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 자본·국내 노조 ‘정면 충돌’
  • 이철현 기자 (leon@sisapress.com)
  • 승인 2004.07.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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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티그룹, 한미은행 파업에 버티기 일관…정부도 사측 측면 지원
외국 자본과 국내 노조가 벌이는 기세 싸움이 ‘한미은행 파업 사태’를 계기로 정점으로 치닫고 있다. 씨티그룹은 겉으로 한미은행 노조와 벌이는 협상을 전적으로 하영구 행장에게 일임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한미은행 파업 사태가 과거 씨티은행 노사분규와 비슷한 행태로 진행되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씨티그룹이 최대 주주로서 노사협상 과정에 어떤 식으로든지 관여하고 있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사측은 은행권 최장기 파업이라는 기록을 세울 때까지 노사협상에 적극 나서지 않았다. 또 경영진은 합병 과정에서 종업원들을 다독거리기보다는 경영권만 내세워 강공 일변도로 나갔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 와중에 정부는 노조 집행부를 수배하고 노조원들이 점거한 한미은행 본점에 공권력을 투입하겠다는 뜻을 밝히면서 사측을 측면 지원하고 있다.

한미은행 노조가 경영 간섭에 가까운 조건을 내걸었기 때문에 협상이 난항에 빠졌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씨티그룹은 지금 노조에게 밀렸다가는 한미은행 구조 조정 작업에 차질을 빚을 것으로 판단해 ‘버티기’에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올해 초 론스타는 외환은행과 외환카드를 합병하는 과정에서 노조가 거세게 반발하자 직장폐쇄까지 단행하며 항복을 받아낸 적이 있다.

씨티그룹이 직접 협상에 나서지 않는 데는 이유가 있어 보인다. 회사 이미지에 상처를 입지 않으면서 골칫거리인 노조를 제압하겠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는 지적이다. 씨티그룹은 그동안 씨티은행 노조가 벌인 파업에 강경하게 대처했다. 씨티은행 서울지점 노조는 1991년 한 달, 1992년 두 달, 1993년 한 달 동안 파업을 벌였고, 1995년 단식 17일, 1998년 단식 17일과 파업 3일 등 격렬하게 투쟁했으나 씨티그룹은 꿈적도 하지 않았다.

씨티그룹은 한번 방침을 정하면 끝까지 밀어붙인다는 평을 받는다. 파업이 일어났을 경우 국내 은행들이 예금 인출과 고객 이탈을 걱정해 적극 노사협상에 나서는 것과 비교된다. 예를 들어, 신한은행은 지난해 조흥은행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조흥은행 노조가 파업을 벌이자 적극 협상에 나서 1주일을 넘기지 않고 타결한 적이 있다.

외환위기 이후 추진된 금융산업 구조 조정은 ‘외자(外資) 도입’과 ‘헤쳐모여’로 요약된다. 정부는 공적자금을 투입해 부실을 깨끗이 정리한 금융기관들을 잇달아 외국 금융기관에 매각하거나 금융지주회사로 한데 묶었다. 증권거래소가 지난 6월30일 발표한 ‘2004년 상반기 외국인 상장주식 보유 현황’에 따르면, 국내 은행 지분 63%를 외국인들이 갖고 있다.

또 우리금융지주·신한금융지주·동원금융지주가 증권·투신운용·카드·보험·캐피털 부문 자회사를 합병하거나 외부 금융기관을 인수해 덩지를 키웠다. 하나은행과 국책 은행인 산업은행은 금융지주사로 변신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금융 구조조정 완결판 ‘개봉박두’

정부가 지난 4년 동안 추진한 금융산업 구조조정의 완결판이 한국투자신탁과 대한투자신탁 매각이다. 두 회사는 ‘공적자금을 잡아먹는 귀신’이었으나 정상화 방안이 여의치 않아 정부에게는 여간 골칫거리가 아니었다. 정부는 우여곡절 끝에 7월1일 한투와 대투를 입찰에 부쳤다.

인수 후보는 다섯 곳. 국내 금융회사 2곳(동원금융지주·우리금융지주)과 외국-국내 컨소시엄 1곳(하나은행-골드만삭스), 외국 컨소시엄 2곳(소로스펀드-올림푸스캐피털-PCA, AIG-칼라일)이 입찰에 참여했다. 정부는 7월 중순까지 우선협상자를 결정한 후 최종 가격 협상을 거쳐 8월 말에 본계약을 체결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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