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위가 무색한 ‘냉동 소비 심리’
  • 장영희기자 (mtview@sisapress.com)
  • 승인 2004.08.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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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수, 3년7개월만에 최저 수준 추락…가계 빚·고용 악화 등이 주범
열대야가 무색하게 소비 심리는 한겨울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6개월 뒤 경기·생활 형편· 소비 지출을 나타내는 7월 소비자 기대심리 지수(89.6)가 3개월 연속 떨어져 3년 7개월 만에 최저 수준으로 추락했다. 6개월 전과 비교해 현재의 소비 심리를 나타내는 소비자 평가지수 역시 66.2로, 지난해 10월 이후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소비 심리가 꽁꽁 얼어붙은 것은 모든 소득계층에서, 모든 연령대에서 공통적이다.

문제는 이런 소비 심리 악화가 최악이 아닐 수 있으며, 이로 인해 1년 6개월 동안 계속된 소비 부진 현상이 장기화할 조짐마저 보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지난해 마이너스 1.4%를 기록했던 민간소비 증가율은 올해 잘해야 0%가 될 전망이다. 내년에도 소폭 증가에 그칠 것으로 보인다. LG경제연구원 송태정 부연구위원은 “소비 부진은 물가 상승 같은 경기 순환적인 측면뿐 아니라 한국 경제의 구조적 요인에 기인한다는 점에서 장기화할 가능성이 있다”라고 진단했다.

우선 가계가 빚이 너무 많다. 지난해 하반기 이후 가계신용(가계대출+신용카드 외상 판매) 증가 속도가 크게 둔화했지만, 여전히 가구당 가계 부채 규모가 3천만원에 달할 정도로 크다. 최근 하나경제연구소가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2000년 15.4%였던 가계의 처분가능소득 대비 부채상환 비율이 올 1/4분기 25.9%로 급등해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게다가 은행의 주택 관련 가계 대출 평균 만기가 2년 8개월인 점을 감안하면 상환 압력은 2005년 상반기에 최고조에 달한다. 월급쟁이 중산층도 빚 갚느라 소비 여력이 크게 줄어든 것이다.

소득 양극화도 소비 회복을 늦추는 구조적 요인이다. 외환위기 이후 저소득층(소득 하위 20% 이하 계층) 흑자율은 7년째 마이너스 상태다. 2002년 8.5%에서 올 1/4분기 25.6%로 급증하는 등 적자율도 날로 높아지고 있다.

고용의 질이 악화하고 있는 것도 빼놓을 수 없다. 전체 임금 근로자 가운데 임시·일용직 등 비정규직 노동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6월 말 현재 49.5%에 달하고 있다. 이들의 임금은 정규직의 48.3%밖에 되지 않는다. 결국 기업들은 비정규직을 늘려 노동 비용을 크게 줄이는 등 단맛을 보았지만, 가계의 구매력 약화를 초래해 내수 판매 부진이라는 부메랑을 맞고 있는 셈이다.

수출 둔화 등 악재만 첩첩

가계 소득에서 비소비지출(세금+공적연금+사회보험 등)과 고정비 성격이 강한 주거비와 교육비를 뺀 이른바 ‘재량적 소비 지출’ 비중이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도 소비 회복을 제약하고 있다. 여기에 민간 소비와 연관 효과가 큰 주택건설 경기가 위축되고, 성장을 외끌이하던 수출마저 하반기에 증가율이 둔화하리라는 전망이 나오면서 소비 심리에 찬물을 끼얹고 있는 것이다.

8월8일 청와대 이병완 홍보수석은 재계와 일부 언론이 정부의 경제 수장(이헌재 부총리)이 올해와 내년 5%대라는 괜찮은 성장 예측치를 내놓았음에도 이를 묵살하며 비관 심리를 유포한 것이, 소비자들이 열려던 지갑을 다시 닫게 했다고 주장했다. 한국 경제에 대한 비관론이 퍼지면서 불안감 역시 확산되었고 이것이 소비 심리에 악영향을 미쳤다는 지적은 일리가 있다.

하지만 심리적 요인은 엎친 데 덮친 격의 위력을 미쳤을 뿐이다. 소비는 소득의 함수다. 소비 여력이 있어야 소비할 수 있는데 그럴 수 없는 구조적 원인이 한국 경제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최근 정치권과 외국 증권사 등에서 정부가 적극적인 재정 정책을 펴거나 감세해야 한다는 주장이 터져 나오는 것은, 그만큼 소비 회복이 한국 경제의 난제라는 사실을 웅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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