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의 자해 행위
  • 문정우 편집장 (mjw21@sisapress.com)
  • 승인 2004.10.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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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사학 명문이 고교 등급제를 적용했다 하여 말썽이다. 어떤 조직이건 특정 지역 출신에게만 문턱을 낮추면 탈이 나기 마련이다.
후배 기자들과 오랫동안 부대끼다 보면 ‘사람을 섣불리 판단하면 안 되겠구나’ 하고 느낄 때가 많다. 처음에는 숫기가 없어 취재원에게 쉽사리 접근하지도 못하고 글도 신통치가 않아 영 기자 생활을 못할 것 같던 친구가 어느 순간 민완 기자로 변신하기 때문이다. 당연히 기자들을 새로 뽑을 때 도대체 어떤 기준을 들이대야 할지 고민하게 된다. 인간의 능력을 판단하는 것은 인간의 영역이 아닌지도 모르겠다.

기자를 뽑는 것이 지난한 작업이긴 하지만 큰 방향을 제시해주는 좋은 선례는 있다. 한국일보를 창간한 장기영씨는 우리 나라 기업인으로서는 드물게 신입 기자 공채 시험에서 학력 제한을 없애버렸다. 이같은 한국일보의 열린 인사제도는 수많은 인재를 끌어들였고, 급기야 선발 주자였던 조선일보나 동아일보와 어깨를 나란히 할 만큼 성장할 수 있었다. 나중에 회사를 맡은 사주의 후손들이 경영을 잘못하는 바람에 태반의 인재들이 다른 언론사로 자리를 옮겨 ‘기자 사관학교’라는 불명예스런 별명을 얻게 되었지만.

조선일보는 중앙 일간지 중에서 가장 개방적으로 편집국 인사를 운영해온 것으로 유명하다. 자사 공채 기자들에게 특혜를 주지 않아 다른 매체 인재들이 거리낌 없이 옮겨올 수 있도록 만들었고, 특히 지방 언론의 인재들에게 서울에서 능력을 발휘할 기회를 많이 제공했다. 대부분의 중앙 언론사들이 지방 기자들에게 폐쇄적이었던 것과 대조적이다. 조선일보가 업계 1위를 달리게 된 것은 이른바 독재에 부역해서만은 아니다.

1987년 6월항쟁 이후 언론 활동이 자유로워지자 새로운 매체들이 속속 창간되었다. 개중에는 종교재단의 막강한 재력을 등에 업고 기자들에게 파격적인 대우를 해주며 금세 기성 매체들을 압도할 것 같은 위세를 보인 매체들도 있었다. 하지만 오늘날 그들의 위상은 초라하다. 창간 당시 영입한 특정 언론사, 특정 지역 출신들끼리 끊임없이 반목하며 서로 밀어내기를 한 것이 이들 언론사들이 실패한 이유 중의 하나였다.

이화여대 연세대 고려대 등 이른바 사학 명문들이 수시모집을 하면서 서울 강남 출신을 우대하고 지방 출신을 홀대해 말썽을 빚고 있다. 어떤 조직이건 특정 지역 출신에게 문턱을 낮춰주는 것은 자해 행위이다. 악담이 아니라 그러고도 잘되는 꼴을 못보았기에 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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