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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실 권력’의 은밀한 역사

엘리노어 허먼 지음 <왕의 정부>

강철주 편집위원 ㅣ kangc@sisapress.com | 승인 2004.08.17(Tue)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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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베르 카뮈의 스승으로 잘 알려져 있는 장 그르니에는 <고양이 몰루>라는 글에서 고양이에 대한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늘어놓은 다음 이렇게 말한다. ‘부질 없는 문제에 대해 박식해진다는 것은 마음에 든다.’ 일종의 미학적 쇄말주의(trivialism)를 천명한 셈인데, 그르니에 식으로 표현하자면, 역사 속의 온갖 부질 없는 문제들에 대해 박식해지는 것-이른바 미시사를 읽는 것도 마음에 든다.

   
  프랑스의 루이 14세(위 왼쪽)와 정부 몽테스팡 부인. 그녀는 왕의 애정이 식을지 모른다는 걱정이 들 때마다 왕에게 몰래 최음제를 먹였다.  
그 부질 없는 문제가 동서고금의 남녀상열지사라면 더욱 그렇다. 게다가, 범부필부의 상열지사가 아니라 왕들과 그들의 여자들이 주연으로 등장한 로맨스이거나 스캔들이라면 호기심이 배가된다. 가령, 로마 제정 말기 황제 일가의 황음, 이슬람 군주와 할렘의 여인들, 그리고 중국이나 조선의 궁녀들은 우리의 상상력을 에로틱하게 부풀린다. 왕의 침대 위에서, 그리고 왕의 여자의 치마 속에서 벌어지는 관능의 향연과 정치적 음모, 사치와 유혹의 드라마는 누구에게나 궁금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왕의 정부>(엘리노어 허먼 지음, 박아람 옮김, 생각의나무 펴냄)는 르네상스 이후 유럽 각국의 왕실과 궁정을 주름잡았던(?) 여인들의 생애와 에피소드를 다룬 책이다. 그중에서도 ‘메트레 상 티트르’(명칭 없는 여인, 왕의 공식 정부를 가리킴)라고 불렸던 여인들을 주로 다루었는데, 그녀들은 권력과 섹스의 상관관계를 일찍부터 체득하고 활용했다. 그녀들은 왕에게 성적 의무를 다하는 대가로 재산과 명예, 정치적 영향력을 보장받았다. 예술과 문화를 장려하는 패트런 역할을 했고, 때로는 자신의 매력을 무기로 삼아 외국의 대사를 통제하는 일을 맡았다. 전시에는 군비 충당을 위해 왕에게 받은 보석을 국고에 바쳤고, 왕 대신 가난한 백성들을 구휼하는 일에 나서기도 했다.

그러나 그녀들이 왕비로 ‘격상’되는 예는 거의 없었다. 타고난 미모나 방중술, 언변과 지혜, 드물게는 사랑과 충직함으로 왕을 사로잡았어도 왕이 죽거나 왕의 애정이 시들면 그것으로 끝이었다. 하사받았던 보석·땅·성을 도로 빼앗기는가 하면, 수녀원에 유폐되어 여생을 우울하게 보내거나,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지기도 했다. 신데렐라였으되 해피 엔딩을 맞지 못했던 신데렐라였던 셈이다(물론 모두가 다 비극적인 최후를 맞은 것은 아니었다. 화려하지는 않아도 평범하고 안락한 말년을 보낸 왕의 정부도 적지 않았다).

왕의 욕망과 대중의 분노 배출되는 통로

이 책의 미덕은 그런 그녀들의 천태만상이 요지경처럼 펼쳐진다는 데 있다. 예컨대 왕의 정부에는 세 가지 유형이 있다. 첫째가 요부형으로, 루이 14세의 사랑을 독차지하기 위해 두꺼비 배설물과 갓난아이 내장으로 만든 ‘불결한 묘약’을 왕에게 몰래 먹인 몽테스팡 부인이 대표적이다. 그녀는 엄청난 도박꾼이기도 했는데, 도박빚은 늘 왕이 갚아주었다. 둘째는 백치미형으로, 폴란드 왕 아우구스트가 ‘그녀가 입을 여는 순간, 외모를 보고 품었던 온갖 환상이 깨져버렸다’고 혀를 내둘렀다는 디스카우 부인이 그랬다. 셋째는 매력적인 추녀형으로, 그녀들은 대개 상냥하고 충직했지만 ‘대양이 범람한 듯 넘실대는 목은 몸과 구분이 안되었고, 코르셋으로 조일 수 있는 부분이 한 군데도 없었다.’

그녀들의 남편들이 보인 행태도 가관이었다. 대부분의 남편은 아내를 왕에게 바치고 ‘그녀들을 은행계좌로 이용했다.’ 아내를 바친 데 대해 후한 보상을 해주지 않으면 베르사유에 가서 난동을 부리겠다고 왕을 협박했고, 왕의 정부가 된 아내를 방문해 주머니를 두둑히 채웠다. 심지어 그들은 아내에게 왕과의 잠자리를 적극 권했다. 죄악의 대가가 후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왕들은 왜 정부가 필요했을까? 왕성한 성욕과 언제든 그것을 해소할 수 있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일까? 정략과 외교적 고려, 후계자 생산이라는 필요에 의해 ‘초상화만 본 채로’ 맞아들인 왕비에 대해 전혀 사랑의 의무를 느끼지 않았던 왕들에게 정부는 욕망의 해방구였기 때문이다. 왕실들 간의 어긋난 인연이 초래한 왕과 왕비의 갈등 구조에서 정부의 존재는 일종의 완충지대였다는 것이다. 또한 그녀들은 왕실의 악덕을 집약하는 상징으로 종종 대중적 분노의 표적이 됨으로써 도리어 왕실을 보호하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루이 15세의 정부 뒤 바리 부인은 단두대에서 처형되었고, 영국 찰스 황태자의 정부 카밀라 파커 볼스는 런던의 한 슈퍼마켓에서 시민들의 화장지 세례를 받아야 했다. 왕의 정부는 왕의 욕망과 대중의 분노가 배출되는 통로이자 표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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