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의 행복추구권 빼앗지 말라?
  • 이명호(가톨릭대 강의전임 교수·<여성과 사회> 편집 ()
  • 승인 2004.11.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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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들의 행복 추구가 성매매 피해 여성들의 불행 위에서만 성립한다면 그들의 행복권은 인권의 이름으로 옹호될 수 없다. 그것은 피해자의 고통에 눈 감는 기만적 행복이자 인권에 대한 조롱이다.”
2004년 대한민국에서 가장 바쁜 기관을 꼽으라면 단연 헌법재판소와 국가인권위원회일 것이다. 헌법이 국가적 중대 사안의 방향을 결정하는 핵심 문건이 되면서 헌법에 대한 최종 해석권을 쥐고 있는 헌법재판소는 막강한 권력 기관으로 떠올랐고, 과거 독재 정권 하에서 철저히 유린당했던 인권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면서 국가인권위원회는 인권의 최후 보루가 되었다. 시민의 기본권이 법조문 속에 죽어 있지 않고 살아 있는 삶의 원리로 작용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이들 두 기관이 가장 바쁜 기관이 된 것은 분명 축하할 일이다. 하지만 이들을 이렇게 분주하게 만든 것 뒤에는 ‘권리’에 대한 우리 사회의 왜곡된 이해가 놓여 있다.

이 왜곡은 두 가지 방향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첫 번째는 관습에 호소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사회적 맥락과 절연된 보편 인권에 호소하는 것이다. 인권에 대한 호소는 무권리 상태에 놓여 있던 사회적 약자들이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주장하기 위해 제기하는 것이 보통인데, 현재 우리 사회에서는 사회적 강자들의 기득권 옹호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

헌법재판소가 관습 헌법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제기한 이후, 관습에 의거하여 자기 주장과 권리를 관철하려는 집단적 움직임들이 일고 있다. 호주제에 반대하는 유림은 ‘대한민국 수도는 서울이다’라는 관습보다 더 오래된 것이 ‘가족의 우두머리는 남자’라는 관습임을 주장한다. 또 성매매 알선 업자들은 ‘매춘이 인류 역사와 함께 시작된 가장 오래된 관습’이라고 주장하면서 ‘여성의 몸을 살 남성의 권리’를 옹호한다. 그러나 이들의 주장처럼 관습이 권리를 주장할 근거가 될 수 있는가? 관습은 흔히 사회 구성원 사이에서 합의를 획득한 관행으로 정의된다. 하지만 관습은 구성원 모두가 합의한 보편적 관점이라기보다 지배 집단의 이해 관계가 관철된 제한된 관점에 지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보편 인권에 기반을 둔 권리를 주장하는 것이 기득권 옹호로 전락하는 사례를 우리는 최근 남성들의 움직임에서 찾아볼 수 있다. 최근 한국남성협의회라는 단체는 성매매특별법이 ‘남성들에 대한 인권 침해뿐 아니라 생존권, 나아가 행복추구권까지 현저히 박탈하고 있다’며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서를 제출했다. 이들은 ‘성의 가치는 (개인이) 자율적으로 결정해야 하며, 국가 공권력이 개입해 해결할 문제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성 판매 여성들의 인권을 지키기 위해 만들어진 법이 성 구매 남성들의 인권에 위배된다고 고발당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성 판매 여성 인권과 성 구매 남성 인권이 충돌하면…

인간은 누구나 인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성 매매를 규제하는 것은 남성의 권리를 침해하는가? 성 판매 여성의 인권과 성 구매 남성의 인권이 충돌할 때 법정은 중립적 입장에서 판단을 내려야 하는가? 이런 물음들은 인권이 사회 관계로부터 절연된 추상적 개인들의 권리라는 전제를 깔고 있다. 하지만 개인들은 결코 불평등하게 구조화한 사회적 권력관계에서 벗어나 있지 않다. 따라서 인권에 대한 해석도 개인들이 놓여 있는 사회적 맥락을 고려하지 않고서는 접근할 수 없다.

성매매특별법이 남성의 인권을 침해한다고 국가인권위에 진정한 남성협의회는 성 매매가 개인들 간의 자율적 성관계가 아니라는 사실을 은폐하고 있다. 성 매매는 남녀 간의 자유로운 섹스가 아니다. 이 법은 섹스를 금지하고 있지 않다. 성 매매가 남성에게는 돈을 주고 여성의 몸을 사는 자유로운 상거래일지 모르지만, 성 판매 여성들에게는 몸을 팔지 않을 수 없는 현실적 조건과 신체적·정신적 피해를 수반하는 강제적 거래이다.

남성들의 행복 추구가 피해 여성들의 불행 위에서만 성립한다면 그들의 행복권은 인권의 이름으로 옹호될 수 없다. 그것은 피해자의 고통에 눈 감는 기만적 행복이자 인권에 대한 조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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