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길 속에 제물 던져 부처 공양”
  • 김은남 기자 (ken@sisapress.com)
  • 승인 2002.10.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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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개국 밀교 의식 일반에 최초 공개…불보살 향한 수행자 소망 담아


"린포체의 법력이 대단하기는 한 모양이네.” 온 종일 비가 올 것이라던 일기 예보와 달리 새벽에 흩뿌린 비 기운이 말끔히 가시고 파란 하늘이 나타나자 니창 린포체를 기다리던 불자 두 사람이 소곤대는 말이었다.



지난 10월18∼19일 서울 월곡동에 자리잡은 대한불교진각종 총인원에서는 ‘세계 밀교의식 시연 법회’가 열렸다. 한국·일본·몽골·티벳 네 나라의 밀교(密敎) 지도자가 한자리에 모여 나라마다 고유하게 전승해 온 밀교 의식을 시연한 이 자리에는, 달라이 라마와 더불어 티벳의 ‘살아 있는 부처’로 칭송받는 니창 린포체, 몽골의 고승 단장람 등이 참석했다.



밀교 하면 보통 사람들은 미신적인 주술 의식을 행하는 종교 집단 내지는 성력(性力)을 숭배하는 타락한 불교를 떠올리곤 한다. 그렇지만 이는 밀교 중에서도 곁가지인 좌도(左道) 밀교에서 보이는 극단적인 행태일 뿐이라고 혜정 대정사(진각종 교육원장)는 잘라 말한다.



정통 밀교는 본디 현교(顯敎)와 대립하는 데서 비롯된 말이다. 중생을 교화하기 위해 중생의 모습으로 이 세상에 태어난 부처님, 곧 석가모니(化身佛)를 교주로 모시면서 그가 남긴 설법을 좇는 것이 오늘날 일반 불교인 현교의 수행법이다.




이에 반해 밀교는 본래의 부처님, 곧 비로자나(法身佛)를 교주로 모시면서 그 법신불과 일체가 되는 것(卽身成佛)을 수행 목표로 삼는다. 따라서 밀교 수행자들은 석가모니와 그 제자인 선지식들이 남긴 ‘8만4천 경전’이며 ‘1천7백 공안’ 같은 데 구애되지 않고, 문자로 드러나지 않은[密] 불문율에 의거해 자신의 법력을 쌓아 간다(한국 진각종의 경우 법당에 불상을 모시지 않으며, 수행자는 머리를 깎고 출가하거나 참선을 하는 대신 일상 생활을 영위하면서 법신불의 말씀[眞言]을 염송하며 수행한다. ‘옴마니밧메홈’이 대표적인 진언이다).



경전이나 공안 대신 ‘옴마니밧메홈’



정통 밀교 의식은, 불보살의 보은을 구하는 한편 이처럼 법신불과 일체가 되고자 하는 수행자들의 소망을 담은 의식이다. 이는 본시 일반에게 공개되는 것이 아니다. 더욱이 이번 법회에서 중점 소개된 ‘호마 의식’(산스크리트어 ‘HOMA’에서 유래한 것으로, 화염 속에 공양물을 던져 넣는 행위를 통해 모든 신과 불보살을 공양하는 의식)은 밀교의 맥을 전승할 자격이 있다고 인정된 ‘아사리’에 의해서만 비밀스럽게 거행되어 온 의식이었다.



시연을 약속했다고는 하나, 이번 법회에 참석한 각국 승려들도 의식의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법회가 시작되기 전까지 입을 열지 않았다. 특히 공산 혁명 이후 사원을 강제 폐쇄당하면서 밀교의 법맥이 끊기는 아픔을 겪었던 몽골 단장람 스님은 이번 의식이 1937년 이후 두 번째로 치르는 호마 의식이라고 했다.



법회를 치를 장소에는 정결한 제단만이 차려져 있을 뿐이었다. 이윽고 일본-몽골-티벳 순으로 호마 의식이 시작되었다. 언뜻 보기에 세 나라의 의식은 순서나 방식이 유사했다.





먼저 아사리들이 오색 깃발이나 오색끈으로 결계를 친 다음 신들을 향해 오체투지(양 무릎·양 팔꿈치·이마를 땅에 닿게 하는 불가의 절) 등의 예를 표했다. 그 뒤 나무로 한단 한단 정성스럽게 쌓은 단에 불을 붙이고, 공양물을 하나씩 던져 넣었다. 공양물은 향기로운 기름, 깨끗이 말린 야생초, 부처가 성불할 때 깔고 앉았다는 풀, 햇곡식 등이었다. 그들은 이 모든 공양물을 자기 나라에서 직접 가져왔다고 했다.



그러나 수인(手印)을 맺고 진언(眞言)을 염송하는 방식은 제각각 달랐다. 일본의 수인은 절도가 넘쳤고, 몽골은 우아했으며, 티벳은 다이내믹했다. 수인과 진언은 의식의 단계마다 바뀌었다. 어떤 대목에 이르면 아사리들은 장삼 자락 속에 손을 감춘 채 일반 대중이 전혀 볼 수 없도록 수인을 맺기도 했다. 불꽃이 거세지면서 진언을 외우는 이들의 목소리는 더 빠르고 가팔라졌다.



티벳의 니창 린포체는 공양물을 태운 연기가 멀리 퍼지면 퍼질수록 신들이 기뻐한다며 불자들이 다같이 ‘옴·아·홈’을 염송해 달라고 청했다. “인간이 혼자 사는 것처럼 착각하지만 우리는 서로 연관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우주 법계의 균형이 깨지면 우리 몸의 균형도 깨집니다.” 법회 해설을 맡은 진각대학 허일범 교수는 린포체의 메시지를 이렇게 전달했다. 다시 말해 호마는 깨어진 우주의 균형을 바로잡음으로써 병든 ‘나’와 인간 세상을 치유하려는 의식인 셈이었다.



고려 시대까지도 성행했을 것으로 짐작되는 한국의 밀교 의식은 조선 중기에 접어들면서 그 원형을 거의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나마 남아 있는 것이, 이번 법회에서 진각종측이 보여준 관정 의식(수행자의 정수리에 물을 뿌리는 의식) 정도이다. 진각종측은, 이번 시연 법회를 통해 한국 전통 밀교에 대한 재발견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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