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의 바퀴는 무엇으로 구르는가
  • <시사저널> 편집장 직무대행 ()
  • 승인 1999.08.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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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국민소득 1만2천 달러, 일자리 2백만 개를 창출해 완전 고용 달성, 주택보급률 100% 따위 아름다운 말들은 역대 정부의 실패한 청사진들을 총동원한 느낌이다.”
개혁이라는 이름의 수레는 두 개의 바퀴로 굴러간다. 낭만주의적 꿈과 열정이 그 하나라면, 다른 하나는 현실주의라는 이름의 세속적 바퀴이다. 두 개의 바퀴가 모순과 갈등의 관계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그 둘은 한 개의 굴대에 연결되어 서로에게 동력을 제공한다. 만약 둘 사이의 균형이 무너져서, 가령 꿈의 바퀴가 지나치게 크면 그 개혁은 공허한 관념과 구호의 원둘레를 무한정 맴돌 것이다. 반대로 현실에 너무 집착할 경우 타협의 진창에 빠져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 채 헛돌 뿐이다.

김대중 대통령의 8·15 경축사에는 개혁에 대한 그의 집념과 열정이 듬뿍 담겨 있다. 그는 지금의 정치가 나라 발전을 선도하기는커녕 오히려 발목을 잡고 있다며 정치 개혁을 부르짖었다. 재벌 해체라는 과격한 표현을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이제는 시장이 재벌 구조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말로 사실상 재벌 시대 종언을 선언했다.

8·15 경축사의 핵심어는 무어니 무어니 해도 ‘중산층’이다. 김대통령은 중산층 중심으로 경제를 바로잡고, 중산층과 서민 중심으로 개혁적인 국민 정당을 창당하겠다고 선언했다. 공평 과세·부패 척결·복지 강화 등도 결국은 중산층 시대를 열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말이다.

이렇게 볼 때 김대통령은 이제 비로소 ‘방황’을 끝내고 제 색깔을 찾은 것 같다. 그의 정치 기반은 역시 중산층과 서민이고, 기나긴 세월을 준비해 온 경제 철학도 DJ노믹스라 불리는 대중 참여 경제론이었다. 외환 위기 이후 수백만 실업자가 거리로 내몰린 한국 상황이야 새삼스럽게 말할 나위가 없지만, 신자유주의 물결이 전세계를 뒤덮는 지금 빈부 격차는 날로 심해지고 있다. 그동안 자본주의 체제를 떠받쳐 온 중산층이 몰락하고 극소수 가진 자와 절대 다수 빈곤층이 양극화하는 현실을 볼 때 중산층 중심 사회를 건설하겠다는 정책 방향은 급진주의자도, 그렇다고 극우 보수주의자도 아닌 김대통령이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이다.

그러나 개혁을 향해 굴러가는 또 다른 바퀴의 현실은 어떠한가. 한 예로, 재벌은 온갖 특혜와 편법에 기대어 몸집을 불려 왔고, 한국 경제는 그에 대한 대가를 혹독하게 치르고 있다. 정부가 개혁 칼날을 들이댈 때마다 국민 경제를 볼모 삼아 거칠게 저항해 온 재벌을 죄는 개혁의 고삐는 더 늦출 수 없다. 다만 ‘재벌 집단’이 아닌 ‘개별 기업’으로서 세계 초일류 기업과 경쟁할 수 있는 기업이 과연 몇이나 될까 하는 현실적 문제를 새삼스럽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DJ의 ‘국민 정당’이 정치 개혁 돌파구 될까

또 하나, 어차피 사회 전반에 대한 구조적 모순을 척결할 의지를 명확히 밝힌 마당에, 자영업자들의 관행화한 탈세 등 중산층의 도덕적 해이 문제도 명확하게 짚을 필요가 있었다. 재벌·금융기관·고위 관료 등 이른바 가진 자들의 도덕적 해이가 한국 경제를 병들게 하고 사회 윤리를 무너뜨렸다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우리 사회가 그동안 큰 범죄에 손가락질하면서 작은 범죄를 눈 감아 주고 면죄부를 발행했던 것은 아닐까. 중산층 중심의 사회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 중산층의 확고한 도덕성일 텐데, 그것은 중산층 시대 선언문이 아니라, 모든 인간이 갖고 있는 이기심과의 갈등과 충돌 속에서 성취되는 것이다.

게다가 2002년 국민소득 1만2천 달러, 일자리 2백만개를 창출해 완전 고용 달성, 주택보급률 100% 따위 아름다운 말들은 역대 정부의 실패한 청사진들을 총동원한 느낌이다.

정말로 이해할 수 없는 것은,경축사에 등장할 말인지도 아리송한 신당 창당론이다. 지난 1년 6개월간 정치다운 정치를 보여준 적이 없는 정치권이 과연 ‘말인즉슨 옳은’정치 개혁을 받아들일 태세를 갖추고 있는지부터가 의문이고, 이런 상황에서 김대통령이 구상하는 ‘국민 정당’이 진정한 정치 개혁의 돌파구가 되리라고 믿기도 쉽지 않다.

여기서 잡설 한마디. 기차 바퀴와 철로 사이에 마찰이 없다면 기차는 쓸데없는 마찰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고 달릴 수 있다. 그러나 마찰력이 없다면 헛바퀴만 돌 뿐 기차는 출발하지 못한다. 개혁도 마찬가지다. 현실과 맞부딪쳐 싸우지 않으면 쟁취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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