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공동체 이상인가 현실인가
  • 안철흥 기자 (epigon@sisapress.com)
  • 승인 2004.12.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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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장집·백영서 교수의 ‘동아시아 담론’ 논쟁
국내의 대표적 정치학자 중 한 사람인 최장집 교수(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장)가 최근 인문학계에서 유행하고 있는 이른바 ‘동아시아 담론’에 메스를 들이댔다. 동아시아 공동체 담론이 각국의 민족주의라는 현실을 간과함으로써 ‘과거를 우회하여 미래에 이르는 일종의 논리적 공백’을 드러내고 있다는 것이다.

최교수는 ‘(냉전이라는) 구질서가 근본적으로 해체되지 않고 있는’ 동아시아에 평화를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동아시아 아이덴티티’를 찾는 노력보다 ‘평화의 요구와 가치에 대한 목적의식적 행위’나 ‘집단적 해결책을 얻고자 하는 정부들 간의 협력’ 같은 구체적인 의미지평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최교수의 이런 주장은 최근 발매된 <아세아 연구> 118호의 ‘동아시아 공동체의 이념적 기초: 공존과 평화를 위한 의미지평’이라는 글에 실려 있다. 다음은 동아시아 담론에 대한 최교수의 비판 요지.

‘동아시아의 구질서는 근본적으로 해체되지 않고 있을 뿐더러 유럽과 아시아의 사정은 전혀 다르다. 아시아에서는 미국을 맹주로 하는 1 대 1 동맹 관계가 중심이 됨으로써 다자적·塤騈?관계가 발전하지 못했고, 미국의 힘은 여전히 절대적이다. 일본과 중국은 새로운 맹주를 노리며 떠오르고 있다. 또한 한반도는 여전히 분쟁의 진앙지로 남아 있다. 동아시아 공동체는 냉전적 대립 구조를 완전히 허물어버린다는 의미에서만 가능한 말이지만, 현재 동아시아의 정세는 그렇지 못하다.

민족주의 또한 동아시아 지역 공동체 논의에서 큰 장애 요인이다. 우리는 이념이나 이데올로기 또는 가치로서의 민족주의와 근대화 및 국민국가 형성 과정에서 현실로서 존재했던 역사적 현상으로서의 민족주의를 구분해서 보는 것이 필요하다. 민족주의는 관념적으로 부정하고 해체한다고 그 현실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객관적 해결을 위해서도 이 문제와 대면하지 않으면 안된다. 탈민족주의적 방식으로 동아시아 공동체에 접근하는 것은 오히려 현상으로서의 민족주의를 대면하고 이해하는 것을 어렵게 만든다.’

최교수의 비판, 동아시아 담론의 빈곳 채워줘

최근 유행으로 떠오른 동아시아 담론이 국내에서 논의되기 시작한 지도 10년 가까이 된다. 탈냉전 시대를 맞아 학계의 시야가 한반도 중심에서 벗어났고, 또 사회주의와 자유주의를 대체할 새로운 이념, 혹은 새로운 문명을 찾기 시작하면서 동아시아에 대한 관심은 증폭되었다. 하지만 동아시아 담론이 하나의 이론 체계로 정식화한 것은 아니며, 논자들에 따라 지향점도 각각 다르다.

동아시아 담론 중 대표적인 것이 최원식·백영서 교수 등 <창작과 비평> 계열 학자들이 주장하는 동아시아론. 백낙청 교수가 1980년대 주장했던 분단체제론의 ‘버전 업’ 형태로 열린 민족주의를 통한 동아시아 연대를 주장한다. ‘동북아 공동의 집’이라는 용어를 통해 동북아 평화 정착과 정치·안보 공동체 수립을 제안하는 와다 하루키·강상중 교수의 주장도 비슷한 맥락. 반면 임지현 교수는 ‘비판과 연대를 위한 동아시아 역사 포럼’을 이끌며 국사 해체 등 탈민족주의 주장을 펼치고 있다. 김병국·함재봉·유석춘 교수가 주도하는 유교 민주주의론도 동아시아 담론의 한 종류다.

동아시아 담론은 최근 정부가 동북아 중심 국가를 천명하고 아세안+3 회담에서 동아시아 공동체 논의를 선도하면서 탄력을 받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 논의가 인문학 분야에 한정되어 있어서 현실적인 구체성을 갖기 힘들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 최장집 교수의 비판은 기존 동아시아 담론의 빈곳을 채워주면서 논의 활성화에도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창작과 비평> 편집위원으로 1990년대 중반 동아시아론의 이론적 틀을 만들었던 백영서 교수(연세대·중국사)를 만나 최장집 교수의 글에 대한 그의 생각을 들어보았다.
‘대동아 공영권’ 등 동아시아를 하나로 묶으려는 시도는 과거에도 있었다. 동아시아론은 그런 사상과 어떻게 다른가?

지금까지 세 가지 형태의 아시아 질서가 있었다. 중화세계, 대동아공영권, 미국 주도의 질서 등이다. 이 모두는 강대국 중심의 질서여서 공동체와는 맞지 않았다. 동아시아론은 누가 일방적으로 주도하지 않는 균형·균세를 지향한다. 또 국내에서 이런 담론이 가능한 이유는 한국이 어느 정도 발전해서 그 역할을 할 때와 여건이 되었기 때문이다.

최장집 교수는 동아시아의 냉전 구도가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데, 동아시아 담론 주장자들은 이런 현실을 보지 못하고 미국의 역할을 과소 평가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인식의 차이다. 정치 안보적인 측면에서 보면 최장집 선생의 이야기가 맞다. 그런데 우리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문명론적인 것이다. 패러다임을 바꾸자는 것이다. (동아시아론자인) 최원식 선생은 ‘세계를 변화시킬 힘이 한반도 주변에 있다’고 하는데, 미국의 힘을 상대화하고 다자주의로 가자는 뜻이다.

최장집 교수는 탈민족주의가 한반도 문제에 천착하는 것을 방해하고, 이는 동아시아 평화를 오히려 저해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나 또한 탈민족주의를 우려한다. 한국은 아직 분단 국가이며, 이런 조건에서는 민족 문제를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한반도의 개혁과 동아시아 공동체를 만드는 것은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두 가지 길이다. 동아시아 담론은 비행기 타고 국경을 넘나들며 공동체를 만드는 이상주의자들의 담론이 아니다. 다만 우리는 열린 민족주의를 지향해야 한다. 남북 관계나 북핵 문제 등 민족 문제를 민족주의적 방식만으로 풀지 말자는 것이다.

동북공정, 역사교과서 왜곡 등에서 보듯 민족주의, 혹은 자민족 중심주의는 날로 강해지고 있다. 이런 현실에서 동아시아 공동체가 과연 가능한가?

대동아공영권이 실패한 데서 보듯 자민족 중심주의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휘발성이 강한 대중적인 민족 정서를 어떻게 넘어설 것인가에 있다. 그런 점에서 인문학적 발상이 중요하다. 사실 인류 역사상 국민국가 경험은 일천하다. 현재의 국경이 만들어진 것도 얼마 안 된다. 그런 점에서 보면 민족주의의 변화 가능성은 있다. 제도적인 영역과 함께 동아시아 공동체로서의 정체성을 위한 문화 공동체에 대한 관심을 계속 가져야 한다. 그런 점에서 최근 대중 문화의 상호 침투 현상은 주목할 만하다.

앞으로 과제는?

동아시아 담론이 발전할수록 탈냉전·탈식민·탈패권 문제가 본격 논의될 것이다. 동아시아에는 식민과 패권 문제, 민족주의와 국가주의 문제 등이 중첩되어 있다. 동아시아 공동체는 이런 문제를 동시에 추구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다. 또한 동아시아 공동체는 경제나 안보뿐 아니라 사회·대중 문화 등 여러 층위에서 진행될 것이다. 진보적 지식인들의 역할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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