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조키스트가 지배하는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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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0.08.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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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젊은 세대가 한·미 행정협정 개정을 요구하자 , 기다렸다는 듯이 사대주의·극우· 반공 주의자들이 또 ‘반미 감정 유발’이니 ‘위기 조성’이니 하면서 입에 거품을 물고 매도하기에 여념이 없다. 멸시
정신의학에 ‘사디즘’과 ‘마조키(히)즘’이라는 것이 있다. 사디즘이란, 남녀의 성행위에서 주로 남성이 여성에게 신체적 고통과 학대를 가하면서 성적 만족을 느끼는 ‘가학성 변태 성애(加虐性 變態 性愛)’이다. 반대로 마조히즘은, 주로 여성이 남성으로부터 신체적 아픔과 학대를 받으면서 성적 흥분과 오르가슴을 경험하는 ‘피학성(被虐性) 변태 성애’이다. 누구나 다 알고 있을 이런 변태적 성행위를 새삼스럽게 이야기하는 이유는, 최근 우리나라에서 주한미군 문제로 벌어지고 있는 현상과 사태의 본질이 개인 남녀 간의 사디즘과 마조히즘을 연상케 하기 때문이다. 슬픈 일이지만 그렇다.
내가 이 시론에서 여러 차례 지적했듯이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와 북미합주국의 관계는 주권·독립 국가 관계가 아니다. 그 관계의 본질은 반(半) 식민지적 관계이다. 차마 그것을 인정하기가 부끄럽다는 사람을 위해서 표현을 부드럽게 바꾸자면 고작 ‘예속’적 관계라고 할까!
지난 군부 독재 시대에 반독재·민주주의·인권·국민적 자존·국가적 자주… 를 위해서 싸운 젊은 세대들이 궐기하고 있다. 그 하나의 형태가 ‘주한미군의 지위에 관한 협정’(한·미 행정협정 또는 SOFA)을 개정하라는 요구이다. 그들의 요구는 미군지위협정을 폐기하라는 것이 아니다. 미군지위협정 폐지는 곧 주한미군 철수 요구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그들이 요구하는 것은 다만, 한·미 행정협정을 최소한 지난날 미국의 반 식민지였던 필리핀의 그것 수준까지라도 끌어올리라는 것이다. 이것은 ‘요구’라고 할 것도 못된다. 너무나 당연한 주장이다.

사실인즉, 현행 ‘주한미군의 지위에 관한 협정’은 19세기 중엽 아편전쟁 이후 영국·러시아·프랑스·독일·일본 등 제국주의가 각기 중국을 반 식민지화했을 때 중국(淸)과 체결했던 ‘치외법권(治外法權)’과 다름없다.
그것은 막바로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인간·국가 관계를 규정한 것으로, 근·현대사에서 악명 높은 ‘불평등조약’이다.

미국은 유럽과 아시아의 여러 나라에 군대를 주둔시키고 있다. 그러나 영국·독일·이탈리아·일본 등과의 ‘주둔군 지위에 관한 협정’은 남한(대한민국)과의 협정과는 그 처우 수준에서 천양지차이다. 그들 국가는 그래도 문명 국가 대접을 받고, 그 나라 시민은 거의 문화인에 준하는 권리와 대접을 받고 있다. 이들 문명 국가나 그 시민의 법적 권리는 고사하고, 미국의 옛 식민지였던 필리핀과의 협정보다도 못한 것이 한국과 맺은 협정의 내용이다. 이같은 ‘피지배자적 지위’의 협정조차 미국 군대가 주둔한 지 20년이 지난 1966년에야 체결되었다. 그 이전 20년 동안은, 말이야 번지르하게 ‘형제 국가’니 ‘피로 맺은 동맹국가’니 하면서 사실은 점령 군대와 피점령 국가나 다름없었던 것이다. 1966년에 지금의 치욕적인 협정이 체결된 것도 한국 여성들에 대한 주한미군의 잔인무도한 행태가 계속된 데 대해서 고려대학교를 비롯한 대학생들이 참다 못해 전국적 항의 데모를 벌여서 얻은 수확이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역대 정부와 정권을 쥐고 있는 극우·반공 주의의 개인과 권력 집단은 한마디 항의도 불평도 말해 본 일이 없다.
그들의 눈에는, 주한미군의 반인도적 범죄와 ‘대한민국’의 무권력 상태에 대한 비난이나 항의는 ‘용공’과 ‘반미(反美)’로 비쳤다. 그것은 바로 반공법과 국가보안법의 대상이었다. 그들은 모욕과 학대를 받기를 거부하는 자기 국민을 미국의 지배 체제 앞에 끌어내어 무릎을 꿇리는 행동으로 미국으로부터 정권을 보장받고 개인적 치부와 사회적 특권을 유지할 수 있었다. 이것이 한국 권력 집단의 본성이고 한·미 관계의 본질이다. 최근에 젊은 세대가 한·미 행정협정 개정을 요구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조선일보>를 선두로 하는 사대주의·극우·반공 주의자들이 또 ‘반미 감정 유발’이니 ‘국가 안보’니 ‘위기 조성’이니 하면서 입에 거품을 물고 매도하기에 여념이 없다. 멸시와 학대를 받지 않고서는 성적 만족을 느끼지 못하는 마조키스트들이다. 그러니 이 나라는 영원히 사디스트가 지배할 수밖에 없어 보인다. 아! 이 어찌 슬픈 일이 아닌가.

한양대 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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