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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곤층을 돌아보자

“소외 받고 빈곤한 계층을 외면한, 가진 자들의 잔치가 성행한 사회는 역사상 오래 가지 못했다.”

許信行 객원편집위원(강원대 교수·응용경제학) ㅣ 승인 1995.05.11(Thu)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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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함을 꽉 채운 우편물의 홍수 속에는 간혹 반가운 주변 소식도 들어 있지만 대부분 보잘것없는 광고물과 갖가지 고지서들이다. 사람들이 먹고 살 만해지고 사회 활동이 많아짐에 따라 이런저런 모임들이 부쩍 늘어났으며, 그에 따른 회비 통지서가 거의 매일 한통씩 날아든다.

출신 지역의 향우회 모임, 그것도 면 단위부터 시작하여 시·군·도 행정 단계별 향우회와, 초·중·고등학교·대학·대학원의 동창회는 물론, 옛 직장 동료들과의 주기적인 만남은 일정한 회비와 찬조금을 요구한다.

사회 생활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클럽 및 친목 단체도 일정한 회비와 후원금을 거둬들이기는 마찬가지다. 여기에 시도 때도 없이 나가는 경조비와 교회의 십일조, 사찰의 불사(佛事) 동참, 정치인들의 후원금 따위를 모두 합치면 매월 나가는 돈이 생활비를 초과할 때가 많다.

복잡한 사회 생활에서 이웃들과 화목하게 더불어 살아가기 위해서는 간접세적인 이런 비용을 지출하는 일은 어쩌면 당연하고 필요하다. 그러나 최소한의 비용을 벗어나 생활에 위협을 주리만큼 과다 지출하거나, 여유를 가진 사람들끼리의 ‘놀자판 잔치’가 되면 심각한 사회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생활보호 대상자 2백만명 가운데 40만명 ‘혜택’

우리 주변에는 단돈 몇푼이 없어서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고통 받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지난 3월8일 행상 장애인 최정환씨(37)는 유일한 생명줄인 음악 테이프 판매대를 압수 당한 데 항의하여 서초구청에서 시너를 머리부터 뒤집어쓴 뒤 라이터를 꺼내 불을 붙였다. 이런 장애인 수는 정부의 어림짐작 통계로 96만명, 전체 인구의 2.2%에 해당한다. 그러나 장애인 단체나 연구소는 세계보건기구(WHO)의 기준에 의거해 10%는 족히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들을 위한 종합적인 복지예산이라고 해봐야 고작 1천8백92억원(94년)이다.

가정과 사회로부터 내팽개쳐진 부랑인의 숫자는 또 얼마나 되는가. 부랑인 보호시설에 입소하는 사람들의 숫자가 연 만명을 넘는다. 그러나 그곳 역시 시설지원비는 150억원에 지나지 않는다.

지난 3월 중순, 가난 때문에 시어머니를 멀리 내다버려야 했던 어느 며느리의 현대판 고려장 이야기가 우리 모두에게 아픔을 준 적이 있다. 이런 생활보호 대상자가 통계상으로도 2백만명이 넘는다. 이 가운데 정부의 지원을 받는 사람은 40만명, 이들에게 지급되는 생활보조비는 하루 평균 2천5백원(주·부식비, 연료비, 피복비, 장의비 포함)밖에 되지 않는다.

이웃들에게 동정과 아픔을 사면서 사회의 도움을 절박하게 필요로 하는 소년·소녀 가장 세대만 하더라도 7천5백 세대에 이른다. 이밖에도 고아원과 양로원 등에서 추위에 떨고 배고파 하는 우리 이웃이 얼마나 많은가를 생각해보면, 사회보장정책과 여유 있는 사람들의 씀씀이가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지 자명해진다.

‘여유층의 잔치’ 사회복지로 돌려야

선진국은 사회보장비가 GDP의 10% 이상 차지하는 데 비해 한국은 2%가 못된다. 물론 한국은 아직 복지 선진국 대열에 진입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남북 대치 상태에서 막대한 국방비 부담까지 안고 있기에 한꺼번에 사회보장 예산 증액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렇기에 뜻있는 사람들의 관심은 어떻게 하면 ‘여유층의 잔치’를 사회복지 쪽으로 돌릴 수 있을까에 모아지게 된다. 각종 모임에 집중되는 회비나 찬조금, 경조비 등은 이타적이라기보다 다분히 이기적인 동기에서 비롯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사회 정의 실현이라는 차원에서 볼 때, 그늘진 사각지대와 소외 당하고 고통 받는 이웃들을 이토록 많이 두고 호화스러운 각종 기념관과 기념비 건립, 다양하고 빈번한 친목회와 야유회, 권력층 및 부유층의 흥청거리는 관혼상제, 종교 집단과 정치권의 모금 운동을 벌일 때가 아닌 것 같다.

빈부의 격차와 사회공동체 의식 결여, 개인주의 사고 만연은 국가와 민족의 일체감을 깨는 독소이다. 소외 받고 빈곤한 계층을 외면한, 가진 자들의 잔치가 성행하는 사회가 역사상 오래가지 못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지난 30여 년에 걸친 지속적인 경제성장으로 이제 선진국의 문턱에 섰고, 또 어느 정도 여유를 가진 사람과 그러한 사람들의 모임들이 날로 늘어나는 지금, 이타적인 이웃돕기 운동이 대대적으로 확산될 필요가 있다. 정부는 분배구조를 과감하게 개선하고, 직·간접세 비율을 조정하며, 토지공개념 도입과 함께 완전한 종합과세를 실현하는 등 빈부 격차를 줄이고 사회보장제도를 확대 강화해 국민 모두가 고르게 잘살 수 있도록 복지 국가 건설에 매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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