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나긴 ‘대항해’ 입구에 서다
  • 방민호 (문학평론가, 서울대 교수·국문학) ()
  • 승인 2004.10.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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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하 문학 ‘영광 뒤의 과제’/세계성 확보 위한 고민 계속돼야
작가 김영하씨는 1995년에 작품 활동을 시작한 이래 단기간에 평단과 독자의 주목되었고, 최근 장편소설 <검은 꽃>과 창작집 <오빠가 돌아왔다>를 차례로 엮으면서 문단과 사회에서 관심의 초점이 되기에 이르렀다.

더욱이 올해 김영하씨는 황순원문학상과 동인문학상 등 유수한 문학상을 차례로 거머쥐는 행운과 영광을 누리고 있는데, 이것은 재능뿐만 아니라 노력의 산물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치하할 만하다. 이와 같은 현상 앞에서 우리는 김영하 문학의 위치를 새롭게 검토해 볼 필요를 느끼게 된다.

먼저 전제해 볼 것은 작가라는 존재가 다 같지는 않으므로 비평가가 그 많은 작가를 똑같은 태도로 대해서는 안 되리라는 것이다. 더구나 김영하씨는 한국 문학의 현재와 관련해서 중요한 위치를 점하게 되었고 그 문학성을 둘러싼 상찬이 풍성한 때이기 때문에, 창작집에 해설을 붙이듯이 긍정적인 면만 부각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이는 비평가만 아니라 일반 독자들 역시 고려해 볼 만한 태도다. 한국 문학은 김영하 문학으로써 만족할 만한 수준을 보였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것은 지금 의미 있는 문제다.

<검은 꽃>은 일단 그가 장편 작가의 자질을 품고 있음을 보여준 역작이라고 평가해 볼 수 있다. 장편이라고 하기에는 소략했던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나 <아랑은 왜>와 비교해 볼 때 이번 작품은 단연 수작에 속한다.

구한말 일군의 무리가 새로운 삶을 찾아 일포드 호를 타고 머나먼 유카탄 반도로 떠나는 설정부터 서사적인 골격을 제대로 갖추었다고 할 수 있을 뿐더러, 다종다양한 사람들이 펼쳐나간 삶의 양태들을 놓치지 않고 끝까지 밀고나간 성의도 돋보인다. 또 주인공 격인 김이정과 이연수, 두 젊은 남녀의 관계를 긴장감 있게 끌고간 매력도 빼놓을 수 없다.

특유의 유닉크함과 인간애 더 깊어지기를

여기에 하나 더 덧붙일 수 있는 것은 김영하씨가 이런 이야기를 통해 작가 자신의 세계관이라고 할 만한 것을 실험해 보였다는 사실이다. 먼 곳으로 떠나 종적 없이 사라져버린 사람들의 이야기에 작가는 왜 그렇게 매료되었던가. 작가는 이러한 자기의 기질과 성향에 대한 하나의 알리바이를 제공하고자 했으며, 나아가 이를 국가 체제를 회의하는 무정부주의적 경향으로 갈무리하고자 했다.

유니크한 조작과 단순 명쾌한 문장미로 명성을 얻은 작가가 사상성을 확보하려고 했다는 것은 그가 작품 활동 제2기에 접어들었음을 시사하는 것으로 받아들여도 무방할 것이다. 황순원문학상을 수상한 <보물선>은 이러한 작가적 변환의 한 징후였다. 그런데 바로 여기에 문제성이 있다.

과연 장편소설 <검은 꽃>에 실린 작가의 사상은 사상이라는 이름에 값할 만한 것으로서, 한국 문학의 세계적 수준을 담보해 줄 만한가? <검은 꽃>에 나타난 국가 사상은 아직 심화하지 않은 맹아 수준의 것이라는 것이 필자의 판단이다. 그리고 이는 작가가 헤쳐 나아가야 할 문학의 여정이 험난함을 일깨워 준다. 기왕 작가가 문학의 세계성을 강조하고 세계를 상대로 대화하는 작가가 되고자 한다면 그 자신의 재능을 어떻게 심화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리라.

이 점에서 김영하씨가 최근에 펴낸 창작집 <오빠가 돌아왔다>에 실린 표제작은 필자에게 신선했다. <비상구>에 이어지는 연작성 강한 이 작품은 작가의 유니크함이 가장 돋보이는 한편으로 작가가 스스로 묘사하고 있는 대상을 향한 인간애를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면모가 앞으로 김영하씨의 소설에서 더욱 확대되고 심화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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