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으로 지새우는 나라
  • 박상기 (연세대 법대 학장) ()
  • 승인 2003.07.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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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적 심리는 인간 본성에 내재하는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인간이란 양손에 떡을 쥐고도 무엇을 먼저 먹을까 갈등하는 존재이다. 이처럼 어느 경우나 만족하는 상황에서 갈등하는 경우와 달리 사회적 갈등은 대부분 상충하는 이해 관계, 즉 인간의 마음을 반대 방향으로 유인하는 관계에서 비롯한다. 지금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갈등 관계를 보면 표면으로는 동일한 것 같지만 성격이 다르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당연히 그 해결 방법이 달라져야 한다.

예를 들면 한국 사회는 이혼율이 세계에서 미국 다음으로 높다고 한다. 이는 부부 간에 갈등이 심각하다는 반증이다. 그밖에도 부모와 자식, 세대 갈등은 인간 관계에서 나타나는 것으로서 사회적 가치관의 변화에 따른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제도적으로 막을 수 없다. 결국 적응하려는 노력과 올바른 가치관 정립을 위한 사회 교육의 필요성이 강조될 뿐이다.

반면에 국가적으로 심각하게 후유증을 가져오는 갈등이 표출되어 사회적 불안을 증대시키는 경우가 있다. 대표적으로 전라북도 부안의 경우를 생각해보자. 이곳은 현재 전국에서 가장 힘들고 어려운 과제를 안고 있는 지역이다. 먼저 원전수거물관리센터, 세칭 방폐장 건설사업지로 부안군 위도가 결정되었는데, 반대자들의 시위가 연일 계속되고 있다. 다음으로 10년 이상 논란이 되고 있는 새만금 간척사업지에도 부안군 일대가 포함된다. 두 사업 모두 중요한 국책 사업이다. 부안군에 거주하는 주민은 물론이고 국민 대다수가 어느 경우로 결정되든 상실의 아픔을 느낄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이 아픔을 최소화하는 국가적 결단이 필요하다.

이밖에도 중요한 국가적 사업이 크고 작은 갈등 관계에 놓여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예를 들면 부산시와 진해시는 두 도시 사이에 건설되는 새로운 항만의 이름을 놓고 다투고 있다. 경부고속전철 천안과 아산 사이에 건설되는 역 명칭을 둘러싼 논란도 끝나지 않았다. 이는 정확하게는 갈등보다는 두 지역의 이기심이 충돌한 경우이다. 그러므로 미룰 것이 아니라 어느 방향으로 결정을 내려도 국가적인 피해는 발생하지 않는다.

노사 분규를 예로 들어보자. 이 경우는 사용자와 노동자의 이해 관계가 서로 상반되는 상황이다. 어느 한 편의 주장만을 들어주게 된다면 사회적 비용이 문제 될 수 있다. 사용자측만을 옹호하게 되면 노동자의 근로 조건이 악화할 수 있고, 노동자의 요구 조건만을 들어준다면 생산비 증대라는 부정적 결과를 낳게 될 것이다. 결국 양측이 이해 관계를 조정해 각자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이 최상이라는 점을 깨달아야 하고, 정부의 역할은 조정자에 그쳐야 한다. 즉 노조가 정부를 상대로 하는 노사 분규를 종식시켜야 하는 것이다.

문제를 더욱 심각하게 하는 것은 이러한 갈등을 조정하는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해야 할 청와대와 여당의 난조이다. 신당을 둘러싼 민주당 내의 갈등이 계속되더니 정대철 대표 검찰 소환을 둘러싼 당·정 간의 논란은 자신들의 영역을 벗어나 국민에게 피해를 주고 있다. 정대표의 경우 굿모닝시티 윤창렬 사장으로부터 돈을 받은 사실을 인정한 만큼 법적 판단만이 남은 상황이다. 어떻게 보면 우리 정치의 제도적 후진성과 잘못된 관행 등이 얽혀 발생한 사건이라고 볼 수 있다. 정대표 스스로 희생자라고 생각할 여지도 없지는 않다. 그러나 집권당(집권당 대접을 해주지 않아서 문제가 더욱 심각해졌지만) 대표로서 떳떳하게 심판을 받는 것이 이러한 갈등 상황을 빨리 끝내는 길이다.

선진화하면 갈등은 오히려 증대한다. 의식 수준과 요구 수준이 향상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선진국일수록 이러한 갈등을 조정하고 해소하는 방법을 잘 터득하고 있다. 우리 나라처럼 규제와 불투명성, 부패 등 예측 가능성과 신뢰성이 확보되지 못한 사회에서는 갈등 조정을 위한 제도 마련과 통합 조정 역할이 더욱 절실하다. 방치할수록 사회는 표류하고 국민은 불안하게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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