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우싱츠, 뭔가 보여주다
  • 김봉석 (영화 평론가) ()
  • 승인 2005.01.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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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룽(成龍)·저우룬파(周潤發)·리롄제(李連杰)에 이어 저우싱츠(周星馳) 천하가 도래할 수 있을까? 과거의 저우싱츠가 할리우드 박스오피스에 오를 수 없는 이유는 분명해 보였다. 저우싱츠는 ‘모레이타우’라 불리는 광둥어 말장난과 엽기적인 슬랩스틱으로 정상에 오른 코미디언이었다. ‘액션’이 약한 저우싱츠의 영화에 서양인들이 혹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축구를 소재로 삼은 <소림축구>에 이어, 중국 무협의 원류를 담은 <쿵푸 허슬>로 저우싱츠는 세계 제패를 노리고 있다. 한때 영화를 1년에 열 편이나 찍기도 했던 저우싱츠는, 청룽이 1년에 한 편씩 걸작을 내놓으며 힘을 키워간 것처럼, 천천히 공을 들여 대작을 만들어내며 월드 스타로 도약하고 있다.

<쿵푸 허슬>은 1940~1950년대 스타일의 전통적인 무협 영화다. 동네에서 돈이나 뜯던 심약한 건달이 우연히 빈민가인 돼지촌에서 막강 갱단 도끼단과 싸움을 일으킨다. 문제는 돼지촌에 무림의 세 고수가 은거하고 있었던 것. 체면이 상한 도끼단 보스는 강호 최고의 킬러를 초빙하고, 점점 더 센 고수가 등장해 대결을 벌이면서 영화는 클라이맥스로 향한다.

세계 시장 장악, ‘꿈’은 이루어진다

<쿵푸 허슬>은 무협지의 전통적인 스토리 구성을 그대로 따른다. 저우싱츠는 처음부터 등장하는 고수가 아니다. 사악한 길로 접어들었다가, 마음을 바로잡게 되자 몸 안의 기혈이 뚫리고 천하의 고수가 되어 악당을 물리친다. 권선징악의 뻔한 교훈이지만, 저우싱츠의 영화에서 그려지는 약자, 빈자의 승리는 감동적이다.

<쿵푸 허슬>에서 돋보이는 부분은 전작 <소림축구>처럼 특수 효과다. 컬럼비아 영화사가 돈을 댄 것에서 보이듯, <쿵푸 허슬>은 세계 시장을 목표로 만들어졌다. 리샤오룽(李小龍)과 찰리 채플린을 존경한다는 저우싱츠는 두 우상의 액션과 코미디를 <쿵푸 허슬>에서 재현한다. 무협으로 서양 관객을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뭔가 새로운 장면이 있어야 한다. <매트릭스>와 <킬빌>의 위안허핑(袁和平)이 무술감독을 맡은 <쿵푸 허슬>은 태극권·영춘권·오랑팔괘곤 등 전통적인 무술은 물론 합마공과 여래신장 등 무협지에 등장하는 비급을 연속으로 펼쳐 시각적 즐거움을 준다.

저우싱츠가 리롄제 같은 무술의 고수는 아니지만, 특수 효과로 보완된 <쿵푸 허슬>의 액션 장면은 호쾌한 즐거움을 안겨준다. 특수 효과로 액션의 묘미를 반감시킨 <풍운>과 달리, <쿵푸 허슬>의 특수 효과는 액션 장면의 리얼함을 배가시킨다. 여기에다 할리우드 영화의 패러디를 적극 활용한다. <스파이더맨>에 나온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뒤따른다’는 대사나 <샤이닝>의 피가 쏟아지는 복도, <반지의 제왕>과 <포레스트 검프> 등이 패러디되고, 워너 애니메이션의 캐릭터인 로드러너와 코요테의 추격전이 특수 효과를 통해 실사로 재현된다.

한국에서 저우싱츠는 마니아들에게만 열렬한 사랑을 받는 배우이자 감독이다. 마니아가 아닌 일반 관객에게 그는 싸구려 유머에 엽기적인 행동을 일삼는 배우였다. 하지만 <소림축구>로 과거의 이미지를 깼고, 이제 <쿵푸 허슬>에서 모든 관객을 사로잡을 준비가 되어 있다. <쿵푸 허슬>은 과거 저우싱츠의 영화를 발전적으로 계승하면서도, 홍콩 영화가 어떻게 세계 시장을 장악할 수 있을지를 보여주는 걸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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