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과 북의 콤플렉스
  • 언론인 ()
  • 승인 2000.06.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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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북의 기자 ㄱ을 만난 것은 남북 이산가족 상봉과 예술단 교류가 성사되었던 1985년이었다. 쉐라톤 워커힐에서 열린 북한 대표단 환영 만찬에 참석한 ㄱ은 수행 기자의 한 사람으로서 그쪽 언론계의 간부였다. 당시 신문사 편집국장이던 나는 자연히 그와 한 테이블에 동석하게 되었다. 나와 ㄱ은 남북 문제 같은 것을 떠나서 언론에 관한 이야기와, 피차 다른 환경과 양식으로 살아가는 생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ㄱ은 남쪽 보도에 대해 불만을 터뜨리기도 하고, 자신들의 취재 편집 과정에 대해 기술적인 부분까지 소상하게 설명했다. 그는 왜 남쪽 기자들은 북쪽 기자들의 식사 이야기 같은 비생산적 내용을 보도하는 데 열을 올리느냐고 불만을 토로했다. 이쪽의 보도 양식에서 스케치나 에피소드는 관심과 흥미를 끄는 뉴스로 정형화(定型化)되어 있어 그렇다고 말했다. 서로 보도 문화의 차이가 있는 것 아니냐고 하니까 ㄱ은 불만의 핵심을 말했다. 그 보도는 자신들이 보기로는 남쪽이 잘산다는 우월감을 과시하기 위한 목적이 숨어 있다는 것이다. 무엇을 먹었다고 쓴 것까지는 좋은데 으레 허기진 사람이 그릇을 비우는 모습으로 초를 친다고 했다.
‘남쪽은 잘살고 북쪽은 못산다’식 보도에 저항감

화제가 기자들의 사는 모습으로 돌아가자 ㄱ은 자기가 30평짜리 아파트에 살고, 일이 끝나 집에 돌아가면 냉장고에서 맥주를 꺼내 마신다고 했다. 청소년 문제가 사회의 걱정거리라고 하니까 자기네도 마찬가지라고 맞장구를 쳤다. 남쪽에는 도둑도 많고 암표상도 많다고 하니까, 북쪽에도 도둑은 있으며 암표상은 없지만 뒷구멍으로 표 빼돌리는 일은 있다고 했다.

이런 저런 화제를 주고받다 보니 한 가지 느낌이 있었다. 그것이 교육된 것인지 사회 풍토에서 자생한 것인지 확인할 길은 없으나 자존심 하나만은 알아주어야 하겠구나 하는 점이다. 못살아도 ‘우리는 우리 식’이라든가, 사람 사는 세상의 모습은 북쪽이라고 해서 별난 것이 아니라는 기조가 ㄱ의 말 속에는 항시 깔려 있었다.

그 후 언제인가 나는 납북되었다 돌아온 신상옥·최은희 부부가 김정일을 만나 대화한 녹음 기록을 들은 적이 있다. 김정일은 이 대화에서 키가 작고 아랫배가 나온 자신의 모습을 비하하는 말도 서슴지 않고, 자기가 나타나면 열광하는 북쪽 사람들의 환호가 진심에서 하는 것이 아님을 알고 있다고도 했다. 당시 북한의 제2인자로 거침없이 표현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고 은밀하게 대담하는 자리이니 그렇게 말했으리라 싶었다. 여기서 내 나름으로 짚어낼 수 있는 것은, 그에게 인페리어리티 콤플렉스(Inferiority Complex)가 잠재해 있다는 추리였다. 자존심과 열등 의식의 기묘한 조합. 이것을 이해하는 일이야말로 북한과 공생할 길을 찾는 데 중요한 요소가 되지 않을까.

우리는 융합할 수 없는 인간 관계라고 치부하고 아예 어떤 사람에게서 등을 돌리는 경우가 많다. 고집 세고 타협하지 않는 사람은 자기 도그마에 빠져 있는 탓도 있지만 열등 의식이 더욱 그를 그렇게 만드는 일이 많다. 외부와의 차단이라는 갑옷이 없으면 그의 사회적 생명력은 그나마 유지될 수 없다고 판단한다. 상대와 간극이 벌어질수록 자신은 흔들리지 않는다는 위장된 자존심으로 더욱 무장하게 된다. 그 사람이 보는 세상을 이해하는 자세가 대화나 행동으로 드러날 때에야 비로소 ‘자폐(自閉)의 문’은 조금씩 열리게 된다.

김대중 대통령이 곧 평양으로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나러 간다. 양측의 최고위 정치 지도자가 만난다는 형식만으로도 의미가 있다지만, 그쪽 사람이나 이쪽 사람이나 조금씩 생각을 바꾸는 변화의 계기가 되어야 뜻이 있다. 정치 지도자들이 악수를 해도 남과 북의 보통 사람들은 아직도 냉전의 끝자락에 매달려 있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수 차례 평양을 다녀온 ㄱ목사는 이렇게 말한다.

“왜 북쪽 사람들은 6·25를 북침이라고 생각하는가. 북의 보통 사람들이 이 전쟁을 처음으로 체험한 것은 남쪽의 진격으로 북이 초토화할 때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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