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의 사회과학> 펴낸 최정운 교수
  • 박성준 기자 (snype00@sisapress.com)
  • 승인 1999.05.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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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진상 과학적으로 분석
80년 ‘5·18’이 터졌을 때 최정운 교수(서울대·외교학과)는 미국 시카고 대학에 입학 허가를 받아놓고 있었다. 최교수는 삼청교육대에 무고한 청년들이 끌려가고, 언론 통폐합으로 언론인들이 거리로 내쫓기는 소동이 한창일 때 ‘혼자 살기 위해 조국을 탈출하는 참담함’을 느끼며 유학길에 올랐다.

89년 귀국한 그는 이듬해 모교 강단에 섰고, 97년 한국정치학회 연구 이사 일을 맡았다. 이때 그는 ‘잊었던 5·18’과 다시 마주쳤다. 광주시청 요구에 따라, 선배 교수들의 강압으로 ‘차마 마주치고 싶지 않았던 현대사의 비극’ 5·18을 파들어가는 임무를 맡았던 것이다.

5·18 진상을 처음 과학적·체계적으로 분석한 보고서 〈오월의 사회과학〉(풀빛)은 이렇게 해서 탄생했다. 최교수는 책이 나오기까지 연구와 집필에 들인 만 2년을 “5·18 환자로 살았다”라고 말한다. 5·18은 현대사 최대의 분수령임에도 여전히 ‘소문에 둘러싸인 무인도’로 남아 그에게 ‘목숨을 건 탐험’을 강요했다.

탐험은 5·18에 관한 증언집·자료집 들을 샅샅이 훑는 데에서 출발했다. 최교수는 그 작업을 “혓바닥으로 시멘트를 핥는 작업이었다”라고 토로했다. 횟수를 거듭하면서 최교수는 책 속에 죽어 있던 문자들이 제 발로 일어나 5·18 진상을 전하는 일종의 ‘감동’을 맛보았다.

광주와는 아무런 연고도 없고 그 해 5월에도 광주에서 한참이나 비켜 서 있었던 최교수는 ‘5월 광주는 폭력과 공포, 분노와 사랑이 뒤범벅된 감정덩어리 그 자체’라고 말한다. 제3자가 아니면 광주에 대해 어떠한 논리적인 접근도, 설명도 불가능하다고 여긴 최교수는 자신이 확실한 제3자라는 점에 안도하며 담론 분석을 시도했다. 이를 통해 밝혀진 5월 광주는 밖으로는 군부와 처절히 투쟁하고, 안으로는 계급·가족·생명의 문제가 뒤엉켜 갈등을 겪다가 급속히 와해된 ‘절대 공동체의 한 유형’이었다. 그는 “바로 이 때문에 5·18이 정치적 민주주의는 물론 새로운 예술과 문화운동, 사회과학의 한 계기를 이루었다”라고 강조한다.

현대사 최대의 금기와 만 2년 동안 맞붙었던 최교수는, 한바탕 살풀이에 혼신의 힘을 다하다가 이제 막 ‘자진(自盡) 상태’에서 깨어난 무당처럼 지친 표정이다. 그 살풀이의 산물인 〈오월의 사회과학〉이, 이제까지 도저히 논리적으로 접근하기 어려웠던 5·18을 논리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한 계기가 되기를 기대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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