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 개혁과 시장 경제에 대한 '미신'
  • 류동민 충남대 교수·경제학 ()
  • 승인 2001.07.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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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 개혁도 사회 개혁도 물 건너간 지금, 언론 개혁마저 경음기를 울리며 밀어내다가 적당히 양보하거나 운 좋게 굴복시키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되고, 이 참에 새로운 제도적 틀을 만들어 내야 한다.


요즘 어느 대학이 그렇지 않을까마는 내가 근무하는 학교 근처에도 한때 전국적인 명성까지 드날렸던 유흥가, 좋게 말하면 젊음의 거리가 있다. 항상 인파로 북적대는 좁은 길 한 켠에는 불법 주차 차량들이 줄지어 서 있고, 그러다 보니 두 방향에서 달려오는 자동차들끼리 상호 교행이 가능할 리 없다.




이럴 때 운전자들은 대부분 극히 한국적인(?) 방식으로 경음기를 누름으로써 자신이 먼저 가고야 말리라는 강력한 의지를 표명한다. 비범한 터프가이들은 아예 시동을 끄고 상대방이 쩔쩔매며 후진하는 모습을 즐기기까지 한다. 두 자동차가 대치하는 사이 각자의 뒤편에 몇 대의 자동차가 줄지어 섬으로써 편싸움 양상을 띨 때도 있다.


거대 언론과 정부·여당 간의 세무 조사를 둘러싼 대립은 대학 교수(나를 비롯해서 교수들은 어찌도 그리 많은지?)에 소설가까지 가세하면서 바야흐로 '홍위병'과 '수구 보수 세력' 간의 전쟁으로 발전했다. 그 와중에 명색이 경제학자인지라 지난 시절 예외 없이 되풀이되다가 흐지부지되었던 재벌 개혁 문제를 떠올렸고, 논쟁 과정에서 드러나는 시장 경제에 대한 몇 가지 환상을 발견한다.


첫째, 언론사와 언론 기업은 분리해서 생각해야 한다는 주장. 이는 아마도 결백을 입증하기 위한 여당 정치인들의 고육지계인 듯하나, 상품을 시장에서 거래되는 물건으로만 보고 그것을 생산하는 과정에서 작용한 사람들 간의 사회적 관계를 무시하는 잘못된 견해이다. 나이키 운동화의 뛰어난 품질과 하루에 1달러도 안되는 임금으로 착취당하면서 그것을 만든 저개발국 노동자들을 분리해서 생각하는 순간, 우리는 상품이라는 우상에 사로잡힌 몽매한 우민으로 전락하고 만다.


둘째, 자본주의 시장 경제에서는 주인이 있어야 경영 성과가 좋아진다는 환상이다. 이 환상의 따름정리는 경영 성과가 나쁜 것은 주인이 없기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사실 시장은 효율적이며 그 기능을 최대한 발휘하기 위해서는 어떤 식으로든 오너의 소유권을 침해해서는 안된다는 미신을 대중화하는 데 가장 크게 기여한 것 또한 대통령 이하 현정부 당국자들이 아니던가?


셋째, 정략적 이해 관계에 얽매이지 않고 역사의 심판을 받겠다는 개인의 영웅적 결단만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보는 환상이다. 재벌 체제를 뿌리 뽑을 듯이 설치면서 총수들을 줄줄이 법원으로 불러들이다가, 경제를 위축시켜서는 안된다는 단골 레퍼토리와 함께 슬금슬금 문제를 덮어 버리던 모습을 우리는 얼마나 많이 보았던가. 그렇게 풀려난 재벌 총수들이 '정부는 삼류' 어쩌고 하면서 경영권 세습이나 왕자의 난 같은 삼류 행태를 눈 한번 깜박하지 않고 저지르지 않았던가.


재벌이나 사학, 언론의 초법적인 횡포에 대한 비판을 사유재산권에 대한 도전으로 간주하고, 온 세상에 때아닌 빨갱이들이 설친다고 호들갑을 떠는 보수 이데올로그들은, 적어도 현재 한국 사회에서 오너 시스템의 폐해에 대한 저항과 옹호 간에 전선이 형성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는 한에서는 옳다. 그러나 수많은 계열사와 인재를 한낱 개인 재산을 상속시키기 위해 동원하는 재벌, 교육기관의 커리큘럼까지 이윤 극대화 관점에서 주무르는 사학 재단, 신문을 종친회 소식지쯤으로 생각하는 거대 언론은 그 이데올로그들이 그토록 열망해 마지 않는 시장 경제의 묘혈을 스스로 파는 자들에 지나지 않거늘!


재벌 개혁도 사학 개혁도 물 건너간 지금, 언론 개혁마저 경음기 울리며 밀어내다가 적당히 양보하거나 혹은 운좋게 굴복시키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되며, 새로운 제도적 틀을 만들어야 한다는 평범한 진리가 대중적 미신의 자리를 대신하기를 간절하게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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