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내 도서관
  • 이문재 기자 (moon@sisapress.com)
  • 승인 2004.09.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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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는 표어를 접할 때마다 약간 혼란스러워집니다.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시대에, 가을과 독서를 동일시하는 인식은 한 세대가 훨씬 지났는데도 바뀌지 않기 때문입니다. 현기증이 날 만큼 진화하는 정보 통신 환경에 견주면 ‘책 속에 길이 있다’는 연례 행사는 고리타분해 보입니다.

가을은 더 이상 독서의 계절이 아닙니다. 오히려 여름과 겨울철에 책을 많이 찾습니다. 쉬지 않고 독서 캠페인을 펼치는데도, 1990년대 후반 이래 출판 시장은 좀체 불어나지 않고 있습니다.

초등학생부터 대학생에 이르기까지 숙제와 과제물을 인터넷으로 해결합니다. 대학생들은 매월 휴대전화 사용료를 내고 새로 나온 영화를 보느라 책 살 돈이 없다고 합니다. 또 인터넷에 접속하다 보면 책 읽을 시간이 거의 없다고 합니다. 디지털 환경이 독서 문화를 옥죄고 있습니다.

 
그런데 다름아닌 정보 통신 관련 업체들이 책읽기를 강조하고 있다고 합니다. 한 포털 업체는 직원들의 독서 동아리에 책값을 지원하다가 아예 회사 안에 서재(도서관)를 설치했다고 합니다. 또 다른 포털 회사에서는 직원들에게 책을 나누어 주고, 독후감을 받는다고 합니다. 인터넷 관련 업체들이 빠르기는 빠릅니다. 인터넷 사용자들이 책을 멀리하는 사이, 책 속에서 길을 찾고 있는 것입니다.

몇년 전, 컴퓨터 게임 개발 업체 사장을 만난 적이 있는데 ‘가장 절실한 것이 인문학적 상상력’이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인문학적 소양이 있어야 세계 시장에서 승부할 수 있는 게임을 만들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업체가 그 후 승승장구하는 것을 보면, 독서량이 풍부한 젊은이들을 많이 채용한 모양입니다.

그러고 보니 빌 게이츠가 가장 빨랐습니다. 어린 시절, 마을 도서관에서 살다시피 했다는 빌 게이츠는 세계 최고 갑부가 된 이후에도 여름 휴가 때면, 읽을 책을 한 아름 안고 혼자 칩거한다고 합니다. 책 속에 길이 있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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