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를 하려면 이들처럼…
  • 노순동 기자 (soon@sisapress.com)
  • 승인 2004.06.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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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바닷빛이 시원한 여름 영화 <인어공주>(연출 박흥식)는, 제목과 달리 의외로 궁상스러운 마음의 풍경을 담고 있다. 왜 억척 어멈들은 하나같이 무능하고 착한 남편을 두고 있을까?

우체국에서 일하는 나영(전도연)의 집안 형편은, 자기 부모를 놓고 ‘부모될 자격도 없는 사람들’이라고 한탄할 정도로 갑갑하다. 목욕탕 때밀이로 악다구니만 남은 엄마, 보증을 잘못 서 평생 일하고도 정작 식구들에게는 짐만 되는 무능한 아빠. 딸 나영은 흡사 집안의 가구처럼 활력 없이 살던 아버지가 중병에 걸린 채 잠적하자, 유학을 포기하고 아버지를 찾아나선다. ‘주변머리 없는 성격에 갈 곳이라고는 고향 하리밖에 없다’는 외삼촌의 조언을 좇아 배를 타고 제주의 외딴섬으로 향한다.

그곳에서 지중해 못지 않은 에메랄드 빛 바다를 바라보며 나영은 감회에 젖는다. 자기도 모르게 들어선 한 민가. 나영은 자신을 빼다박은 시골 처녀 연순(전도연)과 조우한다. 스무 살 적의 엄마다. 딸은 엄마를 금방 알아보는데, 엄마는 그 딸을 ‘언니’라 부르며 기댄다.

박해일의 매력이 ‘부작용’ 일으켜

그때 엄마는 막 아빠와 사랑에 빠져들고 있다. 문맹인 엄마는, 우편배달부인 아빠 진국(박해일)을 보기 위해 뭍에 유학 나가 있는 남동생에게 자주 편지를 쓰라 한다. 정작 받아도 읽지 못하는데 말이다.

현실에서 나영이 부모의 삶이 굴 속처럼 캄캄한 데 비해, 하리에 살고 있는 젊은 그들은 하늘빛 바다를 닮았다. 그런 그들이 어찌 그리 변했을까 따져볼 생각이 들지 않을 만큼 하리에서의 삶은 환상적이다. 물질 잘하는 섬처녀인 연순은 수시로 토실한 허벅지며 단단한 종아리를 내보이며 시원스레 바다 속을 유영한다. 쉰이 넘은 엄마(고두심)는 착한 남자라면 진저리를 치지만, 스무살 적 엄마는 “사람이란 착해야지. 암, 착하고 봐야지”라고 말하는 순진한 처녀다.

젊은 아비는 또 어떤가. 무력한 현실 속 아버지와 달리 젊은 진국은 글 모르는 처녀에게 글을 가르쳐 주고, 동네 사람들 부탁을 마다 않고 들어주는 속 깊은 청년이다. 그는 그냥 착한 남자가 아니라, ‘백마 탄 왕자’와 같은 존재로 묘사된다. 그것은 진국의 캐릭터 때문이라기보다는 배우 박해일의 매력 때문에 빚어진 ‘부작용’으로 보인다. 그가 하얀 이를 드러내며 “제가 (한글)가르쳐드릴까요?”라고 물을 때 여성 관객은 일제히 ‘무너진다’.

가족을 지긋지긋해하던 젊은 딸은, 젊었을 적 부모를 만난 뒤 부모의 삶을 긍정하게 된다. 그제서야 딸은 볼 수 있게 된다. 아직도 어머니가, 어머니의 방식대로 아버지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딸이 젊은 엄마를 만난다는 환상적인 설정은 같은 배우가 두 배역을 모두 소화한 덕에 더욱 빛을 발한다. 어린 연순은 <내 마음의 풍금>의 늦깎이 초등학생 홍련과 너무 흡사한 것이 흠이지만, 성격이 제각각인 모녀를 실감나게 만들어낸 전도연의 연기력은 상찬받을 만한다.

고두심의 연기는 새삼 말이 필요치 않다. 젊은 아빠의 사진을 발견하고 딸이 호들갑스레 묻는다. “아빠가 웃고 있게 아니게?” 연순은 이미 저 세상 사람이 된 남편에 대한 추억과 딸에 대한 애정에 마음이 뿌듯하다. 그녀는 목욕탕 욕조에 몸을 담근 채 이렇게 혼잣말을 한다. “싱거운 년, 그럼 웃지, 울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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