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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탐나는 결실 맺은 ‘탐라 영화제’

제주 아·태 영화제 ‘성황’…아시아 문화 정체성과 미래 모색 ‘큰 성과’

제주·宋 기자 ㅣ 승인 1997.10.23(Thu)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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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서 열린 제42회 아시아·태평양 영화제(10월6∼9일)가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아·태 영화제는 여느 국제 영화제와 다른 독특한 면모를 자랑한다. 흔히 7∼10일 동안 진행되는 다른 국제 영화제들에 비해 일정이 짧은 경쟁 영화제이면서도 나라간 영화 교류 측면에서 특히 강한 면모를 보여준다. 그 비결은 이 영화제가 회원국 중심으로 운영되는 데 있다.

54년 한국·일본·대만·인도네시아 등 아홉 회원국이 도쿄에 모여 첫 대회를 연 이래, 해마다 개최지를 바꿔 가면서 발자취를 이어온 이 잔치는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최고의 역사를 자랑하는 영화제로 성장했다. 83년 회원국이 열넷으로 늘었고, 올해는 북한·중국·러시아까지 옵서버로 참가할 예정이었다(세 나라는 참가하지 않았다).

올해 행사도 회원국 간의 영화 협력 증진을 염두에 둔 흔적이 역력했다. 특히 개막식을 앞두고 6시간 동안 진행된 ‘아·태 지역 영상 시장 권역화 관련 국제 세미나’에서 영화 교류·협력 문제가 집중 논의되었다. 일본의 영화 평론가 사토 다다오씨는 아·태 지역 영화인이 협력할 필요성을 설득력 있게 피력했다. 유럽이 할리우드에 대항하기 위해 공동 출자하고 배급망을 연합해 공동 시장을 만들려고 하는 것이 좋은 예다. 예컨대 공동 출자한 나라는 그만큼 영화 상영과 수입 면에서 주체적으로 넓은 시장을 갖게 되리라는 것이다.
“아·태 지역을 하나의 영화 권역으로 묶자”

유럽에 비해 아·태 지역은 언어·종교·민족·문화·정치 체제·역사 경험 등에서 훨씬 이질적이다. 더구나 이 지역 관객들은 회원국의 영화보다 미국·유럽 영화를 몇 배나 많이 접하는 실정이다. 인접국의 문화를 이해하는 정도도 그만큼 떨어진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아·태 지역을 한 권역으로 묶을 필요가 있다. 공동 투자·배급, 기술 교류, 현지 촬영 지원, 시설과 장비 활용도 가능하다. 적당한 지역에 국제적 영화 도서관·영화 학교 등을 설립하여 공동 관리하는 방안도 유력하다. 자막은 공동 작업을 하면 기술 격차와 언어 장벽을 동시에 해결할 수 있다”라고 사토씨는 말했다.

대만의 리슁 리우 교수(차오양 대학·영화학)는 대만·중국·홍콩이 합작한 경험을 성공 사례로 들었다. 대만의 자본과 홍콩의 기술, 중국의 풍부한 영상 자원이 결합한 중국어권 영화는 80년대를 전후하여 전세계의 눈길을 모은 바 있다. 한국문화정책개발원 홍영준 책임연구원은 ‘아·태 영상산업 기금’을 설립하자고 제안했다. 제작·배급에서부터 교육·기술 개발·시설 확충에 이르기까지 각국 실정에 맞게 영화 환경을 점차 향상시키는 거시적 방안이라는 주장이다. ‘호주 영화·텔레비전·라디오 학교’(AFRTS)의 로드 비숍 교장은 이미 첨단 디지털 기술을 학습하는 교육 실정을 소개하며, 이를 공유할 방안을 모색하자고 제안했다.

인도영상자료원 원장을 지낸 P.K. 나이르씨는 아시아권 영화의 주체성 문제를 날카롭게 지적했다. 예컨대 장이모우 감독의 <붉은 수수밭>이나 첸카이거 감독의 <패왕별희>가 전통 문화를 영상에 옮김으로써 세계의 눈길을 모았다고 해서, 서양 관객의 이국적 취향을 의식하여 전통 문화를 과장하고 예쁘게만 포장하는 유행을 문화적 주체성이라고 볼 것인지, 저급한 상품화로 볼 것인지 재고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번 제주 영화제에 소개된 영화들에서 그 같은 기류가 적지 않게 감지되었다. <그런 인생> (대만)은 경극·한지 우산과 전통 양식의 배 등을 과도하게 필름에 담은 인상을 주었고, <장어>(일본)에서도 전통 배·절 풍경·무속·옛 장어잡이 기구 등이 요소요소에 등장했다.
진행 미숙·관객 서비스 부족 ‘옥에 티’

이번 영화제에서 주목할 또 다른 의의는 제주의 영화 발전에 미친 영향이다. 제주의 젊은 영화인들이 마련한 단편 영화제 ‘생각 속의 영화, 생각 밖의 영화’와 신문 자료를 통해 제주 영화 상영의 발자취를 되짚어 본 전시회 <뒤돌아 보는 아름다움>전이 그것이다(아래 상자 기사 참조). 영화 배우 출신 국회의원 신영균씨가 자비로 마련한 남제주 해변가의 ‘한국 영화 박물관’개막식도 영화제 행사 기간에 때를 맞추었다. 다만 호화로운 외양에 비해 내부 전시물이 미처 준비되지 못한 상태여서, 이 박물관이 어떤 역할을 하게 될지는 두고 볼 일이다.

아·태 영화제가 회원국 간의 우정을 도모하는 데 지나치게 신경을 쓴 나머지 영화제 본연의 빛이 바랜 점은 옥에 티로 지적될 부분이다. 안내 책자에서 오자가 자주 발견되고, 행사 기간이 서로 다르게 적혔는가 하면, 전야제가 취소되기도 했다. 개·폐막식 행사는 임의로 앞당겨 치러졌다. 시내 극장에서 상영된 영화의 자막이 모두 영어로 되어 있어 관객의 불만도 높았다.

제주에 이어 내년 영화제는 대만의 타이베이에서 열릴 예정이다. 공교롭게도 마지막 날 시상식에서 대만 영화가 최우수 작품상(창치융 감독의 <그런 인생>)을 비롯해 전체 18개 부문 가운데 6개 부문을 휩쓰는 강세를 보였다. <도망자를 위한 차차차>(왕차이셍 감독)는 촬영상·편집상·효과상을 받았다.

최우수 감독상은 <장어>를 출품한 일본의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에게 돌아갔다. 야쿠쇼 고지(일본·<장어>)가 남우 주연상을, 장만옥(대만·<첨밀밀>)이 여우 주연상을 받았고, 한국인으로서는 홍상수 감독(<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이 신인 감독상을, <학생부군신위>(박철수 감독)에서 열연한 김일우가 남우 조연상을 수상했다. 이번 영화제에는 아홉 나라에서 서른네 편이 출품되어 열띤 경쟁을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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