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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과 청년이 ‘통’하는 길

“청년들은 대학로에서 패스트푸드를 먹고 힙합을 춘다. 어르신들은 종묘공원에서 소주를 마시고 관광 댄스를 춘다. 대학로와 종묘공원은 지척에 있지만 두 곳의 문화 장벽은 두텁다. 두 세대는 소통하거나 교류하지

고미숙(문학 평론가) ㅣ 승인 2004.03.16(Tue)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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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로니에 공원, 젊음과 라이브, 그리고 패스트푸드. 서울 대학로 하면 떠오르는 낱말들의 집합이다. 그럼 종삼(종로 3가)은? 종묘공원, 노인들의 정치 토론, 재래 시장. 대충 이런 정도가 될 것이다. 대학로와 종삼은 인접해 있다. 혜화역에서 서울대병원을 넘어오면 창경궁이 나오고 그 건너편 종묘 담을 따라 나가면 종삼으로 이어진다. 이토록 가까운 거리에 있건만 둘 사이의 문화적 낙차는 매우 크다.

우연찮게도 나는 그 단층을 근거리에서 지켜볼 수 있었다. 내가 몸 담고 있는 ‘연구공간 수유+너머’가 지난해 7월, 3년 간의 대학로 생활을 접고 종묘 옆 원남동으로 옮기게 되었기 때문이다. 처음 현지 답사를 했을 때 종삼은 참, 촌스러웠다. 고궁 앞 공원을 가득 메운 노인들, 낡고 후줄그레한 건물들이 어설프게만 느껴졌다. 그간 대학로의 세련된 분위기에 상당히 길들여져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막상 옮겨와 보니 시각이 완전히 달라졌다. 조명·보석·홍삼 등 20세기 이전 조선의 풍경을 짐작케 해주는 상권이 남아 있을 뿐 아니라, 서울 시내를 온통 헤집어 놓고 있는 ‘리모델링 붐’에 휩쓸리지 않고 꿋꿋이 버티고 있는 뒷골목들은 마치 인디언의 ‘브리꼴라쥬’(현장에 있는 재료를 가지고 즉흥적으로 만드는 기법)마냥 흥미진진하다. 종묘의 중후한 나무들과 세운상가의 첨단 가구들이 서로 마주보고 있는 것도 특유의 분위기를 연출한다. 이를테면, 종삼은 ‘프리모던’과 ‘모던’이 울퉁불퉁 뒤섞여 있는 불균질한 공간인 셈이다.

대학로에서는 ‘뻔한 문화’만 즐길 수 있다

그런 시각에서 보면 대학로는 밋밋하기 짝이 없다. 거리의 대부분이 패스트푸드점과 카페 일색이어서 실제로 문화 공간들은 눈에 띄지도 않는다. 그런데도 나를 포함하여 모두들 그곳을 청년 문화의 거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은 것은, 청년 문화란 세련되고 소비적이라는 통념에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대학로에서 젊은이들이 즐길 수 있는 문화란 그야말로 ‘뻔하다’. 불량 식품의 대명사 격인 패스트푸드를 먹고 화려한 카페에서 데이트하고, 주말에 공원에서 힙합을 추는 것 정도가 고작이다.

참 안타까운 것은 종묘공원의 노인 문화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이다. 종묘공원에서 노인들이 즐기는 놀이는 소주 마시기나 ‘관광 댄스’가 거의 전부다. 종삼의 다양성이 노인들의 문화에는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새삼 우리 사회의 소비 풍조에 대해 열변을 토할 생각은 전혀 없다. 내가 환기하고자 하는 바는 두 세대의 문화가 동일한 패턴을 반복하고 있다는 데 있다. 역설적으로 바로 그렇기 때문에 두 세대간 장벽은 두터울 수밖에 없다. 이질적인 것을 받아들일 창구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베이징의 천단공원은 엄청난 규모로 유명하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태극권·검술·연날리기·제기차기 등 고난도의 무술과 다채로운 놀이를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이다. 거기에는 성별·세대별 간극이 없다. 노인의 지혜와 10대의 역동성이 자연스럽게 소통할 수 있는 까닭이다. 왜 우리에게는 이런 소통의 장이 없는 것일까? 왜 10대들은 힙합과 라이브에만 열광한다고 간주하는가? 10대에게도 요가와 명상, 독서 토론, 갖가지 동아리 활동이 얼마든지 가능하고, 또 필요하다. 노인들 역시 마찬가지다. 여생을 소모적 놀이로 보내기보다 초발심으로 돌아가 그림이나 악기를 직접 배우거나 그간 쌓은 지혜를 활용해 젊은이들과 접속을 시도하는 따위의 일을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이질적인 관계를 구성하고 일상을 다채롭게 변환하는 것, 문화란 무릇 그런 것이어야 한다. 대학로와 종삼, 아니 청년과 노인이 ‘통’하는 길은 그렇게 멀리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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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호부터 ‘문화비평’ 필자가 바뀝니다. 고미숙씨와 이재현씨(문학 평론가)가 격주로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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