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주일의 책]
  • 이문재 기자 (moon@e-sisa.co.kr)
  • 승인 2001.03.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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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NA 독트린] [녹색평론], 인간 게놈 프로젝트 허구성 파헤쳐

사진설명 뚜껑을 열어 보니 : 일부 과학자들은 인간 게놈 지도가 완성되었지만 생명에 대한 신비는 그대로 남아 있다고 지적한다. ⓒAP연합

지난 2월13일, 인간 게놈 지도가 완성되었다는 발표 장면을 지켜본 과학자들 가운데 몇몇은 1960년대 미국의 우주개발 프로젝트 발표회, 또는 프로 스포츠 구단주의 기자회견장을 떠올렸다. 이 '삐딱한' 과학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 하버드 대학 리처드 르원틴 교수(동물학)이다. 현대 생물학이 자본과 권력의 시녀라고 비판하는 르원틴은, 최근 국내에 번역 출간된 [DNA 독트린](궁리)에서 유전자 결정론의 허구성을 낱낱이 파헤쳤다.

과학은 순수하며, 과학자는 정치·경제·사회적으로 가치 중립적일 것이라는 고정 관념을 뒤엎는 [DNA 독트린] 이 영어권에서 출판된 때는 1991년. 하지만 이 책은 10년이 지난 지금 오히려 더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다. 유전자 결정론이라는 복음이 무지와 억지에 근거하고 있다고 설파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 나온 생태 전문 격월간지 <녹색평론> (3-4월호)은 생명공학과 '나쁜 과학'이라는 특집을 마련했다. 이 특집에 실린 영국 개방대학 생물과학과 매완 호 교수의 <인간 게놈지도, 유전자 결정론의 죽음과 그 이후>는 [DNA 독트린]을 쓴 르원틴과 문제 의식을 공유하고 있다. 유전자 결정론은 죽었다고 단언하기 때문이다. 매완 호 교수의 글은 지난 2월 인간 게놈 지도가 완성되었다는 발표가 나온 직후에 쓰인 것이다.

리처드 르원틴은 집단유전학과 진화를 전공한 학자로 미국 과학 아카데미 회원으로 선정되었으나, 과학 아카데미가 정치 권력과 연결되는 것에 반발해 사퇴했다. 르원튼이 보기에, 이데올로기는 세 가지 특징적 요소를 함축한다. 인간 이전의 원천에서 나와 사회 속으로 강림하고, 절대적인 의미에서 진리로 보이며, 신비한 언어를 구사한다. DNA를 상징(권력)화하는 현대 생물학은 이같은 조건을 구비하며 종교 이데올로기를 대체했다는 것이다.

인간 게놈 프로젝트를 거대한 비즈니스라고 보는 르원튼은, 지능지수(IQ)에서 잘 드러나듯이 유전자 결정론은 근대 사회가 진행되는 것과 더불어 서서히 뿌리 내려 왔다고 진단한다. 여전히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지능지수는 개발 당시부터 문제가 있었다. 학습 능력이 탁월한 학생과 그렇지 못한 학생을 갈라놓기 위한 표준화 프로그램이었다는 것이다. 지능지수처럼 유전된다고 알려졌던 저열한 정신 능력, 즉 알코올 중독·폭력·매음·범죄성도 이데올로기에 봉사하는 유전자를 맹신하는 과학이 저지른 추문에 불과하다고 르원틴은 지적한다.

르원튼은 게놈 연구가 자랑하고 있는 유전자 치료법 또한 오류로 가득 차 있다고 밝혔다. 이를테면, 유전자 결정론자들은 모든 인간이 비슷하듯이 사람의 유전자 배열도 비슷한 것처럼 논의하고 있는데, 실제로는 정상적인 개인과 개인 사이에도 엄청난 차이가 있다. 즉 하나의 단백질 안에도 서로 다른 DNA 염기서열이 무수히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질병을 가진 사람의 DNA와 정상적인 사람의 DNA를 비교했을 때, 질병을 일으키는 DNA 염기서열을 판단할 수 없다. 다시 말해 유전자 기준을 세우기가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인간 게놈 연구는 돈 잡아먹는 블랙홀"


사진설명 패러다임을 바꿔야 : DNA 권력에 반대하는 과학자들은 이제 인간이 '원하는 것을 어떻게 얻을 것인가'라고 묻지 말고 '무엇을 원할 것인가'라고 물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GAMMA

유전자 결정론에 내재되어 있는 폐해는 이외에도 얼마든지 있으며, 그 역기능은 저마다 가공할 만한 폭발력을 갖고 있다. 무엇보다도 유전자 정보는 사회적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환원하며 권력화한다. 이미 유전자 차별은 현실화하고 있거니와, 유전자에 문제가 있는 사람들은 취업과 보험 가입 등에서 불이익을 당하면서도 그것을 유전자, 즉 개인의 문제로 돌려버리게 된다. 유전자 결정론에 반대하는 과학자들은, 대중이 유전차 차별이나 '은밀한 우생학'을 이미 받아들이고 있다고 본다.

유전자 결정론에 근거해 구조적인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환원하는 사회생물학을 강하게 비판하는 르원튼은, 현대 생물학이 '생물은 외부의 힘과 내부의 힘들 사이에서 투쟁이 벌어지는 전쟁터에 불과하다는 견해'에서 탈피해, 생물의 내부와 외부 환경은 끊임없이 상호 작용하며 구성(창조)해 간다는 관점(구성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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