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권력의 기억상실증
  • 서명숙 편집장 (sms@sisapress.com)
  • 승인 2002.10.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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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서 교훈을 얻는다’. 정치인들이 가장 많이 입에 올리는 말이다. 그러면서도 그런 다짐을 늘 배반하는 부류가 정치인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권력형 부정부패와 친인척 비리가 어째서 늘 비슷한 모양새로, 이토록 질기게 되풀이되겠는가.





또 전임 대통령의 호화판 사저를 비판했던 DJ가 그보다 훨씬 호화로운 사저를 짓는 일이 어떻게 가능하겠는가.
권력의 기억상실증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북방 외교를 펼쳤던 노태우 대통령 시절, 당시 평민당 김대중 총재는 냉전 체제의 틀을 깬 한·소 정상회담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유감의 뜻을 덧붙였다. 그 요지는 여당의 독주와 정보 독점으로 초당적 외교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30여억 달러 차관 공여설’에 대해서도 결국은 국민의 부담이 된다는 점을 감안해 따져볼 것을 주문했다.



그러나, 정작 정권을 잡은 뒤 김대통령은 역사의 교훈을 까맣게 잊고 말았다. 오랫동안 갈고 다듬은 햇볕정책을 밀고나가는 과정에서 야당의 이해와 협조를 구하는 일을 게을리한 것이다. 역사의 새로운 장을 연 6·15 남북 정상회담 직후 많은 전문가들은 남북 문제보다는 남남 문제가 더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불행히도 전문가들의 우려는 적중했다. 우리 관중이 북한 선수단을 열렬히 응원하고 여성 응원단을 극성스레 따라붙을 만큼 남북은 열렸지만, 한나라당이 ‘북한 거액 지원설’ 등을 제기하고 나서면서 남남의 갈등은 더 가팔라지고 있다. DJ 자신이 일찍이 지적했듯이, 당파를 초월한 협력을 끌어내는 데 실패한 결과다.



정권 말기마다 터져나오는 폭로도, ‘그런 일은 있을 수도, 있어서도 안된다’는 식의 해명도, 붕어빵 틀에서 찍어낸 듯 흡사하다. 욕하면서 닮고, 비판하면서 답습하는, 정치권의 기억상실증이 신기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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