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가회동 빌라를 떠나려거든
  • 설호정(언론인) ()
  • 승인 2002.03.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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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의 가회동이 정치 기사에 오르내리고 있다. 한나라당 총재 이회창씨와 그 아들딸이 가회동의 경남빌라에 모여 사는 문제 때문이다.
가회동은 서울 사대문 안의 유서 깊은 동네가 개발 바람에 죄다 사라지고도 얼마 동안 조선 민가의 전통이랄까를 느끼게 하는 동네였다. 곧, 1994년에 한옥 보존 지구라는 딱지를 떼기 전까지는 좁은 골목들을 사이에 두고 오밀조밀한 한옥들이 제법 들어차 있었던 인간적인 동네였다.





가난한 선비들이 살았다는 남산 밑의 남촌에 견주어 사대부가 많이 살았던 가회동 일대는 북촌으로 불렸다. 그러나 사라지고 있는 가회동의 모습이 조선 시대의 것은 아니다. 1930년대에 일본인들의 조선 진출이 가속화해 서울의 주택난이 자심하자 총독부가 권문세가의 저택들이 들어섰던 땅을 잘게 쪼개 새로 작은 도시형 한옥 밀집 지역을 만든 것이다.


일흔 몇 평과 백 몇 평의 ‘현실적 괴리’


이회창씨 일가가 세 채를 빌려 살고 있다는 경남빌라는 가회동이 더는 한옥 동네로 남아 있지 않아도 되게 되었던 1990년대 후반에 지은 것이다. 말하자면 그 빌라는 가회동이 ‘새 양반들’의 비싼 동네가 될 것임을 선지한 건설업자의 히트 상품으로 알려졌다. 100평하고도 몇평이 덧붙었다는데, 이회창씨는 ‘알고보니’ 일흔몇 평 ‘밖에’ 안된다고 ‘해명’을 해서 조소를 받았다.

현실 감각이 떨어진다고 ‘밖에’ 해석할 길이 없는 이 ‘밖에’가 뜰도 없는 집이 100평이라는 데에 열을 받고 있던 사람들을 더 자극했던 것이다. 실평수로 공동 주택의 넓이를 얘기하는 사람을 이 야당 총재말고는 달리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집값을 실평수로 쳐서 받는 집장사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


지난 설날에 경남빌라로 오르는 가회동 언덕길이 승용차로 미어져서 인근에 사는 사람들이 불평했다는 소리를 들었다. 그 빌라 302호에 사는 이회창씨에게 세배 간 사람들 때문이었다. 이씨 쪽의 ‘공식 집계’에 따르면, 세배객이 천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가회동이 떠들썩했던 모양이다. 짐작컨대 이씨 가족들은 그 집이 좁다고 느꼈을 것이다. 실제로 집안에서까지 ‘교통 체증’이라 할 만한 사태가 벌어졌다고 알려졌다. 맞거나 안 맞거나 현재 권력과 향후 움켜쥘 것으로 스스로, 또 가까이서 전망하는 권력의 합산과 집의 넓이는 비례할지도 모른다.


그런 점에서 이씨는 솔직했다는 평가가 있기도 하다. 국민 감정이라는 것을 손에 안 잡히고 자의적인 추상 개념으로 받아들인 듯한 이런 선택은 한국 정치인에게서는 희귀한 일이 아니냐는 것이다. 그러나 그와 그 아들딸이 그 집을 빌려 쓰게 된 경로, 돈의 출처, 여러 조세적 조처들이 합법적이었느냐 하는 문제는 피해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대통령 자리를 바라보는 사람의 자기 관리라는 것이 매사 국민의 일반적 정서에 배치되지 않는 쪽으로 자기를 통제해 가는 것임을 모르고서야 어찌 정치적 역량을 가졌다 할 수 있는 것인지도 의문이다.


가회동의 그 집을 대통령 선거 전에 떠나지 싶다. 내년 세배객은 결과를 알 수 없는 선거 뒤인 내년에나 맞아야 할 터이니 이래저래 떠나도 될 듯하다. 살림이 아무리 여물었다손 치더라도 떠나자면 버리고 가야 할 짐이 남을 것이다. 더구나 세 집씩이나 움직인다면 버리는 짐이 제법 될 터이다.


그럴 때에 대비하여 미리 정보 하나 일러둔다. 가회동 경남빌라 그 아래쪽에 기부 문화를 확산하기 위해 세워진 공익적인 재단인 ‘아름다운 재단’의 작은 사무실이 있고, 그 안에 재활용품을 거두어서 파는 일에 발벗고 나선 귀한 일을 하는 부서가 있는 줄로 알고 있다. 거기서 번 돈은 다시 공익적인 일에 쓰임은 말할 것도 없다. 버릴 물건이 있으면 그 사무실에 연락하기 바란다.

인사성 밝은 장정 몇이 들이닥쳐 말끔히 거두어 가서 잘 손질한 뒤 잘 쓸 만한 임자를 찾아줄 것이다. 흰 고양이든 검은 고양이든 쥐만 잡으면 되니까 이회창 총재 일가가 쓰던 물건이라 해서 ‘정치적’으로 물리치지는 않을 것을 믿는다. 말썽 난 가회동 집에 살았던 뒤끝이 그렇게 마무리지어지면 모양이 괜찮지 않을까 싶어 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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