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송경아의 '이영훈 교수를 위한 변명'
  • 송경아 (소설가) ()
  • 승인 2004.09.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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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훈 교수 발언에 빗나간 비난 일색…마녀 사냥식 왜곡 보도도 한몫
친일진상규명법에 대한 <100분 토론> 이후 이영훈 교수의 발언을 놓고 전국이 들끓었다. 여기에는 <오마이뉴스>의 왜곡 보도가 큰 몫을 했지만, 지식인들마저 ‘친일 청산’이라는 대의명분에 편승해 ‘이영훈 죽이기’에 나서고 있다는 것은 가슴 아픈 일이다. 가령 진중권씨는 <시사저널> 제777호(9월16일자) 문화 비평에서 이번 사건이 ‘학적 논쟁이 주책없이 정치적 맥락 속으로 들어오면서 빚어진 해프닝’이라고 말하며 이영훈·양동휴 교수를 야유했다. 그렇다면 학적 논쟁이 주책 있게 정치적 맥락 속으로 들어오는 방식은 무엇인지 묻고 싶다. 텔레페서(telefessor)가 아니면 정치적 맥락이 얽힌 문제에서는 아무 말도 하지 말라는 것인지? 적어도 이번에는 진중권씨의 메롱 전술이 방향을 잘못 잡았다. 그 메롱 전술이 통하기에는 이영훈은 너무 크고 진중한 학자다.

사실 이영훈 교수의 논지는 논리적이며 학문적으로도 뒷받침되어 있다. 그는 친일 진상 규명에 찬성하며, 특히 국가 권력과 결탁해 저질러진 반인권적 범죄를 끝까지 규명할 것을 주장한다. 그러나 그것이 입법되는 것에는 반대한다. 이미 일제 시대의 자료가 존재하며 그것을 다 취합하고 조사할 수 있는 마당에 처벌이 아니라 ‘진상 규명’만이 목적이라면 굳이 법제화 형태를 취할 필요가 없다는 것, 중요한 것은 ‘민족’의 이름으로 일제에 대한 협력 여부를 밝히는 것이 아니라 일제와 협력해 인권을 유린하는 범죄를 저질렀느냐 하는 문제라는 것이다.

친일 규명보다 범죄 처벌 강조한 ‘소신 발언’

이런 이영훈 교수의 발언은 친일 진상 규명은 법을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는 고정관념에 신선한 충격을 던졌다. 이영훈 교수는 해명서에서 특히 일본군 성노예제가 ‘국가 권력에 의한 여성의 성 착취 범죄 행위’(해명서)라는 점에서 미군 위안부와 그 이후 성매매 구조화의 원인이 된다는 것은 국가의 가부장성을 새로운 각도에서 밝히는 탁월한 식견이다.

추후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가 이영훈 교수를 규탄한 것은 이 사건에서 가장 슬픈 부분이다. 비록 오해라고는 하나, 일본군 성노예제의 피해자들이 ‘성매매’라는 구조적 성범죄의 피해자들과 동일시되는 것에 치욕을 느끼다니. 이것이야말로 가부장제의 역사가 만들어낸 비극이다. 그러나 자신을 ‘순결한 민족의 희생자’이며 ‘매춘부들’과 완전히 다른 존재라고 여기는 피해자들의 감정을 탓할 수는 없다. 그것도 그들이 현재진행형으로 겪고 있는 상처의 일부분이기에.

하지만 열린우리당 여성위원회와 민주노동당의 논평에 대해서까지 입을 다물고 있을 수는 없다. “수난과 상처로 얼룩진 근·현대사에서 벌어진 여성에 대한 끔찍한 유린과 탄압을 어찌 ‘성매매’로 생각할 수 있느”냐는 열린우리당 여성위원회의 논평은 성매매 여성들을 두 번 죽이는 짓이다. 성매매 여성은 여성에 대한 유린과 탄압의 피해자가 아니라는 말인가? 논리적 반박 하나 없는, 인신 공격에 가까운 민주노동당의 논평도 한심하다.

마지막으로 분명히 말하고 넘어가자. 이영훈 교수의 발언을 둘러싼 사건은 <오마이뉴스>의 왜곡 보도가 일으킨 마녀사냥이다. 해명서에 있는 이영훈 교수의 말이 옳다. <100분 토론> VOD를 보아도, <오마이뉴스> 측이 제공하는 녹취록을 보아도 이영훈 교수는 일본군 성노예가 상업적 목적을 지닌 공창이라는 말을 한 적이 없다. 그것은 송영길 의원이 이영훈 교수의 주장을 자기 멋대로 해석해 논박하는 와중에 튀어나온 발언이다. 오히려 이영훈 교수는 <100분 토론>에서 일본군 성노예 문제를 처음 언급하고, 이런 반인륜(반인권)적 범죄를 끝까지 추적해서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한 유일한 인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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