, 최근 인터넷 언론 <대자보>(jabo.co.kr)에서 스타 논객으로 떠오른 공희준씨(34)는 눈치 볼 것 없는 글 쓰기로 독자에게 카타르시스를 선사하는 유형이다. 공씨는 유력 언론을 비판하는 글을 인터넷에 올렸다가 현행범(명예훼손)으로 체포된 필화 사건을 겪은 뒤 한동안 절필했던 경력을 갖고 있다. 그로부터 4년 만에 ‘주류 영화 평론가를 지향하는 비주류 정치 평론가’가 되어 중원으로 돌아온 공씨는, 대중문화적 코드를 자유자재로 끌어들여 정치 현상을 재미있고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는 데 특출난 재능을 발휘하고 있다.


한나라당 경선에 참여한 이부영씨에게 ‘찻잔 속의 미풍에 그칠 것이 아니라, 필요하다면 찻잔이 놓인 테이블을 통째로 엎어뜨리라’거나, 경선이 끝난 뒤 노무현의 이미지를 좀더 세련되게 포장하려 드는 민주당을 향해 ‘생수를 원하는 국민에게 엉뚱하게 정수기 물을 내놓으려는 발상은 진작에 거두시라’고 일갈하는 그의 글을 읽으며 독자들은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대신해 줘 가슴이 후련하다’는 독후감을 보내온다. 경선 정국에서 상대의 부정적인 면을 부각하는 전략을 총동원한 이인제를 향해 ‘우리 사람은 못되어도, 괴물은 되지 맙시다’처럼, 영화 속 대사를 본뜬 시의적절한 독설을 던지는 것 또한 독자들이 꼽는 공씨의 매력이다.


이들 아마추어 논객들이 제창한 이인제-이회창 대세론의 붕괴는 오늘날 정치권에서 상식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렇지만 이들이 처음 그런 주장을 제기했을 때만 해도 기성 언론과 평단의 반응은 썰렁했다. 정치 평론가로 이름깨나 날린다는 장신기씨의 대학 은사는 그에게 이런 충고를 했다고 한다. “대세란 그렇게 쉽게 바뀌는 것이 아니라네.”


정국이 요동하기 시작한 뒤에도 이들의 반응은 한 박자 느렸다. 민주당 제주·울산 경선이 끝난 직후 아마추어 평론가들이 노풍이 일 수밖에 없는 역사적·사회적 배경을 분석하며 ‘노무현 필승론’을 타전할 때 기성 언론과 평단은 노풍이 일시적인 현상인지 아닌지를 따지는 데 골몰하고 있었다.

기성 언론과 평단의 이같은 뒷북치기는 결국 안이한 현실 인식에서 말미암는다는 것이 공희준씨의 비판이다. “정치 평론을 통해 대중이 알고 싶은 것은 궁극적으로 ‘그래서 누가 나쁜 놈인데?’ 하는 것이다. 그런데 지식인입네 하는 평론가들은 알맹이 없이 거창한 이론만 늘어놓으면서 진실을 호도해 왔다.” 이태준씨의 말마따나 ‘유력한 대선 주자에 대해서조차 비평서 한 권 내지 않는’ 이들의 직무 유기 내지는 정치권 눈치 보기 또한 아마추어 논객들의 등단을 재촉한 요인이었다.





이태준씨는 이들 기성 언론과 평론가를 고속버스 운전사에 비유한다. 정해진 길로만 다니는 이들 운전자는 전문성은 쌓일지언정 자율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곧 경치 좋은 새 길이 나타나도 이들은 핸들을 꺾을 생각을 하지 못한다. 이는 평론가 개인의 문제라기보다 구조적 문제라는 것이 이씨의 지적이다.


그러나 기성 정치 평론이 위기에 처하게 된 최대 요인은 무엇보다 ‘노무현 돌풍=구 정치 패러다임 몰락’이라는 시대적 흐름을 제대로 읽어내지 못한 결과라고 서영석 기자(<국민일보> 심의위원)는 지적한다(위 상자 기사 참조). 인터넷이라는 쌍방향 매체 시대에 ‘내가 한수 가르치겠다’는 식의 일방향 마인드를 버리지 못한 것도 고립을 자초한 요인이다.


색깔론·음모론에 이어 여권 핵심부를 둘러싼 게이트들이 터져 나오는데도 무엇 때문에 노풍이 건재한지, 메이저 언론의 특정 후보 죽이기가 왜 수포로 돌아갔는지, 종이 신문과 텔레비전을 아무리 들여다보아도 이해가 되지 않는 사람이라면 이들 ‘대안 평론’에 귀를 기울여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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