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분노의 뿌리는 깊다”
  • 고재열 기자 (scoop@sisapress.com)
  • 승인 2002.12.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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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윤도현/“잘못된 것을 잘못되었다고 말하고 싶었을 뿐”



'언제까지 어디까지 너는 세상의 모든 것을 독차지하려 하니. 얼마나 많은 아름다운 별들이 너로 인해 사라져 갔는지. 네가 나서지 않아도 세상은 정의롭게 움직인다. 너는 아직도 모르겠니.’ 지난 12월7일, 미국을 비난하는 <하노이의 별>을 부른 가수 윤도현씨는 공연장 뒷면의 부시 사진을 향해 가운데 손가락을 높이 치켜들었다. 여중생 압사 사건에 대한 무죄 평결 이전부터 반미 의식이 담긴 노래를 줄곧 불러온 그를 만나 보았다.



사회 문제를 다룬 곡을 많이 부른 것으로 알고 있는데.


우리가 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노래를 많이 부른 것은 사람들에게 얘기하고 싶은 것이 많았기 때문이다.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을 잘못되었다고 얘기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런 노래들이 공연에서 반응이 좋았던 것은 아니다. 단순히 공연을 즐기러 온 팬들에게 그리 와닿지 않는 문제였기 때문이다.


반미 의식이 팽배한 사회 분위기와 ‘beyond dystopia’(디스토피아를 넘어서)라는 콘서트 주제는 맞아떨어지는 것 같은데.


콘서트 초기만 하더라도 무죄 평결이 나기 전이어서 <하노이의 별> 같은 노래가 나오면 팬들이 지루해 했다. 그런데 요즘은 집중해서 듣는 것 같다. 그동안 우리가 얘기할 때 무심했던 것이 섭섭하기는 하지만 어찌되었건 지금부터라도 이런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바람직한 일이라고 본다.


여중생 압사 사건에 항의하는 <니노, 워커 장갑차 살인사건>이라는 곡을 만들었다는데.


월드컵이 끝날 무렵 뒤늦게 사고 소식을 접했다. 미안한 마음이 들어 곡을 만들었다. 그런데 크리스천인 박태희씨가 곡을 써서 내용이 조금 얌전한 편이다. 지금 기분과 맞지 않아 조금 더 세게 바꾸려고 한다.


미군 기지가 있는 파주에 살았던 것으로 안다.


미군의 횡포와 관련해서는 원초적인 경험이 있다. 우리를 무시하는 미군 군속 자녀들과 자주 시비가 붙었는데 늘 우리만 화를 당했다. 그들은 무슨 짓을 한들 미군이 데려가면 끝이었다. 결국 경찰서에 끌려가는 것은 늘 우리였다.


이번 사건을 보는 느낌이 남다를 것 같다.


그렇다. 미선이와 효순이의 일이 남의 일 같지 않다. 우리 동네에서도 미군 장갑차가 집을 덮쳐 완전히 부순 적이 있었는데 주인 아저씨는 변변히 변상도 받지 못했다. 그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내가 분노하는 것은 단순히 이번 사건에 대한 것이 아니라, 그동안 미군이 알게 모르게 저지른 수많은 죄악에 대한 것이다.


반미 시위의 방향이 어때야 한다고 보는가?


투쟁의 목적이 무엇인지 대상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생각해 보아야 한다. 싸잡아서 미국이 무조건 나쁘다고 해서는 안된다. 응징할 건 응징하고 죄값을 치러야 할 사람은 치르게 하되, 무조건적인 반미는 경계해야 한다. 그리고 언제 그랬냐는 듯이 식어버려서도 안된다.


반미 시위에 연예인들이 동참하는 것을 어떻게 보는가?


더 많은 연예인이 동참해야 한다고 본다. 직접 시위에 참여하면서 그들은 더 많은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콘서트 때문에 광화문 촛불 시위에 참석하지 못하는 것이 아쉽다. 우리는 우리 공연장에서 우리 식대로 보여주겠다. 마지막으로 주둔군지위협정은 반드시 개정되어야 한다. 우리 땅에서 벌어진 일을 우리가 판단하지 못한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인터뷰에는 그룹 멤버 중에 사회 의식이 담긴 노래를 주로 작곡해온 박태희씨가 동참했다. 그는 이번 사건에 대한 언론의 태도를 문제 삼았다. “언론이 처음부터 이 사태를 제대로 보도했다면 일이 이 지경까지는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지금도 부시가 사과했다면서 반미 시위를 자제하라고 말하는 언론사가 있다. 우리가 싸워야 할 대상은 어쩌면 미국이 아니라 그들일지도 모른다. <조선일보> 같은 보수 언론이 연예인들의 반미 시위 동참을 왜곡할까 봐 걱정이다. 연예인들의 순수한 시위를 단순히 인기에 영합하려는 이벤트로 매도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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