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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50회 칸 영화제, 무엇을 남겼나

쉰 돌 맞은 칸 영화제, 지역 안배·구색 맞추기 등으로 빛 잃어

프랑스 칸·전찬일 (영화 평론가) ㅣ 승인 1997.05.29(Thu)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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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제50회 칸 영화제를 한마디로 결산한다면 ‘전례 없는 화려한 외양, 그러나 부실하기 짝이 없는 경쟁작들’이다. 이와 같은 총평은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다. 규모가 점차 커지면서, 칸 영화제의 질적 수준은 오히려 낮아졌다는 지적이 줄곧 있어 왔으니까.

더욱이 올해 칸 영화제는 영화제의 꽃인 경쟁 부문 진출작 스물한 편의 수준이 유독 낮았다는 것이 많은 이들의 공통된 견해였다. 세계 영화의 흐름을 선도하고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영화제치고는 너무나도 평범한, 아니 초라한 면모였다.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체리 맛>과 이마무라 쇼헤이의 <뱀장어>가 황금종려상 공동 수상이라는 전혀 예상 밖의 결과(오른쪽 상자 기사 참조)가 발표될 때까지도, 과연 어느 작품이 영예의 황금종려상을 거머쥘지 예측 불허였던 것은 당연했다. 경쟁이 치열해서가 아니라 두드러지는 작품이 없어서였다. <비밀과 거짓말>과 <브레이킹 더 웨이브>로 일찌감치 대세가 결정되었던 지난해와는 퍽 대조적이었다.

50회 축전에 빠지지 않기 위해 프랑스의 조그만 해변 마을로 모여든 스타들의 면면만 보아도 올해 칸 영화제의 위용은 대단한 것이었다. 로버트 드 니로, 실베스터 스탤론, 제레미 아이언즈, 로렌 바콜, 시고니 위버, 안젤리카 휴스턴, 제라르 드파르디유, 휴 그랜트,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지나 데이비스….

역대 황금종려상 수상자들에 의해 ‘황금종려상 중의 황금종려상’으로 선정되었으면서도 딸을 대신 참석케 한 잉그마르 베리만과 달리 거동이 불편한 노구를 이끌고 무대에 선 거장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욕망>),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지옥의 묵시록>), 마틴 스콜세지(<택시 드라이버>), 클로드 를루슈(<남과 여>), 로버트 앨트먼(), 코엔 형제(<바톤 핑크>), 스티븐 소더버그(<섹스 거짓말 그리고 비디오 테이프>), 코스타 가브라스(<미싱>), 에미르 쿠스트리차(<언더그라운드>), 빔 벤더스(<파리 텍사스>), 타비아니 형제(<파드레, 파드로네>), 그리고 마이크 리(<비밀과 거짓말>)…. 이쯤 되면 꿈의 이벤트라 할 만하다.

칸 영화제가 독립 영화나 예술성 짙은 영화들의 아담한 잔치가 아니라, 명실상부한 전세계 영화인들의 대축전임을 확인시켜 준 하이라이트라 할 만하다. “나는 역사를 보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자 눈에 눈물이 고였다. 이와 같은 밤은 다시는 없을 것이다”라며 감격한 미국의 영화 평론가 로저 에버트의 심정이 어디 그만의 것이랴. 오죽하면 <미션>으로 86년도 황금종려상을 받은 롤랑 조페는 그들과 함께 무대에 서 있다는 사실 자체가 믿기지 않았다고 말했겠는가.
감독 명성에 기대 시상하기도

이처럼 뜻깊고 그 어느 때보다도 알찼어야 할 영화제의 작품들이 부실했다는 사실은 유감스런 일임에 틀림없다. 그럼 왜 그런 일이 일어난 것일까. 우선은 공감과 감동을 불러일으키면서 일정한 수준을 갖춘 영화를 만들기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꼽을 수 있다. 아울러 베를린 영화제 등의 출품을 통해 이미 상당수 작품이 제외된 상황에서 적절한 대상작들을 골라내는 것이 얼마나 힘든 작업이겠는가도 짐작이 간다. 그러나 그보다는 다른 데서 그 이유가 발견된다. 철저한 지역 안배와 구색 맞추기, 만든 이들의 명성에 대한 지나친 집착.

칸 영화제는 특히 90년대 들어 더욱 세계화하고 비대해지면서 그런 성향을 강화시켜 왔다. 경쟁작 선정이나 수상 내역에서 그것이 절정에 달한 것으로 보인다. 애당초 경쟁작 상영 일정에 없었지만 영화제가 시작된 직후 포함된 키아로스타미의 <체리 맛>이 좋은 예다. 장이모의 <킵쿨> 출품이 좌절되어 심사가 불편했을 집행부로서는 세계에서 가장 새로운 영화를 만든다는 키아로스타미가 대안이 되기에 충분했다. 이란이라는 지역성과 감독의 명성, 작품이 어지간만 하면 성의를 보아서라도 맨손으로 보내지는 않을 것이라는 예상이 있었는데, 황금종려상이라는 대어를 건넨 것이다.

한국 영화 경쟁 부문 진출 못하는 것은 당연

유세프 샤힌의 <운명>(이집트)을 비경쟁에서 경쟁 부문으로 바꾼 것이나, 여전히 유럽과 북미 중심이기는 하지만 아프리카(이드리사 우에드라오고 <키니와 아담스>, 일본(이마무라 쇼헤이 <뱀장어>), 홍콩(왕가위 <해피 투게더>), 호주(사만다 랑 <더 웰>) 등의 작품들을 배치한 데서도 칸 특유의 성향이 잘 드러난다.

칸만이 아니라 어느 영화제건 주된 방향성이 있으므로 안배와 감독의 명성 따위를 준거로 작품을 선정하고 상을 주었다고 시비를 걸고, 그 때문에 이번 칸 영화제가 실망을 안겨주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무리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로 인해 적합한 수준을 지니지 못한 작품들이 경쟁 부문에 대거 포진한 것 또한 엄연한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들이 저들이 인심 써서 한두 편씩 뽑아준 비서구 지역의 영화만을 가리키는 것은 아님을 새삼 강조해야겠다. 영화 선진국이라는 나라들의 작품들 역시 실망스럽기는 매한가지니까. 수상 내역을 보면 올 칸 영화제는 비서구 영화의 승리가 단연 돋보인다.
안배와 구색, 감독의 명성 문제를 물고늘어지는 까닭은 주목되고 널리 소개할 만한 좋은 작품들이 그로 인해 사장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설사 영화가 서구에서 발생했고 그곳을 중심으로 발전되어 왔지만, 자기들 나라 작품들은 미리 넉넉히 선정해놓고 비서구 지역에 적선을 베풀 듯이 한두 편씩 배정하는 처사가 못마땅해서이다.

올해의 경쟁작 목록만 보아도 그렇다. 프리미엄을 인정한다손 치더라도, 명색이 국제 영화제라면서 자국 프랑스 영화를 세 편(<웨스턴> <금지된 여인> <암살자>)이나 내세운 것은 공평한 처사라 보고 싶지 않다.

문득, 한국 영화가 50회 동안 칸 영화제 경쟁 부문에 한 번도 진출하지 못한 것이, 부끄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당연했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어인 일일까. 한국에는 이마무라 쇼헤이나 장이모, 첸 카이거 같은 세계적 감독도 없고, 안배 면에서도 일본과 중국 다음 아니던가. 국제 정치·경제 측면에서처럼 말이다.

물론 뛰어난 한국 영화가 많았는데도 칸이 일부러 외면했다는 의미는 아니다. 설사 칸 경쟁 부문에 진입하고 더 나아가 수상 가능성이 있는 훌륭한 작품이 있다손 치더라도 현상태로서는 그것이 실현될 확률이 매우 희박하다는 사실을 말하고자 함이다. 개별 작품의 수준을 높이려는 노력 못지 않게 한국 영화의 존재를 알리려는 체계적이고 정책적인 노력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그를 위해서는 영화를 상품은 물론 문화 자산으로 보는 시각 교정도 이루어져야 한다. 아울러 좀더 단계적인 접근이 필요할 듯하다. 한국 영화의 위상이 거의 알려져 있지 않은 상태에서 단번에 경쟁작에 뽑히겠다는 야심보다는 한걸음씩 위로 올라가겠다는 소박함이 더 소중하다고나 할까. 그와 같은 일을 수행할 재목을 장기적으로 키우는 일 또한 무엇보다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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