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바로가기 본문바로가기
메뉴열기

시사저널

[영화평]인생

장이모 감독의 <인생>/두 남녀의 파란만장한 삶 담담히 표현

李世龍 (영화 평론가) ㅣ 승인 1995.06.08(Thu) 00:00:00

0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스토리 밴드 link

탁월한 형식주의 미학자 장 이모의 <인생>은 40년대부터 70년대까지 40년 동안에 일어난 사건들을 그려낸다.

중국 현대사 40년에 걸친 격동의 시기를 다룬 점에서 <인생>은 첸 카이거의 <패왕별희>와 시대 배경이 일치한다. 또한 <패왕별희>의 두 주인공이 ‘경극’배우이듯 <인생>의 남자 주인공 부귀도 처음엔 ‘그림자 연극(皮影)’을 공연한다. 중국의 전통 예술이 등장한다는 공통점에도 불구하고 <인생>은 보통 사람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인생사에 초점을 맞추었다는 점에서 <패왕별희>와는 다르다.

이 영화 속의 보통 사람들은 정치적 물결이 흐름을 바꿀 때마다 그 소용돌이에 휘말려 중심을 잡지 못하는 중국의 인민들이다. 따라서 주인공 부귀의 가족은 중국 인민을 대표하는 한 가족이 될 터인데, 이들 역시 온탕과 냉탕을 번갈아 드나들다 지친 사람처럼 피로하다.

영화가 시작되면 떠들썩한 유흥장이 보이고 노름하는 부귀(갈우)의 거드름 피우는 꼴이 우습다. 부귀는 대부호의 자제이다. 그러나 노름에 눈이 멀어 집을 날리는 통에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아내 가진(공리)은 친정으로 가버린다. 부귀는 살려고 몸부림치지만 입에 풀칠하기도 어렵다. 그러던 얼마 후 아내가 돌아오자 용기를 얻은 부귀는 노름판에서 귀동냥으로 익힌 ‘그림자 연극’도구를 빌려 순회 공연을 떠난다.

어느날 공연 도중 갑자기 들이닥친 국민당 군인들이 부귀와 그의 동료 춘생을 전쟁터로 끌고 가자, 집에 기별도 못하고 징집된 부귀는 무엇 때문에 전쟁을 하는지 영문도 모른 채 그림자 연극으로 군인들을 위문한다.

갈우, 코미디와 비극 기막히게 표현

공산군이 승리하고 부귀는 고향으로 돌아오지만, 인민공화국의 지주 계급 심판으로 인심이 흉흉하다. 부귀는 노름빚 대신 자신의 집을 차지했던 사람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는 모습을 보고 목을 움츠린다. 부귀는 이 ‘상전벽해’의 세월을 낮은 포복으로 통과하는데, 아내와 함께 두 아이를 키우며 온갖 수모를 감내한다.

영화 <인생>은 정치 이데올로기가 널뛰는 마당에서 삶이란 도대체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가를 성찰한다. 인생이란 어떤 것인지를 탐구하기 위해 장이모는 중국 사람들의 파란만장한 삶을 깊이 파고든다. 결론은 부귀가 자식들한테 들려주는 이야기 “병아리는 커서 거위가 되고, 거위가 크면 양이 되고, 양은 마침내 황소가 된다”는 교훈적인 비유로 요약되는데, 소박한 희망이 이루어지기를 염원하는 이 끈기는 단순한 인내라기보다 난세를 극복하는 참을성으로서, 중국인의 지혜라 불러 마땅하다.

<인생>의 뛰어난 점은, 이 과정의 풍부한 삽화를 실감나게 그려내고 있다는 점이다. 질식할 듯한 환경과 흔들리는 마음, 옳고 그른 것에 대한 모호한 기준 때문에 고통 받는 민중에 대한 우울한 묘사가 유머를 도입함으로써 인상적인 인물들을 만들어낸다. 부귀가 패가망신한 전후의 상황 설명이나, 뒤바뀐 신분 때문에 목숨을 구하는 아이러니, 극단에서 낙오한 춘생이 공산당 간부가 되어 부귀 가족을 돕다가 부귀의 아들을 치어 죽이는 대목의 구성과 디테일 묘사는 잔잔하지만 설득력을 갖는다.

철저하게 깨닫고 느낀 사건들을 이야기 형식으로 전달하는 <인생>은 어느 한 사건을 강조하거나 아름답게 치장하지 않으며, 편견을 드러내거나 감상에 빠지는 법이 없이 담담하게 전개된다.

목청을 높여 설교하지 않아도 이 작품은 이데올로기 추종자들이 보여주는 맹신과 신념을 꼬집는다. 시류에 편승하는 약삭빠른 인심에 대항하여 악착스럽게 참고 견디는 갈우의 부귀역 연기는 코미디에서 비극까지 자유자재로 왕래하며 기쁨과 슬픔, 절망과 희망의 표정을 기막히게 표현한다.

전체댓글0

0 /150
  • 최신글
  • 공감 순
  • 비공감 순
더보기

TOP STORIES

갤러리 > 포토뉴스 2018.11.14 Wed
[포토뉴스] 증선위 '삼성바이오로직스 고의 분식회계 결론'
Culture > LIFE 2018.11.14 Wed
[인터뷰] 문채원, 《계룡선녀전》의 엉뚱발랄 선녀로 돌아오다
국제 2018.11.14 Wed
환경 개선 위해 시멘트 뒤집어쓴 프랑스 파리
경제 2018.11.14 Wed
“당 줄여 건강 챙기자” 헬스케어 팔걷은 프랜차이즈
한반도 2018.11.14 Wed
“비핵화, 이제 입구에 막 들어섰을 뿐”
지역 > 영남 2018.11.14 Wed
박종훈 교육감 “대입제도 개선 핵심은 고교 교육 정상화”
Health > LIFE 2018.11.14 Wed
감기로 오인하기 쉬운 ‘폐렴’, 사망률 4위
경제 > 한반도 2018.11.14 Wed
[르포] 폐허에서 번영으로, 독일 실리콘밸리 드레스덴
정치 2018.11.14 Wed
LIFE > Health 2018.11.14 수
비행기 타는 ‘위험한 모험’에 내몰린 뇌전증 환자들
경제 2018.11.14 수
[시끌시끌 SNS] 삼성, 휴대폰 이제 접는다
정치 2018.11.14 수
[차별금지법①] 국회 문턱 못 넘는 ‘차별받지 않을 권리’
정치 2018.11.14 수
[차별금지법②] 금태섭 “동성애 반대는 표현의 자유 영역 아니다”
정치 2018.11.14 수
[차별금지법③] 이언주 “차별금지법은 반대의견 금지법”
사회 2018.11.14 수
이중근 부영 회장 징역 5년…또 ‘2심 집유’ 수순일까
LIFE > 연재 > Culture > 노혜경의 시시한 페미니즘 2018.11.14 수
남자도 총리가 될 수 있나요?
OPINION 2018.11.14 수
[시론] 책,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어야 하나요?
LIFE > Health 2018.11.14 수
[치매①] 우리 엄마가 혹시 치매? 어쩌지?
갤러리 > 사회 > 포토뉴스 2018.11.13 화
[포토뉴스]
LIFE > Sports 2018.11.13 화
‘장현수 사태’ 후폭풍, 대안 찾기 나선 벤투
사회 2018.11.13 화
[시사픽업] 분노사회, ‘괴물’이 익숙해졌다
리스트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