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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스와 뤼팽 “내가 더 세다”

출판계, 완역본 전집 경쟁 후끈…때아닌 추리 소설 바람 일으켜

김은남 기자 ㅣ ken@sisapress.com | 승인 2002.06.25(Tue)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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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남자. 종잡을 수가 없다. 그 남자는 화학·식물학·지질학 분야에 도통해 있다. 옷에 묻은 흙 한 점만 보고도 그는 그것이 어느 동네 흙인지 알아맞힐 수 있다. 그러나 문학·철학 관련 지식은 빈약하다 못해 전무하다. 엄청나게 수다스럽다가도 무언가에 집중할 때면 한일 자(字) 눈썹 아래 차가운 눈을 번뜩이며 사냥개처럼 몸을 곧추세우는 남자. 사람들은 그를 셜록 홈스라 부른다.





‘감성적인 괴도(怪盜)’ 아르센 뤼팽(위)과 ‘이성적인 탐정’ 셜록 홈스(오른쪽)는 각각 당대의 시대 정신을 대변한다.


여기 그와는 대조적인 또 한 남자가 있다. 그는 해박한 인문적 지식과 예술적 감식안을 자랑한다. 그는 채식주의자이며 타고난 바람기와 유머 감각 또한 갖추고 있다. 물건을 훔치는 도둑인 주제에 그는 집주인에게 ‘진품이 제대로 갖춰지면 다시 방문하겠음’이라는 쪽지를 남기는 여유를 잃지 않는다. 마르고 날카로운 인상을 지닌 홈스와 달리 온화한 얼굴에 우아한 몸매를 지닌 남자. 사람들은 그를 아르센 뤼팽이라 부른다.


홈스와 뤼팽. 도버 해협을 사이에 두고 지난 100여 년간 영국·프랑스 국민의 사랑을 흠뻑 받아 온 두 매력남이 지금 한국의 출판계를 후끈 달구고 있다. 월드컵 때문에 죽을 맛인 서점가에 두 사람은 구원투수처럼 등장했다. 지난 2월 도서출판 황금가지가 첫 권을 선보인 이래 현재 6권까지 나와 있는 <셜록 홈즈 전집>은 4개월 만에 무려 35만부가 팔렸다. 뒤이어 황금가지와 도서출판 까치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펴낸 <아르센 뤼팽 전집> 또한 8만부 가까이 팔려 나갔다. 여기에 태동출판사·북하우스·시간과공간이 합류하면서 현재 시중에 나도는 홈스·뤼팽 시리즈는 각각 3∼4종에 이른다.
추리 소설은 전통적으로 여름 시장용으로 여겨져 온 장르이다. 다른 계절에 추리물이 대거 쏟아져 나온 것은 유례가 없는 일이다. 더욱이 홈스와 뤼팽은 신상품도 아니다. 두 사람이 동시에 등장하는 <기암성> 같은 작품은 일제 시대부터 소년들의 필독서로 꼽혔던 고색 창연한 추리물이다. 그런데 이것들이 무엇 때문에 새삼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일까.


우선은 이들 작품이 완역 시리즈로 나온 것이 이번이 처음이라는 데서 이유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어린이용으로 편집된 홈스와 뤼팽을 읽으며 자란 20∼30대 독자들이 처음 접해 보는 정본 앞에서 지적 호기심과 어린 시절의 아련한 향수를 동시에 자극받은 듯하다”라고 황금가지 픽션팀의 최준영 과장은 분석한다.


독자들은 이들 완역본을 통해 기존 편집본에서 볼 수 없었던 홈스와 뤼팽의 새롭고도 다층적인 면모를 발견하게 된다. 곧 홈스라는 냉철하고 분석적인 위대한 탐정의 이면에는 사건이 잘 풀리지 않을 때 소파에 늘어져 ‘7% 희석된 코카인’을 흡입하고, 여자를 극도로 기피하는 괴팍한 면모가 숨겨져 있다. 뤼팽 또한 대중없기는 마찬가지이다. 어두운 어린 시절을 보내며 사회와 가진 자에 대한 반감을 자연스럽게 체득한 그는 평소 경찰과 공권력을 손톱 밑의 때만큼도 여기지 않다가 어느 순간 조국 프랑스를 위해 몸을 던지는 애국 전사로 변신한다.


편집본에서는 대부분 생략되었던 당대의 사회상을 알 수 있는 것도 이들 완역본의 매력이다. 추리소설가보다는 역사소설가로 평가받기 원했던 작가답게 아서 코난 도일은 셜록 홈스의 모험담에 방대한 역사적 지식을 깔아놓곤 한다. 이를테면 대표작인 <주홍색 연구>는 미국 프로테스탄트의 모르몬교 박해, <네 사람의 서명>은 인도의 세포이 항쟁을 배경으로 삼고 있는 식이다.






홈스·뤼팽 전집 성공에 힘입어 추리 소설 출간 붐이 일고 있다.


두 사람 스타일 본격 대조할 기회


마찬가지로 추리소설가이기보다 플로베르·모파상 같은 정통 문학인으로 분류되기를 원했던 모리스 르블랑은 뤼팽 시리즈에서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과 풍자의 시선을 늦추지 않는다. 당대의 유명 인물·사건을 소설 속에 그럴듯하게 끌어들이는 것이야말로 르블랑의 장기. 이를테면 <기암성>에서 뤼팽은 ‘토마와 그 일당’이 한때 자기 대리인이었다며 뻐긴다. 토마는 20세기 초 성당을 주로 털었던 전설적인 도둑. 곧 뤼팽은 “신창원, 걔가 사실은 내 꼬붕이었어”라는 식으로 독자를 웃기고 있는 것이다.


완역본이 출간되면서 홈스와 뤼팽 두 사람의 스타일을 본격적으로 대조할 수 있게 된 것 또한 국내 추리 소설 팬들에게는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이다(상자 기사 참조). 뤼팽이라는 캐릭터 자체가 처음부터 홈스를 겨냥해 만들어졌던 만큼 외국의 ‘셜로키안’(셜록 홈스 마니아를 일컫는 말)과 뤼팽 팬들은 곧잘 충돌을 빚어왔다. 곧 홈스 팬들은 뤼팽을 ‘탐정의 본류에서 벗어난 몽상가’로, 뤼팽 팬들은 홈스를 ‘상상력이 결여된 구닥다리 탐정’ 정도로 치부하곤 한다.


이성에 의존하는 홈스와 직관에 의존하는 뤼팽. 이는 영국·프랑스 양국 국민성의 차이를 드러내는 한편 두 사람이 활약했던 시대적 특성을 반영한다는 것이 <뤼팽 전집>(까치)을 기획·번역한 성귀수씨의 지적이다. 곧 홈스가 이성과 과학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리라고 낙관했던 19세기 후반을 대표하는 인간형이었다면, 뤼팽은 사실주의·실증주의에 대한 반동으로 낭만주의가 다시 대두하던 20세기 초반이 필요로 한 영웅상이었다는 것이다.


때아닌 추리 소설 바람이 불면서 출판계에는 기대와 우려가 엇갈리고 있다. 홈스와 뤼팽 전집의 성공이 국내의 낙후한 추리 소설 환경에 자극제가 되어준다면 좋지만, ‘흥행이 보장된’ 작품 한두 개를 놓고 여러 출판사가 제살 깎아먹기 경쟁을 벌이는 현행 방식으로는 오히려 독자들을 한순간에 식상하게 만들 수도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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