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문학 경계 넘어 세계 문학 중심에 서다
  • 대구·김은남 기자 (ken@sisapress.com)
  • 승인 2002.11.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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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한국 문학인 대회’ 참가한 재외 한국인 작가들
"나의 조국을 한국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조금의 주저도, 망설임도 없었다. 지난 11월1∼3일 대구에서는 내년에 개최될 대구세계문학제를 앞두고 ‘한국 문학인 대회’가 예행 삼아 열렸다. 여기 참석하려고 방한한 재일동포 작가 현 월(37·본명 현봉호)은 자신의 민족적 정체성을 묻는 질문에 곧 이렇게 답했다. 다른 재외 한국인 작가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나는 한국어를 전혀 모릅니다. 한국식 정서나 사고도 모릅니다.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랐으니 그게 당연한 일 아닙니까?”(린다 수 박)





2000년 <그늘의 집>으로 아쿠타가와 상을 수상한 재일동포 소설가 현 월, 2002년 <사금파리 한 조각>으로 미국에서 가장 권위 있는 아동문학상인 뉴베리 상을 수상한 재미동포 작가 린다 수 박(42), 1982년 예일 대학이 선정한 ‘젊은 시인상’을 수상했으며 미국 문학 교과서에도 작품이 실린 재미동포 시인 캐시 송(47). 지난 몇 년 사이 국제적으로 권위 있는 문학상을 휩쓸며 한국계 작가의 위상을 한껏 드높이고 있는 이들은, 이른바 교포 문학이 이미 새로운 단계에 진입했음을 분명하게 보여주었다.


이들은 더 이상 모국어를 구사하지 못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는 세대가 아니었다. ‘뿌리 뽑힌 자’의 콤플렉스에 시달리는 세대도 아니었다. 이들은 오히려 아웃사이더 또는 경계인(境界人)으로서 자기의 정체성을 긍정하며 다문화주의의 거대한 흐름 속에 스스로를 편입시키고 있었다.


한국적 정서보다 보편적 정서 추구


먼저 캐시 송. 대회 이틀째 ‘재외 한국인의 삶과 문학’ 토론자로 나선 그녀는 “나는 한국인이면서 중국인이다. 아버지 고향인 한국 못지않게 어머니 고향인 중국에 대해서도 애틋한 감정을 갖고 있다”라는 말로 자신을 ‘한국계’에 가두려는 시선을 가볍게 비켜갔다. 하와이 이주 노동자 1세대의 손녀로서, 신랑감 사진만 보고 이역만리로 시집온 할머니의 이야기에서 영감을 받은 <사진 신부>로 일약 문명(文名)을 얻은 그녀는 이번에도 자신의 가족사를 배경으로 한 신작시 열두 편을 들고 왔다.


‘아버지는 우리를 파인애플 농장에서 구해주셨다/우리는 파인애플 농장에서 길을 잃었다’로 시작되는 시 <파인애플 농장>에서 그녀는, 파인애플 농장으로 상징되는 가난하고 비루한 이주민 집단을 떠난 뒤 출신 성분을 티내지 않고 백인들의 언어며 행동거지를 그대로 따라해야 했던 숨 막혔던 과거를 회고했다. <그녀는 중국을 볼 작정이었다>나 <녹>에서는 고향을 그리워하는 부모의 모습을 잔잔하게 묘사했다. ‘바람을 많이, 바람을 많이 쐬었어요/나를 집으로 데려가 줘요, 쉰 목소리로 말’하는, 병들고 쇠약해진 어머니를 그녀는 깊은 슬픔으로 응시한다.


그러나 그녀는 평론가나 독자들이 ‘이민 3세대의 정체성’이라는 잣대로 자신의 작품을 바라보는 것은 곤란하다는 견해를 나타냈다. 그보다 자기가 이제껏 시에서 다루고자 했던 것은 가족·예술·페미니즘이라는 인류 보편의 주제에 가깝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종교적인 관심이 추가되었다. 일본 밀교에 심취해 있다는 그녀는 “왜 한국계 시인의 시에 일본식 불교 용어인 쇼신케(正心家)가 등장해야 하느냐”라는 한 한국 독자의 질문에 의아한 듯한 표정을 짓기도 했다.





“내 조국은 한국이라기보다는 제주도”


다음은 현 월이었다. 그에게 상을 안겨준 <그늘의 집>은 <아Q정전>의 아Q만큼이나 아둔하고도 개성 넘치는 주인공 ‘서방’을 내세워 재일 한국인 집단촌에서 벌어지는 폭력의 광기를 실감 나게 묘사한 소설이다. 같은 제목으로 중단편 소설집(문학동네)이 번역 출간된 뒤 한국에도 제법 많은 독자를 거느리고 있는 그는 ‘나의 조국은 한국이라기보다 제주도’라는 말로 자신의 정신적 뿌리가 어디에 닿아 있는지를 고백했다.


제주도에서 태어난 그의 부친은 열네살 때 고향을 등지고 오사카로 건너갔다고 한다. 재일 한국인 사회에서 제주도 출신이라는 것은 특별한 의미를 가졌다. 일본인의 한국인 차별 뺨치는 차별이 민족 내부에 있었다. 경상도·전라도 출신들은 자기 자녀에게 대놓고 이렇게 말하곤 했다. “제주도 남자와 결혼할 바에는 차라리 일본인하고 결혼해!”


이런 이중 차별 속에서 오사카의 제주도 사람들은 자기네만의 공동체 ‘이카이노’를 형성하며 살았다. 현 월은 이곳에서 제주도 토속 음식을 먹고, 일본어와 제주도 방언이 뒤섞인 독특한 혼성 언어를 들으며 성장했다. 그런 그가 본토(육지) 중심의 한국, 표준어 중심의 한국어에 거리감을 느끼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그는 캐시 송과 마찬가지로, 사람들이 자기 작품에서 변방인으로서의 문제 의식을 읽어내려 하는 것에 대해서는 날카로운 거부감을 드러냈다. 검은색 정장 양복 아래 감색 스니커즈 운동화를 신은 언밸런스한 차림새가 보여주듯 그는 정해진 틀에 자신을 끼워 맞추는 것을 못견뎌 하는 듯했다.


현 월은 특정한 메시지를 담으려고 소설을 쓰는 것이 결코 아니며, 메시지는 소설이 완성된 결과 거기 담기게 된 것일 뿐이라고 거듭 주장했다. 등장 인물의 윤곽만 대충 잡아놓고 ‘상상력의 연쇄 작용’에 의지해 소설을 쓰다 보면, 이 인물들이 어느새 소설로부터 뚜벅뚜벅 걸어나가 자기에게 주어진 삶을 빚어가기 시작한다는 것이었다.


뉴베리 상을 수상하며 올해의 신데렐라로 떠오른 린다 수 박에게는 그나마의 그늘진 구석조차 찾아보기 어려웠다. 중산층 이민 가정에서 엘리트 교육을 받으며 자란 그녀는, 한국적인 소재를 차용하되 자신이 관심을 갖는 것은 인류의 보편적인 정서와 흥미를 건드리는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오른쪽 딸린 기사 참조).


작가들간 ‘느슨한 네트워크’ 필요해


특수성보다는 보편성을 지향한다고 한목소리로 강조하는 이들을 보면, 이들이 ‘한국 문학의 틀에 갇혀서는 안된다’는 또 다른 강박증에 시달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이들이 한국계라는 소수 민족으로서의 존재 기반을 벗어나기는 어렵다. 이번 대회에서 현 월과 공개 토론을 벌인 소설가 김연수씨는 “역사에 관심이 없다면서 왜 유독 역사성이 짙은 소재(재일교포 문제)에 집착하느냐”라며 이 문제를 꼬집기도 했다.


그래도 고무적인 것은, 변방 작가들이 문학의 중심권으로 떠오르고 있다는 사실이다. 지적 빈사 상태에 빠진 구미 문단은 소수 민족·유색 인종·여성 작가 등의 피를 수혈함으로써 위기를 헤쳐 나가려 하고 있다. 일본 문단 또한 상황이 유사하다. 그렇다면 시인이자 문학평론가인 월터 K. 류가 지적하는 대로 ‘한국 내에서, 한국인을 위해, 한국어로 생산된 문학’만을 한국 문학이라고 고집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일지도 모른다. 그보다 필요한 것이 재외 한국인 작가들의 ‘느슨한 네트워크’이다. 모국어 대신 모어(母語)로 영어·일본어를 구사하는 이들이 각자의 문화권에 뿌리를 내릴 때 한국 문학 또한 진정한 세계화에 이를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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