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령, 흡혈 박쥐는 굶주려 죽어가는 동료 박쥐에게 자신의 피를 토해 나누어 준다. 열대어 거피는 적이 나타나면, 잡아먹힐 위험이 훨씬 큰데도 불구하고 둘이 짝을 이루어 정찰에 나선다. 땅다람쥐도 적을 보면 희생양을 자처하고 경고음을 내질러 무리를 대피시킨다. 임팔라영양은 몸에 붙은 기생충을 서로 핥아서 털어내 준다.
그렇다면 문제는, 왜 그러느냐이다. ‘살아 남기 위해서’이다. 협동하는 동물만이 진화 과정에서 살아 남는다는 점에서 협동은 도덕적 미덕이 아니라 생존의 필수 조건이라는 것이다. 인간 세상과 마찬가지로, 속임수를 쓰거나 뺀질거리는 놈들도 있지만, 희생과 협동은 종(種)을 유지하고 번성하는 데 필수라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따라서 이유 없는 희생은 없다. 흡혈 박쥐는 이전에 비슷한 도움을 받았거나 같은 동굴에 살아 안면이 있는 박쥐들에게만 제 피를 나누어 주는 ‘선행’을 베푼다. 임팔라영양도 자기 몸을 닦아준 상대를 기억하며, 자기가 받은 횟수만큼만 다른 놈들에게 그대로 되돌려 준다.
저자는 이같은 동물들의 협동과 희생을 가족 역동성, 상호 호혜성, 이기적 팀워크, 집단적 이타심의 네 단계로 나누어 이야기하고 있다. 개인의 희생을 대가로 치러야 하는 협동 문제를 동물 세계를 빌려 이야기하는 이 책의 메시지는 물론 집단적 이타심을 지향한다. 진화론 관점에서 볼 때 종의 이익은 개체의 이익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작 내가, 종을 위해 내 이익을 포기해야 할 개체가 된다면? 저자의 대답은 없다.
인간에게서 동물을 발견하는 데스몬드 모리스의 <털 없는 원숭이>나 동물에게서 인간을 발견하는 제인 구달의 <희망의 근거> 같은 책을 읽은 이라면, 그래서 무언가 미진함을 느낀 독자라면, 충분히 매혹적인 읽을거리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